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시설·부족한 인력에 에볼라 지정병원된 공공병원…업무 스트레스·감염 공포에 간호사 집단 퇴사

[라포르시안]  국제사회의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 저지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서아프리카 일부 국가에 보건의료 인력을 파견키로 결정했다.

정부는 곧 자원자를 모아 11월 말쯤 20여명 규모의 에볼라 대응 보건인력을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현지에 파견할 방침이다.  그러나 보건인력 파견 결정이 발표되자 에볼라 확산에 대한 '피어볼라((Fearbola, 에볼라 집단공포)' 조짐이 일고 있다.

국내 열악한 감염병 감시·치료시스템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취약한 공공의료 인프라도 단단히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 중앙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맡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최근 발생한 간호사 집단 퇴사가 이를 반증한다.

지난 21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국립중앙의료원 이종복 진료부원장은 "최근 감염내과 소속 간호사 4명이 사표를 냈다"고 밝혔다.

이 부원장은 감염내과 소속 간호사들이 사표를 낸 이유가 에볼라 바리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말했다.

본지 취재 결과, 이들이 퇴사를 결심한 것은 지난 8일 시에라리온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17개월의 남자아이가 고열증상을 보이면서 에볼라 감염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국가지정 격리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후송된 일이 계기가 된 것으로 파악됐다.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후송돼 격리입원된 시에라리온 출신 남자아이는 검체 검사를 통해 에볼라 바이러스 음성으로 확진을 받았다. 

하지만 에볼라 의심환자가 입원해 있는 동안 격리병상에 근무했던 간호사들의 업무 스트레스와 에볼라 감염에 대한 공포가 상당히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 무렵은 미국 텍사스주 병원에서 에볼라 환자를 돌보던 간호사가 감염되면서 의료진의 감염 우려가 증폭되던 시기였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에볼라 의심환자의 격리입원에 따른 업무 스트레스도 한 요인일 수 있지만 간호인력 부족 등이 겹치면서 업무스트레스가 가중된 것이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의료원 노조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면 노조 차원에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지난 8월 5일 인천의료원을 방문한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이 에볼라바이러스 관련 환자 이송․수용 절차, 격리 병실 등을 둘러봤다.

국가지정격리병원 중 하나인 인천의료원도 지난 9월 초 나이지리아에서 입국한 에볼라 의심환자가 후송돼 홍역을 치렀다.

전국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인천의료원에 에볼라로 의심되는 환자가 후송돼 환자와 함께 감연내과 전문의 1명, 간호사 5명이 5일동안 격리된 채 진료를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 환자가 에볼라가 아닌 말라리아로 확진되기까지 검사와 진료의 전과정이 큰 어려움 속에서 진행됐다"며 "이 과정에서 질병관리본부의 지원은 보호장구류 10벌과 폐기물 처리박스 제공 등이었다. 당시 의료진들은 격리시설과 부실한 보호장비, 질병에 대한 공포 등에 대해 오직 의료인의로서의 희생정신 하나로 버텨야 했다"고 지적했다.

30개 격리병상 운영하던 진주의료원 강제폐업다른 지역거점 공공병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만성적인 의료진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데가 에볼라 의심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격리치료할 수 있는 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도 많지 않다.

감염병 격리병상의 경우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민간병원에서는 설치를 꺼리는 반면 지역거점 공공병원 역할을 하는 지방의료원에서는 그 규모에 비해 설치 비율이 높은 편이다.

특히 지난해 경남도가 강제폐업한 진주의료원은 30개의 감염병 격리병상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비슷한 규모의 민간병원과 비교할 때 상당히 많은 수준이며, 지방의료원 중에서도 많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홍준표 도지사는 누적된 적자를 이유로 진주의료원을 강제폐업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에볼라 감염병 환자를 격리치료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민간병원은 환자 후송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국가지정격리병원 역행을 수행하고 있지만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시설이 낙후된 상태라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 엄중식 교수는 "에볼라 의심환자 격리실에 근무하는 의료진은 어쩔 수 없이 병원의 강력한 통제에 따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인력이 부족한 상태라면 이로 인한 업무스트레스는 훨씬 더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에볼라 대응 보건인력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민간의 자원자가 부족할 경우 결국 공공병원 소속 의료진과 군 보건인력으로 구성할 것이란 우려도 높다.

엄 교수는 "만일 민간에서 서아프리카 국가에 파견을 자원하는 인력이 적다면 결국 공공병원과 군병원 소속 의료진을 차출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며 "공공병원이나 군병원도 인력이 부족하고 특히 감염내과 전문의는 훨씬 더 적은데 그럴 경우 의료공백마저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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