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로 가는 길 / 무함마드 아사드 지음 / 하현희 옮김 / 루비박스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우리나라가 중동국가들과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오고 있어 이미 이슬람과 친숙하신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만, 필자는 그런 인연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카타르 등 중동국가들과 보건의료관리체계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면서부터는 아무래도 관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최근 터키에서 실종된 우리나라 젊은이가 이슬람 무장단체에 가입한 정황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중동지역과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해 말 우리말로 번역된 <메카로 가는 길>은 1954년에 출간된 대표적인 이슬람교의 안내서입니다. 이 책은 유럽 출신의 저명한 무슬림 작가 무함마드 아사드(1900-1992)가 이슬람에 매료되고 무슬림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자전적 기록입니다. 1900년 오스트리아령이었던 폴란드의 르보프(지금은 우크라이나령이라고 합니다)의 유복한 유대계 가정에서 레오폴트 바이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저자는 대를 이어 유대교 랍비가 되는 가풍 덕분에 일찍 유대교의 경전을 공부하게 되었지만,그 결과는 오히려 유대교에 대하여 회의였다고 했습니다. “경전 전반에 걸쳐 강조되는 도덕적이고 올바른 삶, 예언자들의 신심 등에는 물론 경의를 표했지만, 구약이나 탈무드에서 말하는 신은 너무 과도하게 의례에 집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히브리인 외에 다른 민족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였다.(71쪽)”

모험과 사건에 관심이 크던 10대 후반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는데 나이가 어려 참전이 불가능했고, 결국은 종전 후에 빈대학에서 2년간 예술사와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서구의 종교가 말하는 ‘신의 뜻’이란 인간의 독단적 판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스스로 신을 ‘정의’할 권한이 있다고 여기는 독선적인 종교수호자들의 자의적 해석으로 인해 세상이 혼란에 빠진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결국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그만두고 기자의 길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독일의 권위 있는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자이퉁>의 외신부 기자로 아라비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곳곳을 누비면서 중동 사람들의 시선으로 본 중동의 문제들을 기사로 송고했고, 그의 기사는 유럽사회는 물론 중동국가의 유력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유럽인이 이슬람을 알게 되고 그들의 사회에 동화되는 과정을 묘사한 <메카로 가는 길>은 이슬람과 서구 사이의 높은 장벽을 조금이라도 낮추어보려는 의도에서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그리하여 실체를 드러낸 이 책은 인도로 가기 위해 아랍을 떠나기 전까지 리비아 사막과 눈 덮인 파미르 고원, 보스포루스 해협과 아랍 해 사이에 있는 거의 모든 국가를 여행하며 보냈던 시간을 기록하고 있으며, 1932년 여름이 끝나가던 무렵 메카로 향했던 마지막 사막 여행의 시점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15쪽)”고 요약하였습니다. 저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븐 사우드국왕의 요청으로 나즈드와 이라크 사이 국경지대에 위치한 카스르 아타이민에 가게 되었는데, 임무를 마치고 메카로 돌아가는 길에 네푸드사막을 지나 고대 오아시스 타이마에 들러 메카로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낙타 두 마리가 저마다 한 사람씩 태운 채 터덜터덜 앞으로 나아간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타오르는 듯한 붉은빛 모래언덕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숨 막히는 침묵이 주위를 감싼다. 휘청휘청 걷는 낙타 등에 올라타고 있노라면 최면에 걸린 듯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태양도, 뜨거운 바람도, 사막도 모두 뇌리에서 사라진다.(18쪽)’라고 시작하는 사막여행에 대한 기록 사이사이에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이슬람에 귀의하게 되는 과정은 물론 진정한 이슬람정신이 무엇인지, 서구와 이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시각의 차이가 무엇인지 등을 적고 있습니다.

그저 막막하기만 할 뿐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사막에서도 사람들을 만나고 그와 같은 만남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옛날이야기가 이끌려 나오고 있습니다. 토끼 한 마리가 만들어낸 작은 사건은 저자를 사막폭풍으로 몰아넣고, 사막의 지형을 바꾸어놓은 폭풍 때문에 길을 잃은 저자는 물 한 방울 없이 사흘 동안 사막을 헤매기도 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저자는 “공포와 굶주림, 궁핍과 실패로 반드시 너희를 시험할 것이다. 그래도 굴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고난 앞에 ‘보라, 우리는 신께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38쪽)”라는 코란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사막은 텅 비어있지만 역설적인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있고, 그런가 하면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납치된 일본인 기자들을 처형하겠다고 하는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은 결국 인질을 처형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합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이슬람지역이 이방인들에게는 위험천만한 곳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이 지역을 누빌 때만하더라도 사막의 베두인족들까지도 이방인들에게 우호적이고,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국가(IS)는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라고 합니다. 지중해지역원이 <지중해의 전쟁과 갈등>에서 이슬람원리주의에 대하여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1300여년 이상을 아랍민족에게 보편적 삶의 방식을 자리잡아온 이슬람은 정교일치의 지도이념으로 강력한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세에 들어 부상한 서구문명의 영향을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서구문명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하여 내세운 아랍민족주의와 같은 세속적 정치이념 역시 실패로 귀결되면서 결국은 이슬람만이 유일한 해결방안이라는 인식이 태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통이슬람이 정치현실에 무관심해지고 부패하면서 무슬림 공동체가 쇠락해진 것이라고 생각한 이슬람사회가 초기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즉 이슬람부흥의 단초를 전통에서 찾아내겠다는 인식을 가졌던 것인데, 세계문명의 용광로 역할을 했던 초기 이슬람의 ‘열린 인식’과는 맥을 달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서구의 발전된 문명을 수용하여 이슬람국가를 개혁해야겠다고 생각한 집권자들의 세속적 정책에 대항하기 위하여 급진적이고 배타적인 행보를 택한 이슬람원리주의가 1970년대 말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성공하면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일부 급진적 성향의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과격한 무장활동은 대다수의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테러리스트로 오해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슬람세계가 문화적 쇠락에 빠져있는 원인에 대하여 저자는 카이로 알아자르대학의 신학자 무스타파 알 마라기의 설명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몇 세기 전부터 진정한 학자들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 과거 추동력은 거의 소멸됐어요. 발전이 있으려면 남의 생각을 반복하기보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저 암송이니 하고 있으니....(218쪽)” 7세기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이룩한 이슬람공동체는 다음 세기에는 동으로는 인도북부, 북으로는 카스피해 북쪽, 서로는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유럽의 이베리아반도에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이토록 광대한 영역을 다스리기 위한 철학을 세우기 위하여 그리스문명은 물론 페르시아, 인도, 멀리는 중국의 문명까지도 받아들여 의학, 응용수학, 천문학, 점성술, 연금술, 논리학 등 다양한 부문에서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것입니다.(정인경 지음, 동서양을 넘나드는 보스포루스 과학사 106~121쪽, 다산에듀 2014년) 그런데 수백 년에 걸쳐 번창했던 이슬람과학은 정치적으로는 십자군전쟁으로 사회가 분열되고, 종교적으로는 보수화되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일면으로는 무슬림 세계가 쇠락한 원인을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두고 있는 서구의 시각이 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나 유대교에 비하면 이슬람은 종교라 부르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이슬람에는 사막 특유의 광신, 미신 숭배, 어리석은 운명론이 뒤섞여 있어 인간을 우민화의 사슬로 옭아매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사회에 들어가 직접 체험한 저자가 보기에 서구의 이런 시각은 왜곡된 것으로 코란은 신의 창조물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지적인 욕구와 육체적 충동, 영적인 갈구와 사회적 필요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슬람세계가 퇴보하고 있는 것은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무슬림이 이슬람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서구문명 역시 인간의 육신과 사회적 필요, 그리고 영적 욕구의 조화를 실현하는데 실패했다고 보았습니다. 자신들이 발전시킨 문명이 세상에 행복과 빛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오만한 서구인들은 18~19세기에는 기독교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매몰되어 전 세계에 전파시키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이제 그들의 종교는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종교를 대신해서 과학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서구식 라이프 스타일’을 전파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신께서 주신 선물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 자체로 숭배의 대상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331쪽)’는 것입니다. 순수함이나 자연과의 교감 따위는 잃은 지 오래이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기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형이상학적 방향성을 잃었기에 기계와 기술에 의존하여 실존을 증명하려 애를 쓰게 되었는데, 기계는 새로운 욕망과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기계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심화되었다고 합니다. 애초에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기계를 발명했다는 목적은 사라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기계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기계를 탐욕스러운 신으로 탈바꿈시켰고, 기계를 만들어내는 과학자들이 사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슬람 세계의 매력에 빠져들던 저자가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할 때였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자는 눈덮힌 힌두쿠시를 넘어 헤라트에서 카불로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한 신앙심이 먼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타고 있던 말의 편자가 벗겨지는 바람에 쉬게 된 하자라자트에서 만난 하킴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믿음이 확고했던 무슬림들이 불과 한 세기만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서구의 이념과 관습에 쉽게 물들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명확하고 단순한 예언자의 가르침이 억측과 말장난에 가려지고, 이슬람의 가치관을 모두 부정하는 아타튀르크 같은 가짜 무슬림이 중흥의 상징이 되어 버린 이유를 묻자, 하킴은 저자에게 ‘당신도 무슬림이 아닙니까?’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저는 무슬림은 아니나 이슬람의 아름다움을 무슬림들이 그저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런다’고 대답하였는데, 하킴은 ‘당신은 무슬림이 맞습니다.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요’라고 개종을 촉구했다고 합니다. 1926년의 일입니다. 베를린으로 돌아와 미루던 결혼을 한 직후에 아내와 함께 전철을 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창 번영의 물결을 타고 있던 시절임에도 전철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지옥 같은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 펼친 코란에서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탐욕은 계속 커진다. 아니다. 그대는 결국 깨닫게 될 것이다. (…) 그날이 오면, 귀중한 인생을 무엇에 썼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347쪽)”라는 구절을 읽고는 바로 베를린의 작은 무슬림 공동체 지도자를 찾아가 ‘신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가 그의 전령임을 증언한다.’라고 선언하여 개종을 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슬람을 미화하고자 하는 의도나 이슬람교를 포교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고, 다만 이 책을 통해 무지와 편견으로 가려져 있던 안개가 걷히며 이슬람의 정신과 문화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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