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의 현상학과 현대문명 비판 / 에드문트 후설 지음 / 이종훈 편역 / 이담출판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연초에 박인철 교수가 정리한 <에드문트 후설>을 읽으면서 후설의 철학을 비교적 쉽게 풀어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후설의 철학이 난해하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요? 후설의 철학이 난해하다고 생각되는 이유에 대하여 <후설의 현상학과 현대문명비판>을 옮긴 이종훈 교수는 그가 남긴 방대한 원고의 전모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해온 점과 그가 일정한 철학적 체계를 형성하기보다 부단한 사유실험으로 다양한 문제영역을 분석하면서 발전시켜나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후설이 “이론과 실천, 가치를 포괄하는 보편적 이성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통해 궁극적으로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모든 학문의 타당한 이론과 인간성의 진정한 삶을 정초하려는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즉 선험적 자아(주관성)을 해명하려는 선험적 현상학의 이념을 일관되게 추구하였다.”라고 요약하였습니다.

후설 현상학의 참모습을 온전히 파악하는 길은 ‘그의 저서를 직접 읽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바람직하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저술이 방대하고 대부분 철학 전공자를 위한 강의나 전문지에 발표된 내용이라서 그 내용을 이해하는일이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이 책에 담은 「유럽 인간성의 위기에서 철학」과 「현상학」은 분량이 많지 않고,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거나 백과사전에 명시적으로 규정하기 위하여 간명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버트런드 러셀처럼 후설 역시 수학자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수학자 후설이 철학자로 방향을 바꾼 것은 1884년부터 1886년까지 빈대학에서 브렌타노의 강의를 듣고, 철학도 수학처럼 하나의 엄밀한 학문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수학이 지니는 학문적 엄밀성과 정밀성의 영향을 받은 후설은 철학이 엄밀한 학문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기본적으로 어떤 편견이나 사심에 의해 이끌림 없이, 또한 확증되지 않은 어떠한 전제에도 기반을 두지 않는, 이른바 ‘무전제성의 원리에 부합해야 한다.’라고 보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일상적으로 믿고 있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철학적 지식이 되려면 별도의 철학적 정당화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통이 되어 온 객관주의에 물든 서양철학은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철학의 진정한 방법은 자연과학의 방법에 다름 아니다.’라고 한 브렌타노의 영향과 당시에 막 등장한 심리학에 눈을 뜬 후설은 수학적 개념을 심리적인 작용에 근거해 해명하려고 하였습니다. 1901년에 쓴 <논리연구 II>에서 자신의 철학을 현상학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기술적 심리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미 1764년 람베르트의 저서에서 등장하는 ‘현상학’이라는 용어를 가져온 후설은 현상학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현상학은 기술심리학이다. 따라서 인식비판은 본질적으로 심리학이거나 최소한 오직 심리학의 토대위에 구축되어야만 한다.(…) 일체의 이론적-심리학적인 관심을 떠나 인식체험을 단지 순수하게 기술하면서 탐구한 것을 경험적 해명과 발생을 지향하는 본래적인 심리학적인 탐구와 구분하는 것은 인식론적으로 매우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는 인식체험에 대한 순수 기술적 탐구를 기술적 심리학 대신 현상학이라고 말하면 좋을 것이다.(박인철 지음, 에드문트 후설 19~20쪽, 살림출판사, 2013년)”

「유럽 인간성의 위기에서 철학」은 1935년 5월 7일과 10일 두 차례에 걸쳐 오스트리아 빈문화협회에서 행한 강연의 내용입니다. 나치정권이 등장하면서 유럽문명에 위기가 닥치고 있음을 인식한 후설은 이러한 위기가 유럽 학문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근원은 자연주의에 의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선 물리학적 객관주의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있는 사실만 다루는 단순한 사실학은 있어야 할 당위의 규범을 다루지 못하는 단순한 사실인만 만들뿐이다”라고 하면서, 철학의 출발점인 그리스적 합리주의로 돌아가 인간의 보편적 기능이자 능력인 자율적 이성을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현대 유럽 문명은 근대 들어서 빠르게 발전한 정밀하고 객관적인 과학이 수학적 언어를 통해 자연을 일관되게 기술하면서 일궈낸 혁명의 결과인데, 이 과정이 심화되면서 수학의 역할이 점차 배제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정신적 작업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자연과학의 결과해석과정이 생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일반적으로 모든 학문)은 정신적 작업수행, 즉 공동으로 연구하는 자연과학자들의 정신적 작업수행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과학의 작업수행은 정신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범주에 속하는데, ‘자연과학’이라는 역사적 산물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려드는 것은 실로 배리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신과학의 연구자들은 자연주의에 맹목적이 된 결과, 보편적이며 순수한 정신과학의 문제를 제기하는 일뿐만 아니라, 정신성의 무조건적으로 보편적인 것을 그 요소들과 법칙들에 따라 추구하는 본질학, 즉 정신을 순수하게 정신으로서 탐구할 본질학에 관해 묻는 일조차 철저히 소홀하게 방치해왔다.(32쪽)”라고 비판했습니다.

유럽 정신의 뿌리라고 할 그리스시대에서 사회 환경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태도’가 일어나 체계적으로 완결된 문화형태로 성장하여 새로운 정신적 형성물이 태어났는데, 이를 철학(Philosophi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의 근원적인 의미는 ‘보편적 학문’, 세계 전체에 관한 학문, 즉 모든 존재자의 전체적 통일성에 관한 학문을 뜻하는 것인데, 인접한 문명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하여 더 풍요롭고 더 복잡하게 변화해나가는 힘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 학문인 철학은 어쨌든 그들에게만 특별히 부각된 것이 아니며, 그들과 더불어 비로소 세상에 출현하지도 않았다.’라는 반론이 나왔음을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 스스로도 현명한 이집트인과 비빌로니아인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실제로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47쪽)’라고 옹호합니다. 반면 오늘날 유럽은 인도철학이나 중국철학 등을 그리스철학과 동등한 수준에 배치하여 동일한 하나의 문화가 추구하는 이념 속에 넣고 있지만 단순히 다른 역사적 행태로 파악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후설은 세계 전체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실천적 태도와 대립되는 자연성을 변경시킬 수도 있는 이론적 태도 속에서 일어나게 되는 철학적 관조를 통하여 더 높은 단계의 실천을 지향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행하는 판단중지(Epoche)가 필요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후설이 말하는 판단중지는 세계를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자연적 태도로 정립한 것의 타당성을 일시 중지해 경험의 영역을 새롭게 보려는 것을 말합니다. “근원적인 관조에서 즉 완전히 ‘무관심하게’ 모든 실천적 관심을 판단중지해 생긴 세계를 바라보는 것에서 학문의 고유한 관조로 변경된 것을 해명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양자는 ‘주관적 의견(doxa)’와 ‘객관적 인식(episteme)’을 대조해봄으로써 매개된다(62쪽)”라고 했습니다.

유럽 학문이 위기에 처한 원인은 길을 잘못 들어선 합리주의후설은 소크라테스 이래로 정신적 공동체의 생활을 하는 인간은 여전히 객관적 세계의 질서 속에 배치되었지만, 인격, 즉 자아로서 인간은 목적과 목표를 지니며, 영원한 규범인 전통과 진리의 규범을 지니는 존재라고 하였고, 그와 같은 관념은 유럽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맥을 이어왔다고 하였습니다. 근대 이르러 발전한 수학적 자연과학은 능률성, 개연성, 정확성, 계산의 가능성을 지닌 귀납법을 완성해내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 방법의 합리성은 철저하게 상대적인 하나의 학문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단지 ‘주관적인 것’인 직관적으로 주어진 환경세계가 학문의 주제로 되는 가운데 망각되었기 때문에 연구하는 주관 자체도 망각되었고, 과학자 자신도 주제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때 후설이 관심을 가졌던 심리학에 대하여도, 실천적으로 매우 귀중한 경험적 규칙들을 많이 입증해냈지만 도덕의 통계학이 결코 도덕학이 될 수 없듯이, 참된 심리학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정신만 그 자체로 또 그 자체에 대해 스스로 존재하며 자립적이다. 그리고 오직 이 자립성에서만 정신은 참으로 합리적으로, 즉 참되며 그 근본에서 학문적으로 취급될 수 있다.(93쪽)”라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의 의미상 참된 자연은 자연을 탐구하는 정신의 산물이며, 따라서 정신에 관한 학문을 전제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신의 근본적 본질을 지향성 속에서 파악하고, 이것으로부터 무한히 일관되게 정신분석을 구축할 참된 방법을 형성하는 작업은 선험적 현상학으로 이끌어갔고, 선험적 현상학이 유일하게 자연주의적 객관주의와 모든 객관주의 일반을 극복했다(95쪽)”라고 했습니다.

정리하면, 유럽 학문의 위기는 합리주의 자체의 본질적 문제라기보다는 합리주의가 외면화된 것, 즉 합리주의가 ‘자연주의’와 ‘객관주의’에 매몰된 것에 있다고 후설은 보았고, 유럽의 현존재의 앞날은 본래의 이성적 삶의 의미에 대립해 소외된 채 유럽이 몰락하고 정신을 적대시해 야만성으로 전락하는 길과 자연주의를 궁극적으로 극복하는 이성의 영웅주의를 통한 철학의 정신에 기초해 유럽이 재생하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영백과사전」의 ‘형상학’ 항목은 1927년부터 후설과 제자 하이데거가 공동으로 집필하다가 견해차가 심해지면서 후설이 독자적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후설은 글머리에서 현상학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현상학’은 19세기말 철학에서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기술하는 방법과 이 방법에 입각해 등장한 아프리오리(apriori; 칸트 이후 ‘경험의 확실성과 필연성에 대한 근거형식’을 뜻한다)한 학문을 일컫는다. 이 학문의 목적은 엄밀한 학문적 철학을 위한 원리적 도구를 제공하고, 이것을 일관되게 실행함으로써 모든 학문을 방법적으로 개혁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105쪽)” 그리고 철학적 현상학에 평행하는 현상학적 심리학이 생겼는데, 오직 이를 기초로 해야만 학문적으로 엄밀한 경험적 심리학이 정초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순수 심리학의 주도적 이념을 정초(定礎)하고 전개하기 위하여 첫째로 심리적인 것에 관한 순수 경험과 이의 반성을 통해 그때그때의 사태, 사고, 가치, 목적, 보조수단 등에 상응하는 주관적 체험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그것들은 우리에게 ‘의식되며’, 가장 넓은 의미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을 ‘현상(Phänomen)’이라 부르며, 이것의 가장 일반적인 본질적 특성은 ‘무엇에 관한 의식’, 즉 그때그때의 사물‘에 관한’, 사고‘에 관한’, 계획․결단․희망 등에 관한, [요컨대[‘무엇에 관한 나타남’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110쪽)” ‘무엇에 관한 나타남’인 존재의 그 근본적 성격을 철학적 용어로 설명한다면 ‘지향성’입니다.

“현상학자는 현상학적 반성을 수행함에 있어 반성되지 않은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객관적으로 정립한 것이 함께 수행되는 모든 것을 억제해야만 하며, 이와 동시에 자신에 대해 곧바로 ‘현존하고 있는’ 세계를 판단의 형식으로 끌어들이는 모든 것을 억제해야만 한다.(116쪽)”. 즉 현상학자는 철저한 ‘판단중지’가 필요하다.

현상학적 순수 심리학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하여 다음 네 가지가 요구된다고 합니다. 1) 지향적 체험 일반의 본질에 속한 특이성을 기술하는 것, 2) 어떤 영혼 속에서 일반적으로 본질적 필연성으로 등장해야만 하거나 등장할 수 있는 지향적 체험의 개별적 형태를 탐구하는 것, 3) 어떤 영혼의 삶 일반의 형태 전체를 제시하고 본질을 기술하는 것, 4) ‘자아’라는 명칭은 그 자아에 속한 ‘습득성’의 본질적 형식들에 관해서 새로운 연구의 방향을 지시하는 것, 등입니다.

후설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아프리오리한 학문들, 즉 선험적 소박함 속에 형성된 학문들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현상학적으로 정초해야만 그러한 학문들을 방법적으로 완전히 정당화되는 진정한 학문으로 별화시킬 수 있다.(148쪽)”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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