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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어느 날 갑자기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다리스본행 야간열차 /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 전은경 옮김 / 들녁 펴냄, 2004년

[라포르시안]  지난 달에 다녀온 스페인-모로코-포르투갈-스페인을 연결하는 여행에서 방문한 리스본에 -포르투갈에는 리스보아라고 한답니다- 머문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처음 열었던 포르투갈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세비야를 떠난 지 10여분 만에 타호강을 건너 리스본에 들어갔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리스본 시내에 머문 시간이 몇 시간에 불과했던 탓에 호시우광장 부근에서 점심을 먹고, 벨렘탑과 바스코 다가마를 기리는 대항해탑을 거쳐 성 제로니모 수도원을 돌아본 것이 전부입니다. 리스본의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이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파스칼 메르시어를 필명으로 하는 페터 비에리(Peter Bieri)는 1944년 스위스 베른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런던과 하이델베르크에서 철학, 고전언어학, 인도학, 영어학을 전공했는데, 박사학위를 취득한 다음에는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인지’ 및 ‘뇌’ 분야를 연구하면서 ‘철학적 심리학’,‘인식론’,‘윤리학’ 등에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 독일 마부르크대학교의 철학사 교수를 거쳐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언어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학계에는 본명으로 저술한 「자유 논고―‘개인 의지의 발견에 대하여’」가 널리 알려져 있고, <페를만의 침묵(1995)>, <피아노 조율사(1998)>, <리스본 행 야간열차(2004)>, <레아(2007)> 등의 소설이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카네이션혁명의 싹이 움트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저는 다양한 이슈를 발견했습니다. 600여 쪽에 가까운 긴 내용을 읽어가는 과정은 일종의 직소퍼즐 맞추기와 보물찾기입니다. <디 자이트>의 오토 에이 뵈머는 “프라두의 족적을 따라 사유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레고리우스는 결국 ‘사유의 바깥쪽에는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고 결론짓는다.”라고 하면서, “이것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일종의 ‘의식의 추리물’이다(585쪽)”라고 이 작품의 성격을 규정하였습니다.

책을 읽다가 처음 부딪치는 의문은 바로 일탈입니다. 이마누엘 칸트만큼이나 정확하고 자신이 맡고 있는 고전문헌학 수업에 대한 책임감이 투철한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가 지금까지 살아온 스위스의 베른을 떠나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찾아가기로 한 것은 분명 일탈일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이 ‘여행은 이탈이다’라고 한 것(김용옥 지음, 앙코르와트 월남 가다, 통나무 펴냄, 2005년)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에서 떠나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일탈’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바꾸어놓은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똑같이 시작됐다.(10쪽)”면서도 출근길 키르헨펠트 다리에서 미지의 포르투갈 여성과 조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설명이 저로서는 공감되지 않는 점입니다. 첫 장면에 등장한 이 여성은 끝내 모습을 다시 드러내지 않고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57세가 된 그레고리우스는 왜 그녀와의 만남에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장악해야 하겠다는 인식이 들었는지도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데 학생들을 교실에 버려두고 키르헨펠트 다리로 돌아간 것은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다리를 떠나 들른 에스파냐 책방에서 여학생이 살까 망설이던 책을 집어 드는데,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라는 포르투갈 사람이 쓴 <언어의 연금술사>입니다. 책방 주인은 이 책의 서문을 번역해서 그레고리우스에게 들려줍니다.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체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27쪽)” 이 책을 사겠다는 고레고리우스에게 책방 주인은 선물로 줍니다. 결국 그레고리우스의 일탈은 우연히 만난 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한 장면. 낯선 여인이 남긴 붉은 코트를 들고 있는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이름 없는 포르투갈 여자, 빛바랜 포르투갈 귀족이 쓴 책,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 때문에 한겨울에 리스본으로 도망치는 사람은 없다.(41쪽)’라고 하면서도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편을 알아보고 짐을 싸고 맙니다. 교장선생 앞으로 편지 한 장 달랑 보내는 것이 마무리의 전부입니다. 그 편지에 인용된,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44쪽)”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한 구절이 그의 심리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결정은 오래전에 페르시아의 이스파한으로 가려던 꿈을 접어야 했던 아픔이 무의식 속에남아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우연의 연속입니다. 밤 산책길에서 몸집이 큰 남자와 부딪치면서 안경이 부서지고, 다음 날 아침에 본 유혹적인 햇살이 그의 발길을 붙들었다고 적었습니다. “빛나는 광채는 지나간 모든 것을 아주 낯설고 거의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했고, 과거의 그림자를 모두 지워버릴 정도로 눈부셨다. 모습을 전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떠나는 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다.(82쪽)” 기차에서 만난 실우베이라가 연결해준 마리아니 에사는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삶을 조명하는 일에 단초를 제공하게 됩니다. 프라두는 그레고리우스의 바람대로 리스본에 머무는 이유를 만들어주게 됩니다. 연줄을 타고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얻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프라두의 삶의 흔적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게 됩니다. 마치 직소퍼즐처럼 말입니다.

이쯤해서 두 번째 의문을 만나게 됩니다. 은퇴한 책방주인 코우팅뉴노인은 프라두은 인기가 좋고 존경받는 의사였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간백정이라고 부르던 비밀경찰 후이 루이스 멩지스의 목숨을 구한 다음에는 사람들로부터 기피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진료소 옆에 쓰러진 멩지스를 사람들이 진료실에 들어다 놓았을 때, 프라두는 잠시 멩지스를 내려다 본 다음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강심제를 투여해서 소생시켰습니다. 프라두 역시 고문과 살인과 국민에 대한 잔인한 억압의 책임자라고 짐작하는 멩지스를 그냥 죽게 내버려두고 싶은 욕망과 싸워야 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의사의 사명을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배신자’라고 외치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나는 의사요’라고 변명하듯 말합니다. 그리고 ‘그자는 살인자요!’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그는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한 인간이에요.(240쪽)’라고 또렷하게 말합니다. 대중의 시각에서 보면 프라두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간 한 인간에 대한 복수이며 앞으로 일어날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정의를 방해한 셈입니다. 하지만 프라도의 입장에서는 의사로서 구할 수 있는 생명을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프라두의 의사로서의 확고한 윤리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프라두는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되면서 저항운동에 몸을 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생명에 대한 프라두의 일관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프라두는 학창시절 절친했던 조르지와 마리아나 에사의 외삼촌 주앙 에사 등과 함께 하는 비밀결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모임은 대단한 기억력을 가진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가 주도하는 문맹자를 위한 학습모임형태를 가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멩지스의 부하가 이곳에 나타나고 단원 중 한 명이 체포됩니다. 에스테파니아와 연인관계에 있던 조르지는 그녀를 죽여서 단원 모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프라두는 그녀를 스페인으로 탈출시키는 대안을 마련합니다. 조르지의 주장을 읽으면서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논한 철길에서 일하는 사람을 구하는 문제를 떠올렸습니다. 조르지는 센델의 논리대로 사랑하는 연인을 희생시켜서라도 단원들을 구하겠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우선 생각하는데 반하여 프라두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탈출시키는 대안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역시 생명을 중하게 여기는 그의 철학을 다시 확인하는 대목입니다.

▲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한 장면.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행적을 뒤쫓는 과정에서 <언어의 연금술사> 이외에도 그가 남긴 많은 글을 읽게 됩니다. 그 가운데는 스승인 바르톨로메우  신부가 건네준 프라두의 졸업식 연설문이 있습니다. 라틴어로 쓴 연설문의 제목은 ‘신의 말씀에 대한 경외와 혐오’입니다. 프라두는 “마비시킬 듯한 그들의 잔혹한 군화 소리가 골목에서 울려도, 그들이 고양이나 비겁한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거리로 숨어들어 번쩍이는 칼날로 등 뒤에서 희생자의 가슴까지 꿰뚫어도.....설교단에서는 이런 무뢰한을 용서하고 더구나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장 불합리한 일 가운데 하나다.(216쪽)”라며 무능한 교회를 통박하였습니다. 독재자의 잔혹함에 대한 프라두의 혐오는 아버지에게로 연장되고 있습니다. 프라두의 아버지는 대법원의 판사였는데, 독재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범법자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아버지에 대하여 깊이 실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남긴 편지에 “점점 더 너는 나에게 왜 아직도 법복을 입고 있냐고, 독재의 잔인함에 왜 눈을 감고 있냐고 비난하는 독선적인 판사처럼 보였다.(386쪽)”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프라두의 아버지 역시 나름대로의 고통을 안고 살아왔고, 결국은 사퇴청원을 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합니다. 마지막 편지에서 “넌 나 때문에 의사가 되었지. 네가 내 고통의 그림자 속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에게 빚이 많구나. 내 고통이 여전하고, 내 저항이 이제 무너지는 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389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아버지가 판사직을 유지한 것도 나름대로 저항하는 길을 모색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프라두가 세상을 떠난 2년 뒤에 그가 남긴 글을 책으로 묶은 것은 같이 살던 누이동생 아드리아나였습니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서문에서 ‘말은 경험한 것에서 미끄러져 결국 종이 위에는 모순만 가득하게 남는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단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27쪽)’라고 한 것처럼 프라두가 포르투갈어를 다듬는 글쓰기를 했다는 점을 저자는 넌지시 드러내고 있습니다. 프라두의 또 다른 누이동생 멜로디는 프라두가 잘못된 단어의 독재와 올바른 단어의 자유, 유치한 말 때문에 생기는 보이지 않는 감옥과 시의 광채에 대하여 말하곤 했기에, 그의 영혼이 언어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연금술사>에서 다양한 단어의 의미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원한 젊음. 젊은 시절 우리는 우리가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하며 산다. 죽을 운명이라는 인식은 종이로 만든 느슨한 끈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어 피부에 거의 닿지 않는다.(…)(300쪽)”

‘여행은 이탈이다’라고 한 도올 김용옥이 새로운 체험의 획득이 없다면 그 이탈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전제한 것처럼 우리의 그레고리우스 역시 삶의 궤도에서 이탈해서 리스본으로 가지만, 그곳에서 언어의 의미를 추구한 프라두의 족적을 뒤쫓으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현기증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하여 베른으로 돌아옵니다만 언젠가는 리스본을 다시 찾을 것 같습니다.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즉 그냥 떠나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하냐는 질문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인식, 즉 깨달음이 절대적이죠.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해주는 인식작용 말입니다. 자기 앞에 놓인 생을 그래도 살아갈 것인지, 그게 정말 원하는 것인지 자문하는거요.(574쪽)”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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