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 / 조남진 지음 / 한국학술정보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을미년을 여는 [북소리]를 고르기 위해 나름 고심했습니다. 여행, 미술, 인물 등 여러 분야의 책을 읽다가 후기 스토아철학을 대표하는 세네카를 공부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해 스페인의 코로도바를 갔을 때 그의 동상을 만났던 것도 인연이 되었고, 지금 우리사회가 도덕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천년도 더 지난 지금과는 시대적 배경이 많이 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덕 가치, 의무, 정의, 굳센 정신 등과 같은 덕목에 중심을 두고 보편적인 우애와 신처럼 넓은 자비심을 강조한 스토아 도덕철학에서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 백과사전에 요약된 스토아철학의 핵심내용입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보기에 영원한 우주질서와 불변적인 가치의 근원을 드러내는 일은 이성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성은 곧 인간 존재가 따라야 할 모범이었다. 그들에 따르면 이성의 빛이란 세계 전체에 경이로운 질서를 부여하며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여 질서 있게 살아가는 기준이다. 스토아 도덕철학도 세계가 통일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도시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은 이 도시의 충성스런 시민으로서 덕과 올바른 행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일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앞부분은 쉽게 이해되지만 뒷부분은 다소 거부감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 같습니다. 로마의 철학자·정치가·연설가·비극작가로 활동하였으며, 로마의 황제 네로의 스승으로 기억되는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기원전 4년에 지금의 스페인 코로도바에서 태어났습니다. 세네카의 국적이 로마로 표기되는 것은 당시 이베리아반도는 속주가 아니라 로마의 영토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릴 때 로마로 간 세네카는 연설가 훈련을 받았으며, 스토아주의와 금욕주의적 신피타고라스주의적 성향을 추구한 섹스티의 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병에 걸린 세네카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이집트로 갔다가 기원 31년경 로마로 돌아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황제 칼리굴라(재위 기원 37~41년), 클라우디우스(재위 기원 41~54년)와는 불편한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41년에 조카딸 율리아 리빌라 공주와 간통했다는 혐의로 세네카를 코르시카로 추방하였습니다. 하지만 세네카는 거칠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연과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49년에는 황제의 부인 아그리피나가 힘을 써 로마로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어서 50년에 집정관이 되었고, 돈많은 여자 폼페이아 파울리나와 결혼했으며, 근위대장이 된 섹스투스 아프라니우스 부루스 등과 막강한 교우관계를 맺었습니다. 훗날 황제가 되는 네로의 스승이 되었는데, 덕분에 네로 황제 재위 초기인 54~62년에 동료들과 함께 로마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반정부 음모사건에 연루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황제 네로의 명령을 받아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세네카>는 서양고대사를 전공하신 조남진교수님이 세네카의 삶과 철학을 정리한 책입니다. 저자는 그리스에서 스토아철학이 태동하게 된 배경으로, “그리스 세계가 정치적 혼돈에 빠졌을 때 개인이 가야 할 길은 본분을 다하는 것과 세계법칙과 우주의 섭리에 따르는 이른 바 금욕적 삶이었다. 그것은 개인의 의무와 내면을 강조하는 스토아철학이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네카와 같은 로마의 지배계층이 스토아철학의 윤리학에 매혹된 것은 당시 로마 지배계층의 타락이 극에 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네카는 로마의 수도원에서 행하는 금욕주의보다 훨씬 능가할 정도로 개인적인 욕구를 억제했다는데, 인간의 도덕적 타락은 철학적 사유와 훈련의 빈곤에서 오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두 7장으로 구성된 <세네카>는 먼저 ‘세네카의 삶과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다루고, 이어서 세네카에 있어서 ‘미덕과 현자’의 의미, 세계국가사상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사유, ‘영혼과 양심’의 의미, ‘죽음과 자살’의 의미를 논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네카의 작품 <행복한 삶>과 <도덕의 편지>를 토대로 한 노예관과 재산과 부를 논하고, 마지막으로는 스토아 철학과 세네카의 자연학과 범신론을 정리하여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명망 있는 현자와 도덕론다라도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라고 머리말을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 세네카에 대한 평판은 그야말로 극에서 극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책을 읽어가면서 가끔은 헷갈리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키프로스 키티온 출신인 제논(기원전 333~262)이 에피쿠로스학파가 정한 쾌락의 윤리적 표준이 자연계의 재난과 위험을 초래한다고 생각하고, 쾌락보다는 이성의 표준에 기초한 도덕체계를 확립하면서 스토아철학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제논은 또한 폴리스적 의식이 완고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체계에 반대하여 특정한 폴리스나 지방제도에서 벗어나 세계를 지향하는 인류의 보편적 윤리를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들이 고유한 국법을 가진 개별국가의 규범에 따라 사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동포이며 같은 시민이기 때문이다.(51쪽)”라는 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스토아철학의 이상세계인 세계국가는 로마의 지배계층에 의하여 성립되었지만, 과연 제논의 이상이 제대로 구현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스토아철학의 기본명제는 최고의 선인데, 이는 자제의 덕과 미혹으로부터 벗어나는 행복이라고 한다면 불교의 기본 사상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열정이나 격정 또는 충동으로 마음이 불안해지고 방해받지 않는 냉담과 무관심의 경지, 아파테이아(Aphatheia)에 이른 현자는 최고  선에 도달한 자이며 참 행복을 이룬 자로 신과 동등하다고 여겼다는 것을 보면, 깨달음을 얻는 모든 이가 부처가 된다고 한 불교의 사상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든 스토아철학은 지고한 하느님이 자신들을 신의 존재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신이라고 보았다고 합니다. 초기와 중기 스토아철학은 그리스시대를 배경으로 발전하였는데, 초기 스토아철학이 위선과 형식주의였다면 중기 스토아철학은 관대한 인간적인 포용력과 보다 자유주의적이고, 보다 인간적인 의무를 강조한 규범과 법칙의 확립을 현실의 삶에서 중시했다고 합니다. 로마로 건너간 스토아철학은 영국 역사가 기번이 ‘인류역사상 가장 행복한 시대’라고 한 네르바(재위 96~98년), 트라야누스(재위 98~117년), 하드라야누스(재위 117~138년), 안토니우스 피우스(138~161년)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년)로 이어지는 철인(哲人) 5현제 시대의 주요 통치이념이 되었습니다. 후기 스토아철학이라고 부르는 이 시기는 윤리학의 시대로 새로운 세계국가와 인류애 사상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도덕적 목적을 정치적 수단으로 쉽게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스토아철학자들은 ‘불행한 처지의 생활에서도’ 자신의 노력에 의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생의 목적은 곧 미덕의 삶이며 진정한 선은 도덕적 선이며 도덕적 선만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세네카는 욕망은 억제되어야 하고, 공포는 억눌러야 하며, 올바른 행위는 정렬되어야 하고, 부채는 청산되어야 한다는, 네 가지를 완전한 미덕으로 들었습니다. 행복한 인생은 이렇게 절제된 길을 따라감으로서 이루는 것이므로, 완전한 미덕을 갖춘 사람은 불운을 슬퍼하지도, 자신의 운명을 비탄하지도 않고, 오직 탁월함과 위대함을 보일 뿐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확고한 신념을 보이는 어둠 속의 빛과 같이 비치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필연적으로 미덕은 끊임없는 훈련과 교육, 그 실제적 적용을 기본으로 하며, 미덕은 인간만이 이룰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덕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만이 신적기원을 가지는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미덕이 교육의 후천적인 결과물이요, 통찰의 문제라고 한다면 악의 원천은 잘못된 판단, 즉 판단의 과오에서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네카는 “도대체 선은 무엇인가?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악이란 무엇인가? 사실에 대한 인식의 결여이다.(92쪽)”라고 했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왜곡하여 수용하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야 말로 악의 원천이 되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사회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악의 원천을 사회로부터 배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교육인 것 같습니다.

세네카는 성 바울과 같은 시대를 살았고, 서로 교감하고 있었다는 다양한 증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네카는 인간은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행복 또한 그러한 것으로 믿었고, 행복에 필요한 것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은 행복을 신에게 요구하거나 호소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불행하다고 해서 누구를 원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덕은 우리로 하여금 끈기 있게 고난을 이겨나가도록 하는 힘이기에, 고통을 단순히 참고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용감한 인내인 것입니다. 현자는 우연한 사건으로 생긴 성공과 실패를 자만하거나 좌절하지도 않는 용기의 미덕에 만족하는 존재입니다. 미덕의 가치가 이러했기 때문에 세네카는 죽음까지도 자유의사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한다면 자살은 장렬한 영웅적 행위이며 미덕의 삶의 일부라고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가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 회피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한다면 이는 결코 영웅적 행위가 될 수 없으며, 현자로서 택할 결정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자살을 예찬한 세네카 역시 “나는 고통 때문에 자살하지 않을 것이다.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한다는 것은 패배이기 때문이다. … 고통 때문에 죽는 자는 나약하고 비겁하다. 그렇다고 아픔을 이기며 용감하게 산다고 뽐내는 자 또한 어리석은 자(211쪽)”라고 말했습니다. 세네카는 생명을 지킨 행위를 용기로 이해했고, 자살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책임감을 통찰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족, 종교, 이념의 차이로 국가가 분열되는 경향이 확산되면서도 서로 섞여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요즈음 스토아철학이 추구하던 세계국가사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스토아철학이 내세우던 세계국가사상은 민족과 국가이성의 일반으로부터 보편적 인간의 문제, 혹은 인간상호문제를 천착했기 때문입니다. 세네카는 『분노에 관하여』에서 “우리가 호흡하고 사람들과 같이 사는 한 인간애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 누구에게 두려움이나 위협을 주지말자(129쪽)”라고 역설했다고 합니다. 그는 진정 평화주의를 지향한 전쟁비판론자였던 것입니다.

세네카는 육체와 영혼은 동반자이지만 영혼이 육체에 예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순간이라고 보았지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체만물이 주기적인 순환의 반복작용으로 영원히 사멸하지 않는 존재로 이어간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한 시대와 한 무리의 생명체가 가면 또 한 시대와 또 한 무리의 생명체의 시대가 순환하여 등장한다. 그래서 일체만상은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철학은 정신세계를 도야하고, 인간의 행위를 인도하며, 우이가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가르쳐 준다. 어떻게 철학을 수학하지 않은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어떻게 그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249쪽)”라고 말하였듯이, 세네카는 인간의 삶에 신보다는 철학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다만 철학은 대중을 사로잡기 위한 계략이나 보이기 위해 고안된 것도 아니라, 말이 아닌 사실에 대한 문제이며, 영혼을 맑게 하고 도야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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