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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의사-한의사 진흙탕 싸움…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5.02.1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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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줄 몰랐을까.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사달이 생길 줄 몰랐다면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지만.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 완화를 둘러싼 논란은 예상외로 심각한 사회갈등을 초래할 지 모른다. 의사와 한의사로 이원화된 면허체계는 이미 고착화 됐다. 서로 다른 학문체계를 기반으로 한 한의학과 현대의학의 특성을 고려한 제도다. 현재 상황에서 규제기요틴이란 명분으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겠다는 건 해묵은 갈등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르는 꼴이다. 이런 정책을 추진할 경우 2000년 의약분업 도입 당시에 버금가는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고됐다.

이미 의사단체와 한의사단체의 수장이 번갈아 가며 단식 농성을 했다. 의사와 한의사들이 연일 보건복지부 청사 앞을 찾아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양 쪽 모두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며 자기 쪽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것도 모자라 한의사의 의료행위로 인한 환자의 피해사례를 수집하고, 반대로 의사의 의료행위로 인한 피해사례를 수집해 공개하겠다고 한다. 서로 상대편의 교육체계를 문제 삼거나 폄하하고, 심지어 상대편 직역을 깎아내리기 위한 모욕적인 표현마저 서슴지 않는다. 일반 국민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가뜩이나 이원화된 의료체계로 인해 의료서비스 이용에 혼란을 겪었는데 더 혼란스러운 지경에 빠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따져보자. 의사와 한의사로 이원화된 면허체계를 구축한 시점까지 거슬러 가면 따질 게 너무 많다. 작년 12월로 되돌아 가자. 정부가 민관합동회의를 통해 확정한 114건의 규제기요틴 과제를 발표한 시점으로. '규제기요틴'이 뭔가. 존치할 이유가 불명확한 정부 규제를 한꺼번에 잘라버릴 단두대다. 그 대상이 114건이고, 그 중에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규제가 포함돼 있었다. 그럼 누가 114건을 선정했나.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8개 경제단체가 지난해 11월 총 153건 규제개혁 과제를 선정해 정부에 건의했다. 정부는 민관합동회의를 열어 153건 중에서 114건을 최종 확정했다. 그 과정에 의료전문가 단체의 의견수렴은 없었다고 한다.

경제단체가 무슨 이유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을 건의했을까. 앞서부터 전경련과 대한상의 등의 경제단체는 의료관광산업 활성화니, 의료시스템 수출이니 하면서 보건의료 분야의 각종 규제완화를 정부에 요구해 왔다. 그 중에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과 원격진료·조제 허용 등의 내용도 있었다. "우리경제가 직면한 저성장-저고용 구조의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미래 핵심 전략산업으로 의료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게 이들 단체의 입장이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규제 완화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규제기요틴 확정 과제를 발표하면서 낸 보도자료의 타이틀이 '경제혁신의 지름길, 규제기요틴에서 찾다'였다. 정부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면 한방산업 활성화라는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오로지 경제단체의 관점에서, 관련 기업을 위한 규제 완화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관련 규제 완화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주장은 모호하다. 입증되지 않았고 신뢰하기 힘든 주장을 교묘하게 앞세운다. 지금까지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해서 국민의 건강이 향상되지 못했나 싶다. 국민의 건강권 향상을 억누르고 위협하는 문제는 따로 있다. 취약한 건강보험 보장성과 무질서한 의료자원의 배치, 갈수록 꼬여가는 의료전달체계 등이다. 의사와 한의사로 이원화된 면허체계도 국가의 의료의료정책 수립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의료이용에 혼란을 일으키는 요인이 됐다. 

이런 문제를 초래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 보건의료정책 추진 과정의 난맥상이 드러난 거다.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형식적인 완성에 치중해 질적인 측면을 도외시했다. 의료자원 확충은 공공의료가 아니라 민간의료기관의 신증설에 기대어 왔다. 시장의 실패가 예견된 의료영역의 문제를 계속 방치하고 키웠다. 돈이 안 되는, 아니 돈을 벌 수 없는 필수의료 영역이 지방을 중심으로 사라지고 있다. '저수가-저급여-저부담'이란 방식을 끌어들여 단기간에 완성한 전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이제는 의료공급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병원의 경영이 어렵다고 하니 의료서비스 제공 외에 다른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준다고 한다. 신속하게 이룩한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손바닥 뒤집듯 뒤엎으려 한다는 우려가 높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관련 규제 완화는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추진의 난맥상을 상징한다. 앞뒤 따지지도 않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하자는 거다. 병원의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면 수익을 창출하게 되고, 그 돈으로 다시 병원 시설과 인력에 투자하면 의료서비스 질이 향상돼 국민의 건강권 향상에 기여할 것이란 무지막지한 논리를 제시할 때부터 알아봤다. 무엇보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허용 문제는 경제단체 건의로 검토할 사항이 아니다. 의료전문가들의 영역에 관한 문제다. 먼저 관련 전문가단체 간 사전 논의가 필수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일이 커지자 뒤늦게 이 문제를 논의할 협의체를 꾸리겠단다. 참 어이없다. 이미 한의계와 의료계 간 감정의 골이 격해질 대로 격해졌다. 협의체를 구성한들 무슨 논의가 될까 싶다. 오래 전부터 의료계와 한의계에서 '의료일원화' 논의를 복지부에 몇 차례 제안한 바 있지만 흐지부지 끝났다. 그때는 골치아픈 일이라 여겨 어영부영 덮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의료계와 한의계에서 이 사안에 반대, 혹은 찬성 주장을 하면서 국민 여론조사나 법원 판결에서 그 당위성을 찾는 것도 한심한 일이다. 의료전문가들 간 내부 논의를 통해 결론내지 못한 일을 떠넘기는 꼴이다. 이 사안이 단식을 하고, 신문에 광고를 내고,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서 결정할 일인가. 그 이유를 모르진 않을 거다. 무엇보다 경제단체의 건의로 이런 사달이 났고, 그걸 받아서 의료전문가들이 서로 죽기살기로 싸운다는 게 갑갑한 노릇이다. 이걸 건의한 경제단체들이 작금의 상황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만약에,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한의원은 저마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의료장비 구입에 지금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 이미 한의원과 병의원이 포화상태인데 기대했던 환자유치 효과를 보게 될까. 아마 일부는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더 많은 한의원이 쓰러질거다. 공급 포화상태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엄청난 초기 개원투자 비용으로 빚더미에 허덕이는 병의원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진짜 수혜자는 새로운 시장이 생긴 업체들이다. 

한의학의 현대화를 통한 국민 건강 향상? 진정으로 그걸 원한다면 의료일원화부터 진지하게 논의하는 게 맞다. '하나의 몸에 하나의 의학체계'를 통해 구현할 일이다. 의학과 한의학의 고유영역을 놓고 '이데아' 논쟁을 벌여선 답이 없다. 진짜 이데아는 사람의 몸에 있다. 더는 이 문제를 외부로 드러내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자. 조용히 의료전문가들 간 내부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전문가들이 내부 갈등이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에 맡겼을 때 돌아오는 건 규제뿐이다. 그동안 많이 겪지 않았나.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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