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국대의대 의료윤리학교실 정유석 교수

지난달의 딜레마 사례 - 감기에 항생제 처방을 요구하는 수빈엄마

최근 유행중인 가벼운 감기에 걸린 것이 분명한 5살된 수빈이 엄마가 최원장에게 항생제를 처방해 달라고 조른다. “...;. 그냥 해열제만 먹이려면 뭐하러 병원에 왔겠어요. 그냥 약국에서 약 사먹지요... 예는 감기 한번 걸리면 오래가거든요... 좀 독하더라도 빨리 낳게 해 주세요... ” 최원장의 원칙은 감기에는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는 것이다. 감기의 원인균인 바이러스는 항생제로 박멸되지도 않을뿐더러 자칫 내성만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일도 아닐 뿐더러 만에 하나 감기가 아니고 진짜 항생제가 필요한 세균성 감염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항생제 처방을 해, 말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병에 대해서는 의사가 전문가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의 보호자인 엄마의 의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아이가 감기가 아닌 다른 병이라면 결국 아이의 건강은 엄마가 책임져야하니까요. 의사들은 확률적으로 아기가 단순 바이러스성 감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혹시 내 아이가 해당된다면 내 아이에게는 100%가 되는 것이니까요.  사람에 따라서 항생제가 필요한 경우에도 먹기 싫어하는 경향의 환자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항생제를 미리 먹이고 싶은 환자도 있을 것입니다. 의사들도 자신의 결정에 따르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환자나 보호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선호도를 존중해 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서울 양천구 세리 엄마)

이런 경우에 제대로 된 의사라면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을 것이다. 의사라면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해야하는데, 부작용이 생길수도 있는 항생제를 쉽게 쉽게 처방해준다면 좋은 의사라 할수 없을 것이다. 환자가 원한다는 이유로 항생제를 마구 처방해준다면, 그 의사는 더 이상 전문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약 지어주는 심부름꾼과 뭐가 다른가? (충남 금산군 C씨)

긴 고민, 간략한 조언

어떤 행동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각각 자신이 옳다고 믿는데로 행동한다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직면한 도덕적 결정들을 안내해줄 일정한 원리나 기준이 존재할까요?

윤리학이란 바로 무엇이 옳고 그른 행위인가를 결정하는 원리들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의료윤리학은 의료문제에 있어서 딜레마 상황을 다루는 것으로, 네 가지의 중요한 원칙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악행금지의 원칙’으로 의사는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환자에게 해악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로부터 강조되고 있는 의료윤리의 대원칙입니다.

둘째는 '선행의 원칙'으로, 의사란 모름지기 환자를 돕는 조력자(helper)로 환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율성의 원칙인데, 이는 이성적인 인간은 스스로 결정권을 가져야하며 이는 어떠한 경우라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의의 원칙이 있습니다. 제한된 의료자원을 사용함에 있어서 환자의 됨됨이가 어떠하던지 정의롭고 공평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핏 들어보면 모두 맞는 말이고,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 사례를 다루는데 있어서 이러한 중요한 원칙들 간에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단순 감기에 항생제를 처방해 달라고 요구하는 아이 엄마의 요청에 따라 항생제를 처방한다면, 이는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것이지만, 불필요한 약의 투여가 아이에게 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악행금지의 원칙에 위배됩니다. 반대로 항생제 처방을 거절한다면,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해주지 못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의료계의 전통적인 정서는 악행금지나 선행의 원칙이 자율성보다 우선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즉, 환자에게 이득이 된다면, 환자가 원치 않는 결정도 내릴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서양을 중심으로 환자의 자율적 결정에 점점 더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본 사례의 경우 이상적으로는 최 원장이 수빈엄마를 바른 의학적 지식에 근거해 설득을 하여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 것입니다. 만일 수빈 엄마가 설득에 동의하지 않고 끝까지 항생제 처방을 고려한다면, 예상되는 해로움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을 한 후 항생제를 처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것도 싫고, 시간 들여가며 설득해도 경제적인 보상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환자가 원하는데로 약을 주게 되기가 쉬운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 이달의 딜레마 사례 - 자궁암 수술하려면 낙태해야 하는 산모

결혼한지 1년만에 첫 아이를 임신한 영주씨가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산전진찰로 시행한 초음파에서 태아 옆에 자궁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어렵게 조직검사를 시행한 결과 자궁암 초기로 판명이 되었고, 즉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영주씨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이라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섬기는 교회의 장로인 최 원장은 평소 생명의 시작은 수정부터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낙태는 살인행위로 여기고 있다.

자궁암이 더 자라도록 기다릴 수도 없고, 소중한 태아의 생명을 어둠속으로 사라지게 할 수도 없고... 어쩌면 좋은가? <* '딜레마 사례 1'에 대한 여러분의 소중한 견해를 e메일( drloved@hanmail.net )로 보내주시면, 다음 호에 간략한 해설과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정유석은?

199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3년 가정의학과 전문의2001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11년 전공의를 위한 임상의료윤리 저술2011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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