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라포르시안] 약 8~9년쯤 된 이야기다. 지인 한 분의 부인이 체중을 줄이기 위해 S내과외과의원에서 위밴드 수술을 받았다.(S내과외과의원은 고 신해철씨가 맨 처음 위밴드 수술을 받았던 병원이기도 하다) 당시 50대 후반이던 그 부인은 대한민국 평균적인 아줌마 체형으로 고도비만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데 수술 후 배에 염증이 생겼고, 곧 복막염으로 진행됐다. 그렇게 수일이 지난 후 남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환자가 이미 패혈증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남편에게 개인의원은 패혈증을 치료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조속히 대학병원으로 옮길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그러나 당시 환자의 주치의사는 "여기서 해결할 수 있다"고 환자의 남편을 설득했다. 주치의사의 말에 다시 마음이 흔들린 남편이 주저주저하며 망설이는 사이 환자의 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남편에게 "사모님을 잃어도 좋다면 그대로 계셔도 좋지만 꼭 살려야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지금 즉시 대학병원으로 옮기시라"고 말했다.

끝까지 이송을 반대하는 주치의 의견을 무시하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진 환자는 이송 즉시 수술을 받았다. 배의 염증을 제거하고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leakage'가 있는 부위를 'omentum'(장간막)으로 덮는 수술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당시 S내과외과의원에서 받은 수술에 대해 저는 위축소 수술로, 남편은 위밴드 수술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주치의는 이번 신해철씨의 주치의인 K원장이 아닌 다른 분이었다.)

패혈증에 빠졌던 환자는 일주일가량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들다가 천만다행으로 회복했다. 그리고 부인을 잃을 뻔 했던 지인은 지금도 나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며 감사를 표하고 있다. 최근 통화에서 지인은 자신의 부인과 같은 사고를 겪은 피해자들이 본인이 알고 있는 분들만 해도 여럿이 된다고 말했다.

어제 故신해철씨의 수술 전후 흉부엑스선 사진이 공개됐다. 수술 후 사진을 보면 몇 가지 다른 문제들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pneumopericardium'(심낭내 공기)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 경우에서는 심낭천공을 의심할 수 있는 사진이다.(복강경을 이용해 식도수술을 하거나 식도와 가까운 위 상부의 성형술, 즉 fundoplication을 하는 경우에는 천공이 없어도 식도가 횡격막을 통과하는 부위를 통해 심장 주위로 공기가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신해철씨는 그런 수술을 받지 않았다. 더욱이 장유착을 박리하는 수술이었으며 3번째 복부수술을 복강경으로 하였는데, 수술 후 심장 주위에 공기가 보였다면 즉각 천공을 의심하고 추가적인 검사를 하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환자는 종격동염을 뒷받침할 방사선소견뿐 아니라 임상적 증세를 호소하고 있었다.)

의료진이 이 사진을 놓쳤다 해도 문제이고, 보고도 퇴원을 시켰다면 더욱 큰 문제이다. 그 동안 신해철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논란이 일었을 때, 대다수 의사들은 경과만을 듣고서도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으며 그것은 부검결과 확인됐다. 그러나 워낙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는 의사들이 많기에 이번에도 피해의식과 동병상련의 동료의식이 버무러져서, 또는 동료의 등에 칼을 꽂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다수의 의사들이 진실을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감쌀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감쌀 수도 없고  책임이 없다고 무조건 감싸서도 안된다. "의학적 문제로 인해 사회적 논란이 발생할 때 의사들이 전문가의 분명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의학적 권위를 지켜내자"는 것이 변함 없는 나의 소신이었다. 신해철씨는 수술의 과정과 특히 수술 후 관리 및 처치에 있어 부적절했다는 의료과오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의학적 판단일 것이며, 의사협회는 이를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에게는 실수가 일어난 이후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환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의료의 전문가인 의사들이 스스로의 의무를 방기하고 환자의 권리를 지키려하지 않는다면, 비전문가인 외부인들로부터 또 다른 강제적 조치를 강요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강제적 조치는 의사와 환자 모두를 불행하게 할 것이다.

의사들이 진실의 목소리를 낼 때이다. 국민이 의사를 믿을 수 있도록, 의료의 전문가로 인정하도록 말이다.


*이 글은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ipudo)에 올려진 글입니다. 본지는 필자로부터 동의를 구하고 전문을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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