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포루스 과학사 / 정인경 지음 / 다산에듀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10월에 다녀온 스페인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같이 일하는 분들과 나누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꽃보다 할배>보다는 조금은 심각해 보이는 이유를 들어서 스페인을 구경하러 갔노라고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판구조론에 따른 지진발생 현황자료에서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이 충돌하는 지중해주변에서 화산활동이 많고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이어서 자연스럽게 지중해를 둘러싸고 전개되어온 유럽의 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로 연결하였습니다. 유럽과 이슬람의 만남은 아무래도 도항(渡航)이 쉬운 보스포루스해협과 지브롤터해협을 통하여 주로 이루어져왔을 것입니다.

문명과 문명의 만남이 주로 전쟁이라는 파괴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지만 평화가 유지될 때는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발칸반도에서는 최근까지도 인종과 종교의 차이 때문에 충돌을 빚었습니다만, 또 다른 접점 이베리아반도에서는 1492년 기독교 왕국이 이슬람왕국을 축출한 뒤로 아직까지는 대규모 충돌이 일어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이슬람문명과 기독교문명이 서로에게 미친 영향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성품이 자연을 닮아 너그럽고 포용력이 컸던 까닭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스페인으로 가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대륙의 동쪽 끝에 사는 우리는 서쪽 끝에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단편적으로 배운 지식에 머물고 더 나아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최근까지 우리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친 사고체계 때문에 다양한 문명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중립적으로 판단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스페인에서 보고들은 이야기들을 여행칼럼으로 풀어내면서 중세 무렵 이베리아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들을 찾아 읽으면서 생각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가기 시작하게 된 것이 저로서는 참 다행입니다.

마침 다산에듀에서 ‘동양과 서양의 장벽을 넘어 인문학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통합 교양서’라는 타이틀로 보스포루스 인문학 시리즈를 기획한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 <보스포루스 과학사>를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제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보스포루스해협은 좁은 곳이 200미터에 불과해서 한걸음에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에게 반한 제우스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을 헤라가 눈치를 채자 이오를 암소로 만들었는데, 헤라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이오가 이곳을 건너 도망쳤다고 해서 ‘소가 건넌 해협’이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스포루스 인문학 시리즈를 기획한 강응천 문사철 대표는 ‘우리는 오랫동안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는 넘나들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생각에 빠져 살아왔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유럽중심의 이데올로기의 산물에 불과하며 동과 서의 역사와 문화는 분명 오랜 옛날부터 수시로 교류하며 서로를 살찌워왔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유럽중심의 사고에 대한 반발로 아시아를 턱없이 높여 보려는 태도를 경계하면서 ‘동서양의 병진(竝進)과 교류를 과학, 미술, 문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살펴볼 것’이라고 했습니다.그리스철학에서 태동하여 발전해 나온 과학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객관적 관찰과 실험을 통하여 얻는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을 세우는 학문으로 정의합니다. 따라서 과학적 사실은 절대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관찰과 실험의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지면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의 영역에서도 변화해온 과정을 뒤쫓는 학문이 과학사입니다. 즉, ‘과학사(科學史)는 자연세계에서 인류의 역사적 발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정의되는 것입니다.

<보스포루스 과학사>의 저자 정인경 박사는 ‘과학은 인간이 만든 언어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지구에 출현했을 때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게 되었는데, 그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과학을 창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럽문명이 그리스 철학에서 과학을 발전시켜온 것처럼 역사적으로 각 문명권은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과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근대들어 독보적인 발전을 이룩한 서양과학에 압도되어 개별 문명에서 발전시켜온 과학의 역사조차 도태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앎이 삶을 바꾼 수많은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부단히 자연에 부딪히면서 이해하고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냄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용된 과학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고, 기술은 실용적 목적으로 개발한 도구라고 한다면, 결국 인간은 과학과 기술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기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근대 이후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는 기술문명을 받아들이기에도 벅찼던 우리는 과학을 앎으로서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다고 비판합니다. 과학과 우리의 삶을 연결하여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얄팍한 우리의 과학사적 인식은 서양과학의 성취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이 문제였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흐름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꿰뚫고, 인간 스스로 세계를 앎으로서 삶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었다는 통찰을 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루시의 화석과 복원한 모습. 출처 : 보스포루스 과학사

<보스포루스 과학사>는 각각 ‘인류의 탄생과 문명의 발흥’,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세의 과학과 기술’, ‘과학혁명, 유럽의 지식과 야망’, ‘인간을 닮은 현대 과학기술’이라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탄생과 문명의 발흥’에서는 고생물학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여 인류가 어떻게 지구상에 출현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그리고 황허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출현한 4대 문명에 중앙아메리카의 마야문명과 남아메리카의 잉카문명을 더하고 있습니다.

각 문명이 독립적으로 문자를 고안해서 사용하였다는 것을 중요한 이유로 보았습니다. 지역적으로 씨앗이 뿌려진 고대문명이 어디에서는 대약진을 하고 어디에서는 소멸하고 말았는가 하는 점에서는 기술이 학문으로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문명이 그리스문명으로 전해지면서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발전의 토대를 갖추게 되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문명 역시 나름대로의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기술발전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문명의 자연철학이 우주의 근원물질로 물, 불, 흙, 공기와 같은 물질을 제시한 것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물질이 아닌 기를 만물의 근원으로 보았다는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기술은 유럽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인류의 4대 발명품이라고 하는 종이, 나침반, 화약, 인쇄술은 모두 고대 중국에서 발명되었는데, 종이제작 기술이 1500년 뒤에 유럽에 전해진 것을 비롯하여 지진계는 1700년이나 앞서고 대부분의 중국의 발명품은 유럽보다 1000년 이상 앞서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럽문명과 아시아문명 사이의 엄청난 격차가 생기게 된 이유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세의 과학기술’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스 학자들에 의하여 도약한 다양한 학문들은 로마로 건너가게 되지만 그리스학문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로마가 국교로 삼은 기독교의 영향이 있습니다. 즉 과학의 발전은 기독교의 교리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그리스 학자들의 연구성과들이 멸실되거나 수도원의 비밀도서관에 숨겨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문명이 이룩한 빛나는 성과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에 인접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이슬람문명이 그리스문명을 계승하여 보전한 것은 물론, 인도와 중국에서 발전해온 성과들을 받아들여 진전을 이룩한 것입니다. 이슬람문명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근대에 들어 이룩한 과학혁명을 통하여 주도권을 쥐게 된 서양의 과학사학자들이 ‘과학기술의 주도권은 늘 유럽이 가지고 있었다’라는 유럽중심적 시각으로 세계과학사를 써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유럽이 고대 그리스학문을 계승하여 근대과학을 출현시킬 수 있었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일부 유럽의 역사학계에서 유럽의 중세를 암흑기가 아니라 고대의 문명으로부터 근대의 발전을 준비하기 위한 휴식기였다는 해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윤용수교수는 역사의 발전과정에는 잉태기와 성장기, 발전기와 쇠퇴기를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당한 측면도 있겠으나, 인류문명의 발달은 어느 한 순간도 중단된 적이 없고, 유럽이 인류문명의 무대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인류문명의 주역은 아랍인이었으니, 이들이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유럽문명이 암흑의 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지중해지역원 지음, 지중해 문명의 다중성 27쪽, 이담출판사, 2010년)

7세기 이후 아라비아반도에서 출현한 이슬람문명은 동쪽으로는 인도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서쪽으로는 북부아프리카를 넘어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하여 오랫동안 지배하면서 학문의 꽃을 피웠고, 빠르게 영토를 확장하면서 편입시킨 다양한 문명들을 녹여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켜온 업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문명은 때마침 전해진 종이제작기술을 바탕으로 유용한 지식을 모아 번역하고 출판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특히 그리스문헌의 가치를 알아본 칼리프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그리스의 학문적 성과를 대부분 아랍어로 번역하여 각 지역의 도서관에 소장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후기 우마이야왕조의 수도였던 코르도바에는 도서관이 70여 곳에 이르렀고, 수십만 권의 장서를 소장한 곳도 여러 곳이었다고 합니다.

인류의 과학문명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이슬람문명은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짚은 저자는 중국과 조선에서 일어났던 과학의 발전과정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세종조에 이룩한 천문, 과학, 의학, 언어 분야에서의 발전을 괄목할만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과가 이어지지 못한 것은 세종의 통치행위의 하나로 주도한 과학기술이 궤도에 올라 사회가 안정되면서 그 동력이 사라진 것이 원인이라는 해석입니다.

오랜 기간 암흑에 갇혀있는 유럽의 문명이 르네상스를 맞아 활기를 띄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아시아에서 전해진 종이, 화약, 나침반 등의 기술은 로마가 무너진 다음 할거하던 지방영주들 간의 전쟁을 통하여 빠르게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과학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리스에서 시작한 자연의 탐구는 자연을 명상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자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유용한 지식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결국 과학은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으로 과학혁명이 일어나게 되었음에도 동아시아에서는 반향이 크지 않았던 것은 유럽의 학문이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하여 선별적으로 전달되면서 유럽 학문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생겼던 것도 원인이 되었고, 당시 동아시아의 우주론과 자연인식체계에서는 무엇이 우주의 중심인가는 큰 문제가 될 수 없었던 것도 기여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현대의 과학기술이 제국주의에 봉사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적시하면서 이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과학기술이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답을 구하려면 과학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과학사 공부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에 대한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문제의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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