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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판례와 여론조사로는 정당성 얻기 어렵다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5.01.0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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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의료계와 한의계가 새해 벽두부터 들끓고 있다.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규제기요틴' 정책과제 때문이다. 114건의 규제개선 과제 중에는 의사와 한의사 간 직역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강력한 휘발성을 지닌 사안이 들어 있다. 현대의학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기 중 일부를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거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8개 경제단체가 건의하고 정부가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무슨 이유로 경제단체에서 이런 건의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한방 병의원이란 새로운 의료기기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 걸까. 짐작은 가지만 설마 그래서일까 싶다. 규제기요틴은 비효율적이거나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를 단기간에 대규모로 개선하는 규제개혁 방식이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효율성과 시장원리로 따질 수 있는 문제인가. 절대로 그건 아니다.

무엇보다 경제단체가 의료인의 면허범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근거로 관련 제도를 단기간에 바꾸겠다는 발상이 타당한 건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한국의 의료체계는 독특한 이원화 구조다. 한국사회의 의료근대화 과정에서 일제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특수성이 작동한 탓이다. 의료체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자연스러운 변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외부에 의해 비주체적으로 근대서양의 의학을 수용했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적대적 공존 관계'를 형성했다.  

그 결과, 의사와 한의사는 상호 개별적인 면허제도를 확립했다. 각 직역에게 주어진 임무도 다르다. 의료법 상에서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하고,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에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의학과 한의학의 독자적 영역을 구분했다. 해외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의료체계다. 그동안 이원화된 의료체계로 인해 국가 보건정책의 비효율성과 국민들의 의료이용 선택에 혼란을 초래한 측면이 크다. 이런 이유로 의료일원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의료계와 한의계 어느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정부는 의료이원화 체계를 고착화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현대의학과 한의학은 학문적 원리와 질병의 원인 및 발병 기전에 대한 이해체계가 다르다. 이것이 또한 의료이원화 체계가 지속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느닷없이 현대의학에서 활용하는 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일원화에 대한 논의나 고민은 전혀 없었다. 오직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이라는 명분뿐이다.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해야 할 정부가 큰 논란을 자초한 꼴이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근거로 정부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든다. 2013년 12월, 헌재는 한의사가 안압측정기 등의 의료기기를 사용한 것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당시 판결에서 헌재는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고, 기기사용에 전문적 식견이 필요치 않고, 한의대의 의료기기 교육이 있는 경우 사용이 가능' 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한 헌재의 판단에는 일관성이 없다. 사안에 따라 판결이 오락가락하는 수준이다.  

2013년 2월,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을 놓고 제기된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 판결에서 헌재는 전혀 다른 판결을 내렸다. "학문적 기초가 서로 다른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분리 체제 하에서는 자신이 익힌 분야에 한해 의료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훈련되지 않은 분야에서의 의료행위는 면허를 가진 자가 행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작년 6월에는 "훈련되지 않은 분야에서의 의료행위는 면허를 가진 자가 행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무면허 의료행위와 달리 평가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의사의 침술행위가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지금까지 헌재의 판결을 근거로 삼는다면 오히려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 쪽이 더 합리적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번 논란은 의료계와 한의계 양쪽 모두에게 뼈아픈 일이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활용은 의사와 한의사라는 의료전문가들의 고유 영역에 관한 일이다. 이런 문제로 갈등과 분쟁이 생길 때마다 의료전문가 집단간 내부 논의로 풀지 못하고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해 왔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고작 경제단체의 입장에 따라 의료전문가의 영역이 흔들릴 정도로 딱한 처지에 놓였다.

게다가 한의계는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주장하는 근거로 여론조사 결과와 국회의원들의 주장을 제시한다. 현대의학의 원리에 기반해 개발된 의료기기를 한방진료에 활용한다는 건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문제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설문조사 결과와 정치인들의 주장만을 근거로 추진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기어코 한의사가 X-레이와 초음파 진단기기 같은 의료기기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또한 스스로를 의료전문가라 자부한다면 타당한 근거와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X-레이와 초음파 진단기기를 이용한 진단과정에 어떠한 한의학 원리가 적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현대의학에 기반한 진단을 근거로 한방진료를 한다면 학문적인 모순이다. '의사 흉내내기'를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한의계가 주장하는 '한의학의 현대화'가 학문체계가 다른 현대의학의 원리와 임상근거를 차용하는 걸 의미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럴 바에 의료일원화 논의에 적극 나서는 게 낫다.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개발 원리와 임상에서 어떻게 적용돼 효과를 보이는지 실증적으로 규명하지 않은 채 기술적인 활용법을 익혔다고 사용권을 주장하는 건 의료전문가의 자세가 아니다. '초음파기기를 어부도 사용하는데 한의사는 왜 안되나'라는 주장은 그래서 딱하다. 초음파를 이용한 어군탐지기조차 숙련된 어부라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정부와 경제단체가 의기투합해 추진하는 규제기요틴의 노림수는 뻔하다.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낙수효과를 통해 새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명분이다. 그래서 '의료업'을 '의료서비스산업'으로 포장하고 의료의 본질을 훼손하는 정책을 밀어붙인다. 의료전문가라면 저급한 경제논리에 장단 맞춰서는 안 된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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