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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의료현장에서 철학과 윤리를 생각한다

[기술 의학 윤리, 한스 요나스 지음, 이유택 옮김, (솔 펴냄)]


서양의학에서 앞서 발전해온 현대의학을 따라잡기 위하여 의료계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BT분야는 최근에 시작된 분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 분야 연구를 선도하는 그룹에 들어있습니다. 그동안 BT분야가 중요하다고 변죽만 울리던 정부는 2012년도에 줄기세포연구에 1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정부예산을 들여다보면 교육과학기술부는 줄기세포 실용화기반기술(원천기술) 개발에, 보건복지부는 연구성과를 실용화할 수 있는 임상연구에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교육과학기술부는 배아․역분화줄기세포연구에, 보건복지부는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관심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그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요? 부처에 속하는 전공분야의 관점이 작용한 것일까요?황우석교수 사건 때도 논의가 된 바가 있습니다만,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피할 수 없는 논쟁거리는 ‘윤리문제’일 것입니다. 인간 배아의 윤리적 위치는 의학윤리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역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사람 배아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요 쟁점은 뒤에서 다시 논하기로 하고 원론적인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책임원칙이라는 철학적 명제에 천착하고 있는 독일의 생태철학자 한스 요나스교수님은 ‘책임원칙의 실천’이라는 부제를 단 <기술 의학 윤리>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 특히 의학분야에서 책임윤리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술 의학 윤리>를 통하여 의학의 진보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인체실험문제, 의술에서의 인간적 책임문제, 우생학으로부터 인간복제, 유전공학에 수반되는 윤리적 문제, 장기이식에 따른 뇌사의 정의와 관련하여 죽음을 실용적으로 재정하는 문제, 죽음에 대한 환자권리의 한계에 관한 문제 등등 의료현장에서 부딪힐 수 있는 다양한 이슈에서의 윤리적 판단을 논하고 있습니다.의학은 환경지배에 여념이 없는 기술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환자의 안녕을 고려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보았지만, 과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된 최근의 의학 분야의 기술발전을 보면서, ‘책임원칙’의 중요성을 제기하게 된 요나스교수님의 철학적 배경은 서문에 있는 다음 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첨단의 야심찬 목표와 수단으로 무장한 의학의 ‘조작가능성’은 특히 인간의 현존재의 시작과 끝, 즉 우리의 탄생과 죽음과 관련하여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의미인 ‘인간적 선’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삶과 죽음의 의미, 인격적 존엄성, 인간상의 불가침성에 대한 물음 등을 불러일으킨다.” 요나스교수님은 ‘현대 기술은 왜 철학의 대상인가?’하는 원론적 물음으로 책임원칙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영위하는 삶의 핵심일 뿐 아니라 삶을 위협하는 문제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은 철학의 문제가 된다.’고 하였고, 또한 현대기술이 윤리적 사유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이유로 결과의 모호성, 적용의 강제성, 시공간적 광역성, 인간중심주의의 파괴, 그리고 형이상학적물음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습니다.마지막 이유로 든 형이상학적물음은 전통윤리학이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인류가 과연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가?‘하는 것으로 기술의 묵시론적 잠재력, 즉 인류존속의 위협과 인류의 유전적 불가침성의 훼손, 그리고 그것의 임의변경과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는 보다 고차적인 생존 조건의 파괴를 가능케 하는 기술의 능력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만을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의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시각을 가지는 분이 의외로 많다는데 놀라곤 합니다. 사실 서양의학으로부터 발전해온 현대의학은 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의 과학분야 뿐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등 인문학 분야의 발전과 긴밀한 연관을 맺어왔습니다. 이들 분야에서 발전된 방법론을 차용하고, 이 분야에서 새롭게 발견된 이론들 응용하여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발전시켜온 것입니다. 따라서 “의학은 일종의 과학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이러한 과학에 근거한 기술, 즉 의술을 베푼다.”라고 한 요나스교수님의 명쾌한 정리는 과학자들의 선입견을 풀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요나스교수님은 전통의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의학기술발전의 대표적 사례로 배아복제와 유전자공학을 꼽았습니다. 이들 기술이 의학의 윤리적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통제될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은가 하는 문제가 있겠습니다. 언젠가 사람에서도 라이거와 같은 존재가 태어난 사례를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라이거는 수사자와 암라이온 사이에 태어난 잡종입니다. 질문의 요지는 인간도 영장류를 비롯한 다른 종의 동물 사이에서 교잡종이 탄생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제가 과문한 탓인지 아직까지 들어본 바는 없습니다.하지만 버트 랭카스터와 바바라 카레라가 주연한 돈 테일러감독의 영화 <닥터 모로의 DNA(1977년작)>을 통해서 공상과학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됩니다. 영화에서는 노벨상을 수상한 유전학자인 모로박사가 동물에 인간의 유전자를 주입시켜 반인반수의 생물체를 탄생시키지만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기술수준을 정교하게 가다듬지 못한 탓에 불안정한 유전자를 유지하기 위하여 특별히 제조한 약물을 복용시키고, 또 동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야성을 복종시키기 위하여 몸에 전자칩을 심어서 고통을 주는 것으로 복종시키지만 때로는 동물적 야성을 드러내는 부작용이 나타납니다.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특정 기술은 완성단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실패가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의학기술은 개발단계에서부터 심도있는 윤리적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배아줄기세포연구는 성체줄기세포연구와는 달리 풀어야 할 명제가 적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배아의 윤리적 위치에 관한 논쟁은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닐 것이고 배아줄기세포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분화능력으로 인한 기형종발생 가능성 역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이미 분화의 방향이 결정된 것으로 배아줄기세포가 안고 있는 윤리적, 의학적 문제점들을 피해갈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대안이 없는 경우에는 해당 기술이 가지는 위험성과 이익을 비교하여 채택여부를 결정할 수 있겠습니다만, 대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제를 안고 있는 방법을 추진하는 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요나스 교수님은 <기술 의학 윤리>를 통하여 현대의학의 발전에 따라 의료현장에서 고려해야 할 다양한 윤리적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책임원칙의 실천”이라는 명제로 풀어내고 있어 같은 고민을 하는 의료인이라면 도움을 얻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나스 교수님이 중요하게 다룬 뇌사를 포함한 죽음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에 인용하여 논의하게 될 것 같아 미루어 둡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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