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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살릴 수 있는 환자도 죽음으로 내모는 청맹과니들의 국가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4.12.1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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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지 7개월째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이 회장은 지난 5월 10일 늦은 저녁 갑작스런 흉통과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자 집근처 순천향대 서울병원 응급실로 후송돼 심폐소생술을 받고 다시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밝힌 것처럼 이 회장은 초기에 신속하게 심폐소생술을 받고 이후 스텐트 삽입술로 막힌 혈관을 뚫었다. 이후 제기능을 못하는 심장과 폐를 대신해 에크모(ECMO, 인공심폐기) 장치를 이용해 피를 돌게 했다. 그리고 심정지 상황에서 뇌혈류 차단으로 인한 신경세포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저체온요법 치료도 받았다. 7개월째  입원중인 그의 병세가 어떤 상태인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성서울병원 측 설명으로는 상당히 호전됐다고 한다.

병원의 설명을 그대로 신뢰한다면 아마도 국내 최고 부자인 그의 재력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대의학이 최상의 조합을 이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급성 심근경색증이 발생했을 때 누구나 이건희 회장처럼 그런 의료서비스를 받기는 힘들다. 그 이유야 쉽게 짐작 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최적의 의료서비스 이용을 누릴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장 크게 고려할 수 있는 건 의료비용과 주거하는 곳의 의료환경이다. 이 회장이 받았던 각종 검사와 치료에 든 비용은 상당히 클 것으로 추측된다. 개당 130만~200만원 가까이 하는 스텐트 재료 비용부터 각종 검사비, 입원비, 수술비 등을 합하면 일반인이 부담하기 벅찬 수준임은 분명하다. 그나마 이 중에서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항목도 있기 때문에 경제적 형편에 따라 부담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비용 부담 때문에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더 확대함으로써 이 부분의 불평등 간극을 줄이거나 해소할 수 있다. 다행히 보건복지부는 평생 3개까지만 건강보험을 적용하던 심장 스텐트 개수를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 개수 제한 없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급여기준을 개선했다. 다만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전문의간 협의에 의한 통합진료를 치료가 결정될 때만 인정한다는 새로운 급여기준을 제시해 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의료비용 부담보다 더 큰 문제는 의료환경이다. 이건희 회장은 다행히 집 근처에 적절한 응급처치가 가능한 대학병원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의료환경이 모든 지역에 갖춰진 건 아니다.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으로 가면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응급처치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는 곳도 있다. 기존에는 그런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병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진 지역도 있다. 대구와 경남의 일부 종합병원은 내과 전공의가 부족해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가 내원해도 적절한 응급처치와 치료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원한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돌려보내는 곳도 있다.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에게는 생명과 직결되는 '골든타임'이 있다. 응급실 도착후 신속하게 진단하고 혈관을 막은 혈전을 녹이는 혈전용해제를 30분 이내에 투여해야 한다. 그리고 그물망처럼 생긴 스텐트를 넣어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PCI)을 90분 이내에 시행해야 한다. 90분이란 골든타임 안에 이뤄한 조치가 이뤄져야 생명을 살리고 후유증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순환기내과 전문의와 간호사, 방사선사 등의 전담의료진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특히 응급실에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내원했을 때 가장 먼저 상태를 확인한 후 검사를 의뢰하고 담당 전문의에게 콜(CALL)을 하는 것이 전공의다. 그런데 내과가 전공의 기피과로 전락하면서 많은 지방병원이 골든타임을 지키기 힘든 의료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실시된 2015년도 전공의 모집 결과, 내과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한 지방병원이 많았다. 내과 전공의가 부족한 병원은 응급실과 중환자실 운영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전공의가 하는 일이 많고 역할이 크다.

내과가 전공의 기피과로 전락한 것은 의료계에도 큰 충격이다. "다른 과가 다 무너져도 내과는 버틸 거라고 얘기했는데…"라며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내과의 붕괴는 그 자체로 한국의료의 붕괴 그 자체다.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내과가 기피과로 전락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은 잘못된 의료정책과 의료수가 때문이다.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을 확대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선택진료와 상급병실 축소를 추진했다. 이 두가지는 지금까지 대학병원 등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갑자기 줄어든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병원들은 인건비 절감과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경영 전략을 택했다. 그러다보니 인건비가 가장 저렴한 전공의들에게 더 많은 업무가 몰렸다. 여기에 선택진료와 상급병실 축소에 따른 비용보전 명목으로 외과계열의 수가 인상을 단행하면서 상대적으로는 내과는 홀대했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내과가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란 우려도 높다.

가뜩이나 열악한 의료수가에 타과보다 적은 비급여 영역, 점점 늘어나는 업무부담, 원격의료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자 많은 젊은 의사들이 내과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것이다. 내과 전문의 자격을 따고 전임의 과정까지 마쳐도 갈 곳이 없다고 한다. 내과의원은 이미 포화상태고 병원 일자리도 갈수록 줄고 있다. 참다못한 일부 수련병원 내과 전공의들은 수련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젊은 의사들의 영혼을 잠식한다. 내과는 그렇게 무너지고 있다.

정부는 이런 위기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산부인과나 흉부외과처럼 내과에서도 전공의 기피로 인한 문제가 불거지면 뒤늦게 수가를 인상하거나 전공의 수급조절을 유도할지 모른다. 일부 진료과나 의료영역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요행히 그런 식으로 수십 년째 얼기설기 뜯어 맞춰왔다. 하지만 내과는 사람의 몸 속에서 생기는 가장 폭넓은 질환 영역을 다루며, 의료의 근간이 되는 진료과다. 내과의 붕괴가 한국의료의 붕괴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대로 가면 정말로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인 의료정책을 멈출 때다. 그걸 모르면 '청맹과니들의 국가'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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