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없는 저출산 극복 정책에 연간 수조원 투입…지방은 분만·영유아 진료시스템 붕괴 직면

[라포르시안]  소폭으로 오름세를 보이던 출산율이 4년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정부 차원에서 매년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으며 저출산 극복 정책을 추진했지만 작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출산율은 5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인구, 보건의료, 사회복지 등에 관한 국내외 주요 통계를 수록한 '2014 보건복지통계연보'를 발간했다.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49세)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이 1.19명으로 집계됐다.

합계출산율은 2007년 1.25명에서 2008년 1.19명, 2009년 1.15명으로 떨어진 뒤 2010년 1.23명, 2011년 1.24명, 2012년 1.3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였다.

그러다 2013년 들어 1.19명으로 다시 5년 전인 2008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합계출산율이 1.3명 미만이며 '초저출산'으로 분류된다. 한국은 13년째 초저출산국가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 자료 출처 : 2014 보건복지통계연보, 제작 : 라포르시안

복지부는 "출산율이 낮아진 이유는 사회, 경제적 환경 및 가치관 변화에 따라 결혼 기피와 연기로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출산 기피현상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저출산의 이유를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일과 양육의 양립이 힘든 기업문화, 갈수록 심화되는 젊은 층의 실업난 등 복잡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지방의 분만 인프라·소아청소년 진료시스템 붕괴 우려  저출산과 관련해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바로 분만 인프라와 소아청소년 진료시스템의 붕괴다.

산부인과의 분만 인프라는 지난 수년 간의 왜곡된 의료수가와 전공의 인력수급 정책으로 인해 거의 붕괴 직전까지 왔다.

최근 10년새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 병의원 수는 반토막이 났고, 해마다 배출되는 산부인과 전문의 수도 절반 이하로 줄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간한 '201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분만기관 수는 2004년 1,311개에서 2008년 954개, 2010년 808개, 2012년 739개, 2013년 699개로 최근 10년 사이 612개가 사라졌다. 

분만기관뿐만 아니라 매년 배출되는 산부인과 전문의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연간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 수는 2007년까지 200명을 넘겼지만 이후 전공의 지원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2008년에는 177명으로, 다시 2011년에는 96명으로 떨어졌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정부 차원의 산부인과 지원책이 마련되면서 2011년까지 60%대를 기록하던 전공의 지원율이 2013년에는 73%로 증가했고, 2014년에는 87%, 그리고 최근 실시된 2015년도 전공의 모집에서는 정원을 초과한 105%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미 지방을 중심으로 산부인과의 분만 인프라가 심각한 수준으로 무너지면서 전국 곳곳의 시군이 분만취약지 상태다.

▲ 자료 출처 : 2013년 건강보험통계연보

결혼 연령이 계속 높아지면서 35세 이상 고령산모 비율이 갈수록 확대되고, 이로 인해 저체중아와 미숙아 출산, 고위험 산모가 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2014 보건복지통계연보'를 보면 여성인구 1천명당 35~39세의 고령산모는 2007년 25.6명에서 2013년에는 39.5명으로 증가했다.

그만큼 '고위험 임산부'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분만기관과 분만 의사가 감소하면서 고위험 임산부가 적절한 분만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의료인프라가 취약해졌다.

35세 이상 고령산모는 임신중 고혈압성 질환, 임신성당뇨, 제왕절개 빈도, 조산빈도 등이 증가하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분만의료 서비스가 필요하지만 분만기관과 산부인과 전문의 감소로 인해 고위험 산모의 임신관리 기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분만취약지를 중심으로 모성사망비 증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산부인과학회는 "지난 10년간 분만병원 수는 50%나 줄고 분만취약지가 전국의 20%로 급증했다"며 "그 여파로 급기야 2008년 이후 우리나라의 모성사망비는 오히려 증가하는 악결과가 초래되었고, 분만취약지가 가장 많은 강원도는 타 지역에 비해 3배 높은 모성사망비를 보이는 등 분만 인프라 붕괴 피해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달했다"고 우려했다. 분만 인프라의 붕괴와 함께 지방을 중심으로 소아청소년 진료 기능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경남 등 일부 지역의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어 응급실에 소아환자가 내원해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태에 빠졌고, 입원이 필요한 소아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돌려보내는 상황까지 펼쳐지고 있다.

실제로 경남에 위치한 500병상 규모의 한 종합병원은 수년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입원이 필요한 소아환자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의 대학병원으로 전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저출산을 극복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다.

가까운 곳에 분만을 할 수 있는 산부인과가 없어 원정출산을 해야 하고, 아이가 아플 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가 없다면 그것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 복지부가 올해 인공임신중절 예방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한 홍보 포스터

저출산 극복하자면서 분만 기피하게 만드는 정책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안일하게 저출산 대책을 수립하고 연간 수조원을 지원하면서 책임을 다했다는 식이다.

분만수가는 여전히 낮고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의 내용은 비현실적이라 참여 병원들이 불어나는 적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게다가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산과 무과실 보상)'가 도입됐지만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비한 보상재원의 일정 부분을 분만병원에 부담토록 하면서 산부인과 병원과 의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2014년도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재원 분담금 부과·징수 공고'에 따르면 올해 무과실 보상재원 분담금 적립목표액은 11억2,500만원으로, 이 중에서 70%에 해당하는 7억8,800만원은 국가가 부담하고 나머지 30%인 3억3,700만원은 분만실적이 있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부담토록 했다.

과실이 없는 분만사고에 대해서도 보상금 재원을 부담토록 한 것이 산부인과 의료진의 자존심을 심하게 건드는 바람에 분만기피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분만 인프라 붕괴를 겪은 이웃 일본이 무과실 분만사고의 보상재원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는 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당연히 정부의 저출산 극복 정책의 실효성은 물론 임신과 분만 등의 의료서비스 영역에 대한 제대론 된 고민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최근 몇 년간 출산율이 증가한 것은 저출산 극복 정책 때문이 아니라 황금대지띠, 백호띠, 흑룡띠 등이 오히려 더 큰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서 의료 부문의 투자가 미흡하고, 늘어나는 고령산모를 적극적으로 돌볼 수 있는 산부인과 지원정책이 마련돼야 하는데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연간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한 저출산 극복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누군가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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