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경수(국회의원 보좌관)

“보건복지에 여야가 어디 있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원들끼리 나누는 대화에서 참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무슨 대북 안보 정책도 아니고, 노동정책이나 감세·증세 논쟁도 아니고 그저 민생을 돌보는 일인데 이념이나 정당이 뭐가 중요하냐는 말이다. 과연 이말이 맞을까, 아니 적어도 앞으로도 이 말이 유효할까.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보건복지 정책과 관련한 이념적 논쟁 자체가 전 국민적 관심사였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건강보험 통합 논쟁 정도를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정국 흐름을 근본부터 흔들어 버린 미국산 쇠고기 논쟁과 함께 불이 붙은 의료민영화 논란과 무상급식 논쟁은 순식간에 보건복지정책을 이념적 각축의 장으로 뒤바꿔버렸다. 이 논의는 좀더 구체화 되어 의료민영화 논란은 ‘영리법인병원’ 문제로 초점이 맞춰졌고, 무상급식 논쟁은 민주당의 당론으로 채택된 ‘무상의료’ 정책으로 전선이 확대됐다.

분명 표면적으로 영리법인병원 문제와 무상의료 논쟁은 각각 이념적으로 양 극단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리법인병원 정책의 기본 취지가 의료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것이라면, 무상의료 논쟁은 의료시장의 파이를 골고루 나누자는 것이 골자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무상의료정책이 결국 전체 의료 수요를 확대시켜 파이를 키울 것이라고 주장하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무상의료정책을 시행하려면 그 재정적 부담 때문에 반드시 총액계약제 등 근본적인 비용 통제정책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정책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 입장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민감하게 대립하고 있어 합리적 절충점에 대한 협의조차 진행하기 쉽지 않는 상황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광우병 사태에서 보았듯이 이제는 보건의료 어젠다가 정권의 향배를 좌우할 만큼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고 점점 더 그 이념적 충돌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보건의료 이슈를 둘러싼 이념적 대립이 과연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항상 바람직한 현상일까. 일단 영리법인 문제만 볼 때 찬반 양측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극단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여겨진다. 만약 영리법인을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필수의료영역은 상당 부분 건강보험 급여범위 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영리법인을 통한 자본 유치 확대 효과는 주로 치과·성형외과 등 선택적인 비급여 의료 서비스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그 정책효과가 극히 제한적인 정책에 대해 국민적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추진하려는 경제 관료들의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고, 이를 건강보험 붕괴와 동일시하는 반대 측 역시 결코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그 정책적 효과도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고 사회적 공감대 역시 형성되지 않은 정책은 차라리 논의를 중단해 버리는 것이 타당하다. 논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그 효과를 압도하는 정책은 백지화 시키는 것이 상식에 맞다.

무상의료 역시 전술한 것처럼 현행 건강보험 수가체제에 대한 전면적 수정에 나설 각오가 없는 한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는 정책이다. 이에 대한 찬반으로 국민들을 이념적으로 자극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그 시행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이념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나 기술적인 문제들이다.

영리법인 정책과 무상의료 정책 모두 그 기본적인 취지 자체를 악한 것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분명 의료시장의 경쟁력 강화도 필요하고 획기적인 보장성 확대도 필요하다. 문제는 이 정책들에 이념적인 색깔이 씌워져 대립과 갈등이 극대화 될 경우 기본적인 취지 자체를 살릴 수 있는 합리적 절충점을 논의할 수 없게 되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만 일으킨다는 점이다.

무상의료 정책의 경우 이로 인해 촉발된 이슈를 적절히 확대시킨다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부족한 의료비의 공공 부담 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영리법인 문제의 경우도 가령 일정 부분 자본 투자를 확대하면서도 기존 비영리법인의 공공성을 결합한 가칭 ‘투자형 비영리의료기관’ 제도와 같은 절충점을 검토해 볼 수 있겠지만, 현재와 같은 이념적 대립 양상에서는 사실 이러한 논의 자체를 꺼내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모르긴 몰라도 “보건복지에 여야가 어디 있나?”는 말은 점점 국회의원들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횟수가 줄어들 것이다. 온 국민들이 점점 더 보건복지 정책을 둘러싼 이념적 갈등에 더 많이 노출되고 더 익숙해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정책을 둘러싼 이념적 대립이 항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이 분명한 관점을 가지고 정책결정 과정을 감시할 때 보다 민의에 충실한 결정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비합리적인 대립, 반대를 위한 반대, 절충을 불가능하게 하는 극단의 대립으로 치닫지 않도록 합리적 태도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언론과 시민단체, 학계와 정계 모두가 염두에 두어야할 무거운 책임이다.

전경수는?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석사, 서울시립대에서 행정학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의료전문지 메디게이트뉴스 기자와 고경화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현재 한나라당 이애주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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