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분만 인프라 붕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한지 오래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가 일본의 분만 인프라 붕괴 현상을 따라가는 중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더 심한 저출산과 함께 산부인과의 분만 기피로 몸살을 앓아왔다. 일본에서 산부인과의 분만 기피 원인을 극명하게 드러낸 일이 있었다. 지난 2006년 발생한 ‘오노병원 산부인과 의사 체포 사건’이다.<본지는 2012년 3월 이 사건을 기사화 한 적 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이 사건은 전치태반 진단을 받은 산모가 일본 후쿠시마 현립 오노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사망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오노병원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에게 전치태반에 따른 수술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가급적 대학병원에서 분만 할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그 산모는 "대학병원이 너무 멀어 불편하다“며 오노병원에서 출산하길 희망했다. 산모의 요청에 이 병원 산부인과 전문의가 제왕절개 시술로 체중 3kg의 여아를 성공적으로 분만했다. 문제는 그 이후 발생했다. 산모의 자궁 속에 남아 있는 태반을 떼내는 과정에서 과다출혈로 산모가 사망했다. 

산모가 사망하자 오노병원이 위치한 후쿠시마현 차원에서 사고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조사위원회는 3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태반유착을 제때 판단하지 못한 집도의의 실수를 인정하고 태반 박리 과정에서의 부적절한 시술 등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여론이 악화됐다. 수술을 집도한 산부인과 의사는 1년 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그를 업무상 과실치사와 원인불명의 죽음에 대해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한 관련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했다.

이후 2년여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그 산부인과 의사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오노병원 산부인과 의사의 의료행위가 임상 표준에 따른 적절한 조치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을 통해 무과실이 인정됐지만 사건의 여파는 컸다. 오노병원 의사는 의료과오를 저질러 놓고 그 책임을 회피하는 비윤리적 의료인으로 매도됐다. 특히 수술 치료 결과에 따라 의료인에게 형사 책임이 추궁된다는 점이 부각되자 산부인과 진료현장에서 분만수술을 기피하는 현상을 초래했다. 일본 산부인과학회는 성명을 통해 "이 사건은 산부인과 의사 부족이라는 현 의료 체계의 문제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과중한 업무 부담을 참아가며 헌신한 의사 개인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일본 사회는 이 문제와 관련해 적절한 대응책을 찾은 것 같다. 오노병원 사건을 계기로 분만 인프라 붕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수립했다. 일본 정부는 보상재원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는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를 2009년 1월 도입했다. 또 출산시 건강보험에서 지불되는 출산보조금을 38만엔(약 540만원)에서 42만엔(약 600만원)으로 높이고, 의료기관에 직접 지불하도록 하는 '출산육아 일시금 직접지불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의 각 지자체도 팔을 걷고 나섰다. 시내에서 개업하는 산부인과에 최대 1억엔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례를 제정하거나 지역내 의과대학에서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의대생에게 장학금 혜택을 지급하는 곳도 많다. 이런 정책 덕분에 붕괴 직전의 일본의 분만 인프라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전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분만 인프라 붕괴가 심각한 지경임에도 정부는 지나치게 느긋하다.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분만기관 수는 2008년 954개에서 2013년에는 699개로 6년새 255개(26.7%)가 줄었다. 해마다 배출되는 산부인과 전문의 수도 뚝 떨어졌다. 2007년까지 매년 200명을 넘긴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수는 전공의 지원 기피로 2011년부터 100명 이하로 감소했다. 다행히 몇 해 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업이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속 빈 강정이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지원금은 연간 5억원 이내다. 이 돈으로는 분만시설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의사·간호사 인력을 유지하기에도 벅찰 정도라고 한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이런 문제가 지적됐다. 분만취약지 지원사원이 관내분만율을 높였지만 이 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적자가 쌓여 곤란을 겪고 있다. 분만시설을 24시간 내내 운영하기 위해서는 7~8명 이상의 의료인력이 필요하다. 각종 장비와 신생아실도 갖춰야 한다. 정부 지원금으로는 역부족이다.   

분만 의료수가도 턱없이 낮다. 분만시설을 갖춘 산부인과의원에서 초산 산모의 자연분만를 하고 받는 의료수가는 27만원 정도다.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의 분만수가와 비교하면 1/5 수준이다. 정부는 분만 건수에 따라 수가를 가산하는 지원책을 마련했지만 별로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일본의 분만 지원정책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정책이다. 지난 2011년 3년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를 근거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산과 무과실 보상)'가 도입됐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무과실 보상제도는 보상재원 일부를 국가와 분만병원이 분담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보상재원 분담 비율은 국가와 분만병원이 7대 3이다. 그나마 처음에는 국가와 의료기관이 5대 5의 비율로 분담하려다 산부인과에서 반발하자 비율을 조정한 거다. 정부에서 무과실 보상재원 분담금의 적립목표액을 정하면 이에 맞춰 산부인과 병의원이 분만실적에 따라 일정액을 내는 방식이다. 최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2014년도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재원 분담금 부과·징수 공고'를 냈다. 이 공고에 따르면 올해 무과실 보상재원 분담금 적립목표액은 11억2,500만원이다. 이 중에서 70%에 해당하는 7억8,800만원은 국가에서, 나머지 30%인 3억3,700만원은 분만실적이 있는 의료기관개설자가 부담토록 했다. 적립목표액 중 의료기관 몫의 분담금을 전년도 총 분만건수로 나눈 결과, 산부인과 병의원은 분만건당 1,161원을 내는 것으로 정해졌다. 지난해 분만건수가 100건인 산부인과병원에는 보상재원 분담금으로 11만6,100원(분만실적 * 1,161원)이 부과된다. 산부인과 병의원은 무과실 보상제도가 도입된 이래 처음으로 보상재원 분담금을 낸다.

산부인과 입장에서는 이 제도가 너무 불합리하다. 말 그대로 무과실 분만사고인데 왜 병원이 보상재원을 분담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비용 부담의 측면도 있지만 의사로서 자존심 문제가 걸려 있다. 의사의 과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자존심 문제다. 7대 3이 아니라 9대 1의 분담 비율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분만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과실이 없어도 배상 책임을 져야한다면 산부인과 의사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빼앗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결국,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을 할 때마다 1,161원 만큼의 자긍심을 빼앗기는 꼴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사회 전체가 져야 할 비용부담만 커질 뿐이다. 저출산을 부추겨 국가의 지속가능성이 위협 받을지도 모른다. '저출산 극복'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현 정부가 분만 건당 1,161원의 보상재원을 걷자고 분만 인프라 붕괴를 부추긴다면 말이 안된다. 복지부는 올해 해외환자 유치를 위해 해외인지도 제고와 한국의료 신뢰도 제고란 명분으로 185억원의 예산을 지출했다. 내년에는 51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보다 더 불요불급해 보이는 예산 항목도 숱하다. 결국, 돈이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오늘도, 한국의 수많은 '오노병원 산부인과 의사'는 의료사고의 두려움 속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는 현장을 지킨다. 무사히 분만을 마칠 때마다 그들은 '1,161원'을 떠올리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지 모른다.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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