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부의 시대 / 로버트 J. 실러 등 지음 / 이경남 옮김, 알키 펴냄, 2015년

[라포르시안]  옛날에는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곤 했습니다. 한 해의 운수를 미리 알아본다는 것인데 맞을 거라는 생각보다 재미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운을 기대하기보다는 조심하라는 대목에 무게를 두고 몸가짐을 다스려 재앙을 피하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역술인들이 금년 한 해 생길 것이라는 사건들을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그만큼 미래를 예측한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이겠지요.

미래를 예측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일기예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가끔은 ‘기상청 공무원들이 수퍼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모양’이라고 농담을 합니다만, 한나절 뒤 기상상황도 틀리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과학적 예측이라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렇듯 한 나절 뒤의 기상을 맞추는 일도 쉽지가 않은데 100년 뒤의 세상을 미리 예측해보는 책이 나왔습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의 이그나시오 팔라시오-후에르타교수가 기획한 <새로운 부의 시대>입니다. 1930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00년 후 세계를 예측한 짤막한 에세이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1930년이면 전 세계가 대공황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때였을 것입니다. 당연히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케인즈는 이런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무너뜨리며 ‘100년 후에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라지고 잘사는 법을 터득하는 시대가 들어설 것이며, 특히 생활수준이 네 배에서 여덟 배가량 좋아질 것이라 예측했고, 또한 사람들의 주당 근무 시간이 약 15시간으로 줄어들 것’이라고도 내다보았다고 합니다.(7쪽) ‘경제 문제는 인류의 영원한 문젯거리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도 2015년에 바라보는 2030년에 주당 근무시간이 15시간으로 줄어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케인즈의 에세이를 읽은 팔라시오-후에르타교수는 케인즈의 예측은 그렇다고 치고, ‘지금 시대의 석학들은 100년 뒤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드림팀을 구성하였다고 했습니다. ‘100년 뒤의 세상에 대한 의문은 어렵지만 흥미로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경제․사회학자들에게 100년 뒤의 세상을 예측해달라는 제안서를 보냈는데, 우려와는 달리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앨빈 로스 교수는 ‘거절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이라면서, 케네스 애로 교수는 ‘확인할 수 없는 예측을,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예측하라는 제의는 단호히 거부해야 할 유혹’이라면서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나의 견해를 사람들과 공개적으로 나눌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혹은 ‘자신은 과거를 이해하려는 편이지 미래를 예측하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한 학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모두 열 명의 석학들이 참여해 쓴 미래의 예측서를 각각의 장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책 내용을 보면 원고의 분량에 제한을 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어마어마한 제도적 차이에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부국과 빈국으로 나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일반 이론의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면서 남북한을 예로 들어 ‘왜 그토록 여러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는지’ 더 나아가 오늘날 ‘번영과 빈곤, 세계 불평등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지’를 간단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설명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쓴 MIT 경제학과의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의 예측을 필두로 하여,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과의 앵거스 디턴교수와 애비너시 K. 딕시트교수,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의 에드워드 L. 글레이저 교수와 앨빈 E. 로스 교수 그리고 마틴 L. 와이츠먼 교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폼페우파브라대학교 경제학과의 안드레우 마스-콜레이 교수, 예일대학교 정치경제학과의 존 E. 로머 교수와 로버트 J. 실러 교수, MIT 경제학과의 로버트 M. 솔로 교수 등이 필진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시각에 따라서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한된 지면이라서 열 분의 예측을 모두 정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일부만 소개하려 합니다. 제 입맛에 맞는 예측만 고를 것 같습니다.

100년 뒤의 미래를 예측하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자인 애쓰모글루 교수를 건너 뛰면 섭섭해 할 것 같습니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사회학의 지난 예측 실적을 따져보면, 100년 뒤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우리의 능력에 별다른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미래를 예측하다 보면, 앞에 놓인 도전 과제가 구체적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습니다(19쪽). 따라서 예측은 우리의 시대상을 규정하는 트렌드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100년 뒤를 예측하기 위하여 애쓰모글루 교수는 지난 100년간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삶을 규정했던 중요한 트렌드를 먼저 정리했습니다. 1. 권리혁명, 2. 테크놀로지의 질주, 3. 거침없는 성장, 4. 고르지 않는 성장, 5. 노동과 임금의 변형, 6. 보건혁명, 7. 국경없는 기술, 8. 평화의 세기, 전쟁의 세기, 9. 정치에서의 반계몽주의, 10. 인구폭발과 자원 그리고 환경 등입니다. 이것들은 지난 100년간의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애쓰모글루교수는 열 가지 트렌드를 견인하는 핵심을 권리혁명으로 보았습니다. 착취적 제도에서 포용적 제도로 향하는 움직임, 즉 권리혁명이 지난 수세기 동안 이어져 왔지만 여전히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힘을 축적하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의 전반적 트렌드는 보다 포용적인 제도를 향해 나아갔고, 그것은 권리혁명과 행보를 같이 했다.(44쪽)”라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분석된 과거 100년간의 트렌드가 다음 100년에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인류의 미래가 권리혁명의 향배에 달려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야 하는 여러 트렌드들을 생각할 때, 지구의 건강한 미래를 바라는 우리의 희망은 다시 권리혁명의 지속과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73쪽)”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디턴 교수는 현 시점이 케인즈의 시대만큼 불확실하고 암울한 상황임을 지적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낙관적인 전망을 견지하는 것 같습니다. 부정적 주장은 너무 강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틀리기도 했으며, 범위가 좁고 근거도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건강과 부의 측면에서 미래를 바라본다면, 1. 성장은 계속 될 것이며, 2. 인류는 더 건강해질 것이고, 3. 기타 사항으로, 폭력이 줄고, 민주주의는 더욱 확산될 것이며, 교육수준은 더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다만 ‘인류가 기후변화를 적절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낙관이 어렵지만, ‘임박한 위험에 맞서는 집단적 조치와 진보의 힘은 강력하기 때문에 기후문제에 있어서도 인류는 해답을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고 했습니다. 로스 교수 역시 의학과 정보 분야의 발전을 바탕으로 하여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비교적 낙관적인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글레이저 교수는 인간의 도덕적 특성에 주목합니다. 좀 더 풍족한 미래에는 탐욕과 물질주의가 수그러들 것이라는 케인즈의 예측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케인즈교수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선행을 베풀며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들과, 사물에서 직접적인 기쁨을 찾아낼 줄 아는,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132쪽)”라고 예측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레이저교수는 우리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엇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여전히 같은 유형의 피조물인 까닭에 “전통적인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부유해진다고 해서 탐욕, 시기, 나태, 폭음, 폭식, 정욕, 분노, 자만심 등 일곱 가지 대죄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133쪽)”라고 하였습니다.

인류번영을 위협하는 요소로는 ‘갈등’과 ‘자연재해’를 들었습니다. 강대국의 갈등으로 인한 대형 전쟁의 위험은 크게 감소하였지만 국지전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고, 불량국가나 테러리스트 집단을 이끄는 파괴주의자들의 위협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자연재해에 대한 글레이저교수의 예측에는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태풍, 지진,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는 국지적으로는 막대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지만, 그 영향은 오래 가지 않지만, 전염병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세 유럽을 공포에 빠트렸던 페스트와 20세기 초반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냈던 인플루엔자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아프리카에서 발생하고 있는 에볼라의 경우처럼 현대의학의 수준이나 국제적 공중보건공조체계 역시 중세는 물론 20세기와도 수준이 달라졌습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 견해로는 과거와 같은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할 전염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만 자연재해의 경우는 심각할 수도 있는 몇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지구의 지배자 공룡을 전멸시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소행성의 충돌, 혹은 지구적 환경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대형화산의 폭발과 같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로머 교수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면 지구적 위기상황이 초래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화석에너지의 지나친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문제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임에도 미국과 중국 같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국가들이 이를 외면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그의 미래예측은 미국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반면 와이츠먼교수는 화석에너지 뿐 아니라 온실효과로 인하여 대기의 온도가 상승하였을 때 일어날 것으로 예사되는 문제로까지 확대하였습니다. 바다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나 툰드라지대에 얼은 상태로 붙잡혀 있는 메탄가스가 풀려나서 대기로 유입되는 악성순환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도 있다고 전망합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지구공학자들이 내놓은 방안에 우려도 표시합니다. 심지어는 영국왕립학회가 지구공학을 “인류가 야기한 기후 변화를 중화시키기 위해 지구 환경에 가하는 대규모의 고의적 조작(301쪽)”이라고 극단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실러 교수의 미래예측을 살펴보겠습니다. 제목이 ‘다음 세기의 위험과 그 관리법’입니다. 미래에 예측가능한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위험(危險)이란 일반적으로 손해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위험으로부터 입을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위험관리라는 기법입니다. 위험을 관리하는 네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 위험 요소를 인식하고(risk identification), 위험한 정도를 평가하여(risk assessment), 위험요소를 관리하고(risk management), 그 결과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risk communication)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위험관리는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위험관리를 통하여 상응하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한 사항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하며, 전체의 과정이 투명해야 하는 것 등입니다. 실러교수는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다양한 위험관리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고 장기적 계약에 따라 이행하게 되면 인간의 복지에 미치는 재앙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열 분의 필자들은 조심스럽지만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미래예측을 내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0년 뒤의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누구에게나 궁금한 일 아닐까요?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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