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철(아주대의료원 前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김효철내과의원 원장)

[라포르시안] 혈우병 환자들은 출혈이 없을 시에는 정상적 생활이 가능하지만 치과 치료나 찰과상 등 작은 외상이라도 출혈이 동반되는 일상에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면 일반 병원에서 혈우병 환자가 치료를 받다가 출혈이 심해지면 응급조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혈우병 치료의 전문성을 가지면서 다양한 과의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전문병원이 필요한 이유다.

혈우병 환자들에 대한 통계 자료 수집도 중요하다. 현재 국내에는 혈우병A 환자 1,702명, 혈우병B 환자 383명으로 모두 2000여명이 넘는다. 하지만 어느 의료기관에서 어떠한 치료를 받아오고 있는지에 대한 통합적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혈우병 치료 권위자로 혈우병 환우를 위한 전문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효철 원장(아주대 의대 명예교수)은 “정부 차원의 정책지원이 부족하다보니 요즘 젊은 의료인 중에 혈우병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며 “혈우병 전문가를 육성하고 포괄적 치료가 가능한 전문병원 설립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효철 원장을 만나 혈우병 치료 분야의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던 1970년대부터 혈우병 치료에만 40년 이상을 매진해 온 걸로 알고 있다. 혈우병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 1975년 미 로버트 우드 존슨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미 연방정부가 혈우병의 포괄적 치료를 위한 연구 지원 정책을 실시하면서 본격적인 혈우병 연구를 시작했다. 몇몇 환우단체들은 자발적 모금을 통해 연구에 힘을 실어 줬고, 진료하면서 맺게 된 혈우병 환자들과의 끈끈한 관계는 유익한 치료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열의를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 오랜 세월 의료인으로서의 자리를 지켜오면서 고수하고 있는 치료 원칙이 있다면 환자를 치료할 때는 가족을 대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치료에 임하는 것이다.

▲ 국내 혈우병 치료 수준을 선진국과 비교하면.

= 우리나라 혈우병 치료환경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제 8인자와 9인자 혈액응고제제의 연간 사용량을 봐도 선진국과 크게 다른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많은 환자들이 3세대 유전자재조합제제와 같은 최신 치료제 혜택을 누리고 있고, 최근에는 치료제 편의성까지 향상되고 있어 혈우병 환자들의 치료환경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특히 최신 3세대 유전자재조합제제 중에는 전 제조공정에서 사람 또는 동물에서 유래한 물질을 배제해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고, 영국, 호주 등 선진국들에서 국가단위 치료제로 지정돼 사용되는 것도 있다. 혈우병 치료에 있어 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치료 방향은 유지요법이다. 혈우병 환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출혈이 아니라도 신체 내부에서 자발적 출혈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내부 출혈은 관절, 근육 등을 손상시킨다. 유지요법은 당장의 출혈이 없는 때에도 주기적으로 혈액응고인자를 투여해줌으로써 평상시에도 정상 수준의 혈액응고인자를 유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치료방법이다. 유지요법을 하면 미리 출혈을 예방하고 신체 건강을 보존해 혈우병 환자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상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환자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익하다.

▲ 최근 우리나라에도 올인원(all-in-one) 제형의 혈우병A 치료제가 도입됐다. 이러한 제제의 장점이 있다면.

= 환자 입장에서 치료제 투약 편의성은 큰 의미를 갖는다. 혈우병 환자 대부분은 자가주사를 하는데, 환자들이 치료제를 재구성하고 본인에게 직접 주사하는 과정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결코 만만치 않다. 최근 국내에 도입된 ‘진타 솔로퓨즈’의 경우 번거로운 치료제 재구성 과정을 생략하고 한 번에 주사할 수 있어 자가투약이 크게 수월해졌다. 병원 내에도 진타 솔로퓨즈를 사용하기 시작한 환자들이 있는데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치료제 투약 편의성이 향상된다는 건 환자들의 치료 순응도 및 삶의 질과도 연결된다. 내부 출혈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제때 치료제를 주사하는 것이 중요한데, 치료제를 재구성하고 투여하는 과정이 길고 번거로운 까닭에 환자들은 주사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치료제 투여가 간편할수록 환자들은 제때 치료제를 투약하게 되므로 투약 지체로 인한 부작용 및 일상 불편을 줄일 수 있다.

▲ 올인원 제형 치료제가 앞서 도입된 외국에서의 환자 반응은 어떤가.

= 최근 한 학술지에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유럽의 혈우병A 환자 299명에게 각기 다른 재구성 단계를 가진 디바이스 5개 중 가장 선호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했는데, 요즘 공급되고 있는 올인원 치료제와 같이 주사기에 약물과 주사용제가 함께 담긴 디바이스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참여 환자들 중 이러한 올인원 디바이스를 시험적으로 사용해본 사람의 절반 이상(57%)은 자신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디바이스보다 올인원 디바이스를 더 선호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 최신 혈우병A 치료제 효과에 대한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어떤 연구인가.

= 지난해 '코지네이트 FS'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다른 치료제로 교체 투여를 하게 된 혈우병A 환자들이 생겼다. 이번 자가임상은 유전자재조합제제 모록토코그알파(진타)로 치료제를 교체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제 효과가 우수하게 유지되는지, 치료제 교체 이후 항체가 발생하지는 않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진행한 것이다. 최근 치료제를 교체한 혈우병A 환자 8명(13~45세, 평균 연령 29.8세)을 대상으로 치료제를 교체한 시점으로부터 ▲교체 시점 ▲1개월 ▲2개월 ▲6개월 시점의 8인자 리커버리(응고인자 유지 효과) 및 8인자 항체 발생을 측정했다. 연구 결과, 리커버리는 치료제 교체 시점에서 118±52.5%였으며, 1개월, 2개월, 6개월 시점에서의 평균 리커버리는 109±31.8%로 지혈 및 출혈 예방 효과가 우수했다. 항체가 발생한 환자도 없었다. 특히 환자 1명은 이전에 사용하던 치료제에 항체가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치료제 교체 이후로는 지금까지도 항체 발생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

▲ 여전히 치료제를 교체하면 항체가 발생할까봐 염려하는 혈우병 환자가 많다.  = 일단 항체가 생기면 치료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과거 항체 발생 경험이 있는 환자라면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번 자가임상 결과가 이러한 환자들의 염려를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다. 사실 최근에는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치료제 전환과 항체 발생 증가가 반드시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게 입증되고 있다. 혈장제제와 유전자재조합제제간 항체 발생에도 유의한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논문을 통해 보고되고 있다.

▲혈우병A 환자들을 위해 조언을 해달라.

= 지난 40여 년 동안 혈우병 치료 분야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획기적 치료제들이 공급되고, 환자와 의료진, 환자들의 노력으로 혈우병 치료를 위한 사회적 지원의 폭도 넓어졌다. 혈우병 환자들은 앞으로도 열심히 치료에 임해서 사회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치료환경에 처해 있는 희귀질환 환자들에게도 의료적·사회적 혜택이 폭넓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 부인인 김현주 전 아주대병원 교수(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 제고와 정책 차원의 지원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 아내와는 연세대 의과대학 동기다. 2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질환’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고, 더욱이 유전병은 집안의 부끄러운 일로 여기며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 때문에 질환은 물론 치료에 대한 인식도 저조했다. 이 시절 아내가 방송 등에 출연하며 대대적으로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 사업, 환자 교육 등의 활동을 펼쳤다. 지난 2011년에 한국희귀질환재단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희귀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적 여건 조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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