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 E.H. 카 지음 / 김택현 옮김 / 까치 펴냄, 2001년

[라포르시안] 지금까지 [Book소리]에서 특정 분야의 역사를 다룬 책은 몇 차례 소개한 적은 있습니다만, 정통 역사서를 다룬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역사서가 방대한 분량인데다가 딱딱한 내용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작하려면 일단 비장한 각오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역사서를 읽기 전에 역사에 대한 개념정리가 필요하겠다 싶어 고른 책입니다. 조금 딱딱하다 싶은 책은 집중이 잘되는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좋습니다. 얼마 전에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리트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습니다.

분명하게 밝힌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A. L.로즈박사에 이어서 1961년에 맡았던 여섯 차례의 강연에서 발표하기 위하여 준비한 내용으로 보이며, 역사가와 그가 다루는 사실과의 관계, 사회와 개인과의 차이점, 역사와 과학 그리고 도덕 사이의 관계,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역사적 행위의 측면에서의 진보의 본질적 내용,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예측 등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볼테르가 만든 역사철학의 개념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유럽의 역사학자들은 역사란 사실들의 집합체로 절대적이고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역사철학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의 철학자이며 역사가인 콜링우드가 정리한 역사 철학에 대한 견해 - “역사철학은 ‘과거 그 자체’에 관한 것이라거나 ‘과거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유(思惟)’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상호 관련되는 그 두 가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과거이다.”-를 발전시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라는 함축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역사가들이 흔히 간과하기 쉬운 역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진리를 통찰한데서 나온 것이라 하겠습니다. 첫째, 역사적 사실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결코 ‘순수한’ 것으로 다가서지 않는 다는 점이다. 둘째, 역사가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생각을 상상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셋째,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는 ‘역사책을 읽을 때는 항상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그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음치이거나 아니면 여러분의 역사가가 말을 못하는 멍청이일 것이다.(40쪽)’라고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는 누가 만들어내는가? 혹자는 개인이 남긴 기록도 개인의 역사가 될 수 있다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최초의 인간이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개인이면서도 사회의 구성원이었을 것입니다. 사회 역시 그 구성원들에 의하여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석하는 일이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역시 한 사람의 개인이고,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역사적 과거의 사실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완전하게 삼자적(三者的) 위치에서 사실을 들여다보는 일이 수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87쪽)”라는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인용하여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으며, 현재 역시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라고 하였고, 역사가는 오늘의 사회와 과거의 사회가 대화할 수 있는 소통의 통로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 E. H. 카

역사와 과학이라는 분야에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까요? 다음백과사전에서는 역사과학을 “과거에 있었던 인간 생활의 여러 가지 사실과 사상(事象)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합니다. 빈델반트는 학문 방법상 자연 과학에 대립시켜 “인간에 관한 사물과 현상을 반복이 불가능하고 일회적이며 개성적인 것으로 보고 연구, 기술하는 과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1) 역사는 오로지 특수한 것만을 다루며,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다룬다. (2) 역사는 교훈을 가르치지 않는다. (3) 역사는 예견할 수 없다. (4) 역사는 인간이 인간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그리고 (5) 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포함한다.’라는 이유로 역사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견해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역사가는 언어사용에서부터 과학자들처럼 일반화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들에 간여하는 요소들을 단위로 분해하여 그들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낸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방법론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과학자, 역사가, 그리고 자연과학자의 목표와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다만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 사이의, 사회과학자와 그의 자료 사이의, 역사가와 그의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이 지속적이며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역사와 사회과학의 남다른 특징으로 생각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역사가 역시 과학자들처럼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 문제를 제기하고 역사에서의 인과관계를 추구해감으로서 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적 사실의 원인들을 서로 연결하는 인과관계가 필연적인가 아니면 우연한 것인가에 관한 논란에 대하여 저자는 ‘역사에서의 결정론; 혹은 헤겔의 간계(奸計)’라는 주제와 ‘역사에서의 우연; 혹은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는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플라톤으로부터 헤겔,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결정론을 “모든 사건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있고 그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 중에서 무엇인가 달라진 것이 없었다면 그 사건은 다른 식으로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신념”이라고 요약했습니다. 사실 역사적 사건 역시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인도 없이 행동하며, 그 행동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것을 고찰하는 관점에 따라 자유롭기도 하고 동시에 결정되어 있기도 하다(145쪽)’라는 한발 물러선 모호한 입장을 취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는 반복된다’면서 역사가 보여준 인과를 반복하지 말자는 경고를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정리한 일반화과정을 적용한 산물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연론은 “역사란 전체적으로 우연의 계속이라는, 즉 우연의 일치에 의하여 결정되고 가장 뜻밖의 우연에서만 유래하는 사건의 연속”이라는 이론입니다. 기원전 3체기 로마의 역사가 폴리비우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연론은 특히 영국의 역사가 베리와 피셔 등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저자는 우연적 원인은 일반화될 수 없는 것이므로 역사에서의 원인은 합리적 원인과 우연적 원인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역사에서의 해석은 가치판단과 밀접하게 연관되며, 인과관계는 해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는 ‘그렇다’라고 대답합니다. 역사는 그 본질상 변화이며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현재보다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하여 부단하게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진보하려고’, 즉 어떤 역사적 ‘법칙’이나 진보라는 ‘가설’을 실현시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행위에 진보라는 가설을 적용하여 해석하는 사람은 바로 역사가”라는 것입니다.

▲ '부림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에서 검사는 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증거로 13권의 사회과학 도서를 압수해 증거물로 제시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는 검찰이 제시한 불온서적을 구해 읽은 후 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이 터무니없고 조작됐다는 확신을 갖는다. 특히 재판정 장면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검찰측 증인에게 영국의 역사학자인 E. H. 카가 왜 공산주의자이고, 그의 책 '역사란 무엇인가'를 왜 용공서적으로 감정했는지 묻는다.

‘지평선의 확대’라는 마지막 강의에서 저자는 역사에 대한 인식을 정리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저자의 강연이 있을 무렵, 세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나고 러시아와 중국에서 일어난 공산혁명의 충격으로부터 서서히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세계는 혼란스럽고 심지어는 위험스럽기까지 한 곳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어려움들로부터는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쟁 끝에 도래하리라고 예견되었던 세계경제의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다.(9쪽)” 그리하여 저자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를 표명하였던 것인데, 2판의 서문을 보면, 이후 찾아든 동서냉전구도는 저자가 품었던 희망과 만족감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던 모양입니다. 핵멸망의 위협은 배가되었고, 뒤늦게 시작된 경제위기는 서구사회 역에 걸쳐 산업국가들을 황폐화시키고 실업을 확산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든 1판의 결론에서 저자는 세계의 파국을 예언하는 목소리들이 퍼지고 있어도 영국이 나아가 세계가 우리를 위협하는 위험들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것이며 또한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가정했고, 현재 세계는 저자의 예언대로 여전히 진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990년 소련의 해체를 저자는 목격하지 못했지만, 세계를 움직이는 축이 서유럽을 떠나 북미대륙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런 현상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의문을 달아놓았습니다. 저자는 러시아혁명의 본질을 이성의 확대로 보았습니다. 유럽이 이성의 확대를 외면하는 사이 아시아 아프리카로 혁명이 확산된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즉 인민대중이 사회인식과 정치의식을 가지게 되고, 각자의 집단들을 과거와 미래가 있는 역사적 실재로 깨닫게 되었다는데 의미를 둔 것입니다. 저자는 1955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중국어를 가르친 풀리블랭크교수가 “중국이 인류 역사의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아서는 안된다(223쪽).”라는 확신을 밝혔지만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점을 우려하기도 했는데, 그로부터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이제 중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이르렀습니다. 낙관주의자임을 표명하는 저자가 영국이, 나아가 영어사용권 국가들이 전반적인 역사의 진보에서 뒤처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무기력하게 또한 체념한 채로 어떤 향수 어린 침체상태에 빠져들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던 것인데, 그의 불안감은 오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1982년 타계하는 바람에 2판의 서문만 완성되었을 뿐이어서 1판에 더해질 저자의 새로운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여전히 역사철학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역사서를 읽을 때 좋은 지침이 될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는 편집자가 저자의 자료철에서 뽑은 ‘제2판을 위한 노트’가 덧붙여있습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1판의 내용을 상당부분 보완한 새로운 생각들을 담을 예정이었던 것으로 보이기에 아쉬움이 큰 것 같습니다. 저자가1판에서 무게를 두었던 러시아 혁명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실패한 혁명이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힘과 운동이 도처에서 싹트고 있다고 믿었던 것 같고, 그러한 움직임을 사회주의적인 것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의 내용을 정의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 역시 정의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볼세비키 혁명이] 그 첫 번째 단계였던 세계혁명, 그리고 자본주의의 몰락을 완성시킬 세계혁명은 제국주의의 탈을 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식민지 인민들의 저항이 되리라는 가설을 진지하게 고찰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269쪽)”라고 노트의 말미에 적은 카의 믿음은 개인적으로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움직이고 진보한다는 점은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놓치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세계는 빠르게 진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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