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준(한국원자력의학원 임상연구부장)

한 마을에 A, B, 2개의 병원이 있다고 하자. 갑자기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것 같아 우선 가까운 A 병원에 갔다고 치자. 그런데 마침 찾아간 병원 여기저기에 무슨 환자인권단체에서 뿌린 듯한 이런 내용의 전단지가 널려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최근 이 동네에 괴질이 돌고 있습니다. 지난 달 그 병에 걸린 환자 백 명이 이곳 A 병원에 입원했고 또 다른 백 명은 고개 너머 B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여기 온 환자 중에 세 명이 죽었습니다. 고개 너머 B 병원에 간 환자 중엔 단 한 명만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이곳 A 병원에 왔다가 죽은 세 명의 환자가 B 병원에 갔더라면 그 가운데 두 명은 살았을 겁니다. 여기 A 병원이 B 병원보다 사망률이 무려 세 배나 높으니까요. 게다가 진료비도 더 비싸게 받습니다. 오래 살고 싶으시면 병원 잘 골라서 치료 받으세요.’

선뜻 믿기에는 좀 근거가 엉성해 보이며, 마타도어(matador)의 혐의마저 풍기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런 문건까지 접하고서야 그 병원 입원실에 계속 남아 있겠다고 할 배짱 좋은 환자가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아마도 ‘그 병원 사망률이 높다’라는 한 마디가 환자들에게 발휘하는 파괴력은 잠시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한 공포가 아닐는지.

최근 진보매체임을 표방하는 한 언론사에서 자사의 주간지를 통해 입원 환자들을 자칫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는 기사를 쏟아냈다. <큰 병원이 좋다는 신화의 붕괴>라는 다분히 선정적인 헤드라인 아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이른바 ‘의료기관별 중증도 보정 사망비’ 자료를 전격 공개한 것이다. 앞서 예를 든 A, B 두 병원처럼, 조사대상이었던 국내 66개 대형병원 가운데 사망비가 무려 3배까지 차이가 나는 병원이 있다는 상세한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어느 병원에 가느냐에 따라 살아남을 확률이 극명하게, 충격적으로 갈린다’는 아찔한 표현을 쓰고 있다.

과연 그럴까? 기자가 마치 무림의 금기비급을 공개하는 듯한 심정으로 한방 터뜨린 ‘의료기관별 중증도 보정 사망비’ 자료로부터 과연 우리는 병원비를 더 비싸게 받는 소위 ‘빅 5’ 대형병원들이 사람을 더 살리지 못했고, 대다수 상급종합병원(3차병원)들이 그 아래급 병원들과 그저 비슷한 수준의 사망비 성적을 거두며 ‘돈값’도 못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걸까? 또 과연 그 자료를 가지고 66개 병원의 의료수준을 종합적으로 가늠하여 일등에서 꼴등까지 한 줄로 세울 수 있는 걸까? 물론 통계적 오차를 감안하여 기자는 전체 병원을 상, 중, 하의 세 그룹으로만 구분하였다지만.

먼저 ‘중증도 보정 사망비’가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환자의 구성이 의료기관마다 크게 다른 현실에서 병원들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비교대상지표를 반드시 개개 병원의 특성을 고려하여 표준화시켜야 한다. 90년대 말 영국은 보험청구 과정에서 쌓이게 된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이를 수행했다. 즉 모든 병원의 환자 구성이 같다는 가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환자들의 성별, 나이, 진단명, 동반질환, 입원기간 등등을 전부 병원마다 동일하게 변환시키는 통계적 보정작업을 거치고 난 뒤, 거기에 맞춰 병원마다 일정 기간에 예측되는 사망자 수를 구한 것이다.

캐나다의 경우는 기준연도를 2004년에서 2005년 사이로 고정하고 영국과 유사하게 이 시기 각 병원마다 다양한 변수들을 표준화시킨 사망자수를 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중증도 보정 사망비’를 계산할 때 분모가 되는 기관별 ‘예상 사망자수’인 것이다. 일단 분모가 결정되었으면 그 다음은 아주 간단하다. 그 기관에서 일정기간에 발생한 ‘실제 사망자수’를 앞서 계산한 ‘예상 사망자수’로 나눈 값을 백분율로 표시하면 ‘중증도 보정 사망비’가 되는 것이다. 100%를 초과할수록 해당 의료기관의 질에 문제가 있음을 의심할 수 있다.

여기서 표준화를 위한 통계 보정이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리란 것은 비전문가들도 쉽게 짐작할 수가 있고, 바로 그런 점이 ‘중등도 보정 사망비’란 지표의 객관성이 공격받는 주요 포인트였다. 하지만 일단 그 논의는 통계 전문가들의 몫으로 돌려놓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의문과 우려가 남는다.

이 지표가 고안된 애초의 목적은 병원에서 예방 가능한 불의의 죽음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즉 사망비란 환자안전과 관련된 병원의 전반적인 질을 파악하고 이를 향상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의료기관의 여러 지표 중 하나인 것이다. 원래의 미션이 그처럼 개개 병원 자체의 서비스 질을 모니터링하고 개선하기 위함이기에 제발 이것을 병원간 비교에는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당부가 캐나다, 영국 등 이 지표 원조 창안국들의 각종 자료들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주문대로 개별 병원의 질 평가 및 질 향상용 보조 수단으로만 삼기에도 아쉬움이 꽤 있는 것이 현재의 사망비 자료이다.

병원에 입원한 전체 환자들 중 통상 5~10%는 사망한다. 그리고 이 사망의 95% 이상은 질병의 자연경과 때문이지 질 관리가 부실해서가 아니다. 역으로 병원이 개선해야할 진료의 질과 관련된 문제는 대부분 상해나 입원기간 연장 등의 결과를 초래하지, 곧바로 환자사망에 직결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설령 중증도보정이 완벽히 이루어진 사망비 자료라 할지라도 그것은 질 지표란 측면에서 보면 민감도와 특이도가 낮은, 그리 매력적인 지표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0개 미국병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전체 진료의 질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 그룹에 속한 병원 가운데 3분의 2가 사망비 자체는 별로 나쁘지 않았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병원간 데이터 연계시스템이 완벽히 갖춰지지 않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 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했다면, 어느 곳의 어떤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고 그저 마지막에 머문 병원의 사망자 통계로 잡히는 것도 지표의 신뢰성에 영향을 미치는 왜곡 요인이 된다. 

중증도 보정 사망비라는 것이 병원의 통상적인 행정에서 가만있어도 차곡차곡 쌓이는 자료들을 토대로 만들어낸 것이다 보니 환자의 질환을 전산적으로 어떻게 분류하느냐가 몹시 중요하게 된다. 이때 전산 코딩이 매우 정확히 이루어져야 하는데,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잘 알지만 통상적 병원행정의 코딩 시스템은 오로지 진료비 청구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덕목인지라 실제 환자의 질병 상황과 코딩이 동 떨어지는 경우가 꽤 생긴다.

통계전문가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의도적이건 실수건 간에 원자료의 정확성이 떨어지면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방법이 만무한데, 우리나라 상황에서 병원 보험팀 컴퓨터에 주상병, 부상병 등등 복잡한 진단명이 얼마나 환자 상황과 일치되게 입력되고 있을지 우려스럽다. 또 그렇게 입력된 자료들이 향후 언론에 공개되는 병원 사망률 랭킹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그 입력과정이 더 정확하게 될지 더 왜곡될지는 섣불리 예상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병원의 서비스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표지자로서 사망률, 재입원률 등과 같은 결과지표 외에도 얼마나 적절한 투약이 이루어졌는지, 얼마나 효율적인 진단절차가 진행되었는지 등과 같은 과정지표들이 병용된다. JCI를 비롯한 의료기관 인증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무수한 기준들은 병원의 질 지표가 한두 가지로 관리할 수 없는 복잡한 것임을 방증한다. 게다가 사망률 혹은 사망비라는 지표는 그 자체만으로 병원시스템 어디가 문제인지를 즉각 인지하여 곧바로 질 향상을 위한 행동을 유도하기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이렇듯 상대적으로 덜 실용적이고 충분하지 못한 지표가 ‘사망’이라는 극단적 단어의 파괴력에 힘입어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나아가 병원 랭킹 매기기의 일차적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병원별 사망비 자료를 공개한 언론사 역시 이 지표의 불완전성과 여러 시비들을 모르지 않았다. 기사 곳곳에 ‘통계의 신뢰도 논란이 있다’라든지 ‘사망비는 국제적 논란거리’라든지 하는 안전장치들을 심어놓긴 했지만, 이것을 대뜸 ‘대한민국 병원 성적표’라 칭하고서, 점수를 까봤더니 ‘크고 유명한 병원이 환자를 잘 고칠 것이라는 통념은 깨졌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분명히 서두에 논란이 많은 지표라 전제해 놓고서 이것이 좋은 병원, 나쁜 병원을 구분할 수 있는 절대 잣대인 양, 단정적 어휘들을 동시에 구사하는 것은 정정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전문가와 일반인들 사이 지식비대칭의 간격을 메우는 교량 역할을 담당해야할 언론이, 과대포장 된 자료 하나를 들고서 재벌병원, 대형병원 죽이기를 선동하는 것 같은 의심마저 들어 안타깝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자료공개에는 물론 환영하지만, 그것이 가진 의미와 한계 역시 사심 없이 냉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언론의 본분일 것이다.

홍영준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석, 박사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UCSD 암센터 초빙연구원현 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현 한국원자력의학원 임상연구부장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현 대한진단검사의학회 R&D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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