‘3단계 간호인력개편안’에 거센 반발…“환자 안전 위협하고, 간호사 교육체계 송두리째 망가뜨려”

[라포르시안]  현재 우리나라의 간호사 면허자 수는 약 31만명에 달한다.

이 중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간호사 수는 얼마나 될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기관종별 인력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으로 의료기관과 공공보건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 수는 14만7,210명이다.

요양기관 근무 간호사 외에 조산사나 지방자치단체 소속의 방문간호사 업무 등에 종사하는 인력을 더하더라도 전체 간호사 면허자 중에서 절반 이상이 현장을 떠난 유휴 인력이라는 의미다.

이렇게 유휴 인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의료기관 중 상당수가 간호사 구인난을 겪고 있다.

수도권의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하고 지방 병원에서는 간호사를 구하기 힘들다고 난리다. 특히 지방 중소병원의 간호사 구인난이 극심하다. 간호사 구인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어 애만 태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그 이유를 놓고 병원경영자 단체와 간호사 단체의 해석이 엇갈린다.

대한병원협회와 중소병원협회 등의 단체는 배출되는 간호사 인력 자체가 부족해 지방 중소병원을 중심으로 구인난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호대학의 입학정원을 확대하고, 간호조무사를 법정 간호인력으로 인정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반면 간호협회 등에서는 지방 중소병원 등에서 간호사 구인난을 겪는 이유가 간호인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임금수준이 낮고 근무환경이 열악해 간호사들이 지원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반박한다.

간호사 인력은 오히려 과잉공급 상태에 접어들었고, 지금은 늘어난 간호사들의 일자리를 걱정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진짜 이유가 어디에 있든 상당수 병원에서 간호사 인력난을 겪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관계 분야의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TF 논의를 거쳐 2013년 2월 ‘간호인력 개편방향’을 발표했다.

간호인력 개편의 취지는 의료기관의 간호인력 적정 수급을 도모하고, 간호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었다.

개편방향의 핵심은 '간호인력 3단계 개편안'이다.

현재 '간호사-간호조무사'로 이원화된 간호인력을 하나의 체계 내에서 '간호사-1급 실무간호인력-2급 실무간호인력'의 3단계로 개편하고, 교육과 경력에 따라 상위 간호인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는 게 개편안의 골자다.

이를 위해 오는 2018년부터 전문대 간호조무과의 간호인력 양성과정을 인정하고, 간호조무사는 '1~2급 실무간호인력'(가칭)으로 세분화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간호사는 대학 4년의 교육과 실습을 통해 양성하고, '1급 실무간호인력'은 2년의 교육과정을 통해 양성하자는 것이다.

이 방안을 놓고 간호계가 벌집을 쑤신 듯 들고 일어섰다. 

특히 대한간호협회가 지난해 8월 열린 임시대표자회의에서 2년제 전문대학 교육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간호보조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을 의결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간호계 내부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간호계가 수십년에 걸친 노력을 통해 2011년 2011년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간호교육 4년제 일원화를 일궈냈는데 이제와 다시 2년제 간호학제를 신설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다.

고등교육법 개정 이후 전문대에서 운영 중인 3년제 간호학과 중 한국간호평가원의 인증평가를 거쳐 4년제로 전환한 곳이 40곳을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2년제 간호학제를 신설하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발표하니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이 문제를 놓고 전국 간호대학 교수와 학생, 현직 간호사 등이 반대 성명을 내고, 항의 시위를 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지난 24일에는 서울역 광장에 2,000여명에 가까운 간호사들이 모여 '2년제 간호학제 신설 반대'를 요구하며 집회를 가졌다.

전국 간호대학 및 관련 단체, 학회 관계자들이 모여 2월 초 결성한 '2년제 간호학제 신설 반대를 위한 협의체' 주도로 열린 집회였다.

협의체는 이날 집회에서 발표한 '2년제 간호학제 신설 반대 결의문'을 통해 "복지부의 '3단계 간호인력개편안'은 규제개혁위원회 의결에 의해서 졸속으로 만들어진 간호인력 개악안"이라며 "이 개편안은 간호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려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간호사 교육체계를 송두리째 망가뜨려 의료계를 혼란에 빠트리는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복지부는 4년 전에는 질 높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간호교육 4년재 일원화 정책을 결정했고 현재 진행 중"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2년제 간호인력을 도입하려는 무책임하고 일관성 없는 정책을 추진하는 복지부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복지부를 향해 ▲환자 안전을 위한 법적 간호사 인력기준 준수 ▲간호사 처우개선 정책 마련 ▲2배로 늘어난 간호사 고용대책 마련 ▲2년제 간호학제 신설 정책 철회 등을 요구했다.

이날 집회에서 만난 한 간호사는 "약학대학의 경우 4년제에서 6년제로 전환해 올해부터 6년제 약사가 배출되기 시작했다"며 "그런데 간호사의 경우 어렵게 4년제 일원화를 이뤄냈는데 이제와 다시 2년제 간호학제를 신설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2008년부터 늘어난 간호대 입학정원…내년부터 대량실업 사태 우려 

1급 실무간호인력을 양성하는 2년제 간호학제가 신설되고 새로운 간호인력이 배출되면 이들이 현직 간호사들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간호사 일자리의 질은 더욱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복지부는 간호등급제 실시와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 대형병원 병상 확충 등으로 간호인력 부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2008년 이후부터 간호대 입학정원을 해마다 대폭 증원했다.

그 결과, 2013년에는 전국 3~4년제 간호대 1학년 재학생이 2만3,000여명 규모로 늘었다. 오는 2016년부터 2만3,000여명의 신규 간호사가 배출된다는 의미다.

올해 치러진 간호사 국가시험 합격자가 수가 1만5,743명인데, 내년부터는 7,000명 이상의 신규 간호사가 더 배출되는 셈이다.

유휴 인력이 이렇게 많은데도 간호사 구인난이 왜 발생하는지, 간호사들이 무슨 이유로 지방 중소병원 근무를 기피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무조건 간호사 배출을 늘리면 문제가 해소될 것이란 안일한 정책이 빚어낸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간호사 직종이 저질 일자리로 전락하고, 긴호사 대량 실업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지난 24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2년제 간호학제가 도입되면 간호서비스 질이 저하되고 현직 간호사들이 대량 실업자가 될 것이다. 환자안전을 위해 법적 간호사 인력기준을 준수하게 하고, 간호사 처우개선 정책을 마련하라"는 간호사들의 외침이 비명처럼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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