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 / 대니얼 클라인 지음 / 김유신 옮김 / 책읽는 수요일 펴냄, 2013년

[라포르시안]  안정된 노후를 보내려면 30대부터 대책을 마련하라는 조언을 들어왔습니다만, 당장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심각하게 고민을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막상 노후대책을 고민할 나이가 되니 막막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복지예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연금법을 바꾸고 세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장 효율적인 노후대책이란 힘이 닿는 데까지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겠다 싶습니다.

공자님은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서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반소사에 음수하고 곡굉이침지라도 낙역재기중의니 불의이부차귀는 어아여부운이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꿈치를 굽혀 베개를 삼아도 즐거움은 바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니, 의롭지 못하게 부유하고 귀한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 같은 것이다.”라고 새길 수 있습니다. 공자님처럼 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세상일이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니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라도 제대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된 탓에 끌렸던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은 미국에서 잘 알려진 대중철학 저술가 대니얼 클라인의 을 우리말로 옮긴 책입니다. 혹시 에피쿠로스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원제목대로였다면 독자의 눈을 끌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 백과사전에 따르면, 에피쿠로스(BC 341 ~ BC 270)는 그리스의 사모스에서 태어난 철학자입니다. 그는 소아시아를 포함해서 여러 곳을 주유한 끝에 BC306년에 아테네로 돌아와 학원을 세웠는데, 철학을 정치와 공공생활에 적용하는 데 관심이 있는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던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과는 달리  정치활동과 공공생활을 피하라고 가르쳤으며, 일상의 안식과 평온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을 따르도록 했다고 합니다. 에피쿠로스의 학원에서는 하루 1/2파인트 분량의 포도주가 허용되었지만 평소 마시는 것은 물이었고, 보리빵이 주식이었다고 하는데, 피타고라스학파와 달리 공유재산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추구하는 삶이었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그리스의 이드라(hydra)섬에서 저술했다고 합니다. 75세가 된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철학서적을 한 보따리 챙겨들었다고 하는데, 에피쿠로스는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세네카 등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과 몽테뉴,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칸트, 헤겔, 니체, 사르트르, 버트런드 러셀, 윌리엄 제임스와 같은 근대 철학자는 물론, 카뮈와 셰익스피어, 윌리엄 브레이크와 같은 문학가, 심지어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존 레논 등 가수까지도 불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아내와 함께 읽었습니다.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바다와 하늘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파랗던 지중해를 내려다보면서 언젠가는 저 바다를 제대로 느껴보리라 생각했지만 지중해를 매개로 이 책과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책장을 열면서 만나는, “운이 좋은 사람은 젊은이가 아니라 일생을 잘 살아온 늙은이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는 신념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운수에 끌려 방황하지만, 늙은이는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느긋하게 행복을 즐긴다.”라는 에피쿠로스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끼는 것은 아직은 일에 매달리고 있지만 이제는 느긋한 삶을 즐길 나이를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즐겁게 살지 못하면 바르게도 살 수 없다.’로부터 시작되는 목차의 제목에서도 노년의 삶에 대한 저자의 분명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저자가 이드라섬으로 향한 까닭은 최근 노인들에게 불고 있는 ‘영원한 청춘’을 꿈꾸는 움직임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에 해답을 구하고자 함이었다고 합니다. 만족스럽게 지낸 인생의 절정기를 영원히 이어가기를 꿈꾸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러다 보면 진실하고 역시 만족스럽게 늙어가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그런데 노인다운 노인이 어떤 것인지, 노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정할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다음백과사전은 삶에 대한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피쿠로스는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맛있는 음식만 찾아다니는 식도락가이자 극도로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에피쿠로스주의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추구하는 감각적 쾌감이 아니라 정원에서 직접 키운 재료로 담백하게 조리한 음식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그의 정원에서 들었을 것이라는 ‘여태까지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는가? 이 정원은 그대의 식욕을 돋우지는 않지만, 식욕을 해소시켜줄 것이다.(24쪽)’라는 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버킷리스트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버킷리스트를 버리라고 충고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역사적 인물들을 증거로 삼은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의 시 「너무 늦은 것은 없다」를 인용하면서 ‘맹렬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휴식이라는 말이 없다’라고 성토합니다. 맹렬하게 살다가 장렬하게 죽음을 맞게 된다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차분하게 인생의 황혼기를 성찰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적극적인 노년의 삶을 주문한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는 이드라까지 들고 가지 않은 듯합니다.

그리스가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국가부도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에피쿠로스가 살아 있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소개하는 일화를 읽으면서 그리스 사람들 고유의 삶을 버린 결과는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혀 손질을 하지 않은 올리브 밭에 앉아 전통술 우조를 홀짝거리며 석양을 지켜보는 그리스 노인에게 미국인 부자가 밭을 잘 가꾸면 큰돈을 벌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 무엇을 할건지 묻는 그리스 노인에게 미국 부자는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대답하는데, 그리스 노인은 이렇게 물어봅니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앉아서 우조를 홀짝거리며 석양을 바라보는 것 말이요?(44쪽)’ 삶에 대한 눈높이를 어디에 두는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 보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나라에 따라 다른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에게해의 숨은 보석으로 불리는 '이드라(Hydra)' 섬.

저자는 이드라섬, 카미니(Kamini)마을에 있는 아담한 식당에 모이는 네 명의 친구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판사로 일하다가 고향마을로 돌아온 타소는 어부, 교사 그리고 웨이터로 일하다 은퇴한 세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그의 경력은 이들과 어울리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듯 합니다. 고향친구들은 굳이 다른 사람은 절대로 수단으로 삼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임마누엘 칸트의 충고가 필요 없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면 그 역시 나에게 똑같이 대할 것입니다. ‘일상사와 정치’를 등지고 사는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을 지닌 동료입니다. 하지만 “공직에 있든 사업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영원한 청춘’을 꿈꾸며 여전히 직업전선에서 허우적대는 노인들은 이런 값진 선물을 얻을 기회가 거의 없다.(53쪽)”라고 저자는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물러날 때를 잘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20년 이상 동거한 부부가 이혼하는 소위 ‘황혼이혼’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해 황혼이혼은 3만2433건으로 전체 이혼의 약 28%에 달했다고 합니다(중앙일보 2014년 11월 13일자 기사. “‘힘 빠지니 무시’ 황혼이혼 하자는 남편들”). 남녀관계는 간단하지만은 않아서 누구의 말이 옳은지 가리기가 쉽지만은 않은 노릇입니다. 그래서 결혼할 상대를 고르는데 신중해야 합니다. 놀랍게도 프리드리히 니체는 결혼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결혼 할 때에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라. ‘나는 노년기에도 이 사람과 대화를 잘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가?’ 결혼 생활에서 그 이외의 나머지는 모두 덧없는 것이다.(166쪽)” 허무주의자로 알고 있는 니체가 이런 말을 했으리라고는 저 역시 상상도 못했습니다.

여행길에서 책을 읽다가 다음 구절을 아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비교적 늦게 결혼했지만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오래 지속된 부부관계가 노년에 가장 큰 위안이 된다는 점에 동감한다. 부부관계가 오래 지속될수록 부부가 공유하는 추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166쪽)” 그리고 생각해보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을 오래했다고 해서 공유하는 특별한 추억거리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아내와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둘이 함께 하는 여행입니다. 같은 것을 보고 들은 것을 공유하게 되면 이야깃거리가 늘어나게 될 것 같습니다. 늙어감에 대한 저자의 고민에 대하여, “진짜 노년을 제대로 보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탐구하면서 돌아다니는 건 영원한 청춘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친구들과 다를 것이 없어. 그런 친구들이나 자네나 언제라도 닥칠 것을 부인하고 살아가기는 마찬가지네(218쪽)”라는 친구의 핀잔까지도 고백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점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종교에 의지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노인들이 종교에 의탁하는 이유는 죽음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231쪽)”이라고 하면서도 ‘종교는 우리의 소원이 만들어낸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종교를 배격한 프로이트와 대체적으로 과학적이고 논리실증주의적 사고를 하는 현대인들이 유독 신과 종교문제만큼은 비논리적이고 비실증주의적인 사고에 깊이 빠진다는 샘 해리스와 리처드 도킨스를 인용합니다. 또한 힌두교에서 나누는 인생의 4단계 - 제1단계 브라마카리(Brahmacari)는 학생단계, 제2단계 그리하스타(Grihastha)는 가장 단계, 제3단계 바나프라스타(Vanaprastha)는 반은퇴 상태의 은둔자 단계 그리고 제4단계는 산냐시(Sannayasi)는 세상을 버리는 고행자 단계-를 인생을 준비하는 기간, 생산 기간, 봉사 기간 그리고 명상 기간으로 나눈다고 설명하면서, 72세 이후에 시작되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종교까지도 버려야 할 우선순위가 높다는 사실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힌두교도는 힌두교 경전인 베다를 불에 태우는 의식으로 산냐시기간을 시작하는데, 일생을 바쳐 배우고 실천하던 신앙까지도 모두 버린다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철두철미하게 내려놓은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타소의 가족이 초청한 부활절 저녁 가족 파티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노년기의 이상적인 모습을 발견하였다고 적었습니다. 평화로운 가운데 같이 어울리는 것, 그것 이상 더 좋은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타소에게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이 큰 영광입니다. 사실 살아있다는 것도 큰 영광이지요.’라고 인사말을 건넵니다. 영원한 청춘이란 파랑새와 같아서 세상을 주유해도 찾을 수 없더니 바로 집에 살고 있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영원>을 인용하였습니다. “한 가지 기쁨에 집착하면 / 훨훨 날아다니듯 자유로운 삶이 파괴되지만, / 날아다니는 기쁨에 입을 맞추면 / 영원히 아침을 맞이하며 살리라.(253쪽)”

국가 위기를 맞은 그리스에서는 적지 않은 연금생활자들이 도시를 떠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부로부터 연금을 지급받지 못하기 때문인데, 돌아온 시골에서는 한 주일 동안 단 1유로도 쓰지 않고 생활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들을 직접 기르거나 이웃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해법은 예전에 살던 방식에 있었던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능력 밖의 것을 내려놓는 일이 멋진 인생을 사는 길이라는 점을 깨닫는 책읽기였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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