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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하여…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4.10.1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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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지난 14일은 독일 출신 정치이론가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탄생 108주년이었다. 세계적 검색엔진 구글은 그 유명한 메인화면의 두들을 통해 한나 아렌트를 기렸다. 아렌트가 정치이론가로서 유명세를 탄 건 미국의 대중잡지 '뉴요커'에 기고한 글 때문이었다. 그가 뉴요커지에 기고한 글은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 친위대의 장교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로 이스라엘 법정에 선 '칼 아돌프 아이히만'의 공판에 관한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에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1963년)'란 건조한 제목이 붙었다. 하지만 발간되자마자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을 뿔 달린 괴물이 아닌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던 '평범한 범인'으로 기술했기 때문이다. 나치 친위대 장교라는 신분을 배제하면 그는 친절하고 자상한 이웃이며, 또한 근면한 관료였다는 게 아렌트의 시각이다. 그럼 대체 그의 악행은 어디서 비롯된걸까. 아렌트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의 결여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홀로코스트에 동참하면서 아이히만이 가졌던 생각은 오로지 의무와 복종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맡은 일을 불성실하게 처리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라고 법정에서 억울하다는 듯 내뱉은 그의 말 속에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후회와 죄의식은커녕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다는 자부심마저 느껴질 정도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된 인간, 자신의 행위가 미칠 결과에 대해서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은 인간. 홀로코스트 과정에서 아이히만이 보여준 것은 광폭한 행위도, 광기도 아닌 의무에 충실하고자 했던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는 것이 아렌트는 결론이다. 그래서 악은 평범하다는 것이다. 

지나친 비약일 수 있지만, 의료영리화 정책 추진을 둘러싼 논란에 대응하는 보건복지부 관료들을 보면서 아렌트가 자신의 보고서를 통해 했던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이란 표현이 떠오른다. 투자활성화 대책이란 거대 명제에 숨어 그러한 정책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는 모습 때문이다. 복지부 장관과 관료들이 이러한 논란에 반박하는 화법은 간단하다. '이것은 오로지 국민들에게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의료전문가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견해는 다른다. 오히려 의료체계를 왜곡시키고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특히 국민이 아니라 대기업을 위한 규제완화 정책일 뿐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우세하다.  

복지부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활성화를 위해 법개정을 강행하고 있다. 특히 원격의료 활성화의 명분을 얻기 위해 절차와 과정이 베일에 싸인 채 비밀리에 추진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관료주의의 완결판을 보는 듯 하다. 현행 의료법 체계에 반하는 하위법령 개정, 그리고 황당 해프닝으로 끝난 제주도 외국영리병원 설립 승인 등은 복지부가 국민들의 건강을 담보로 정책적 도박을 벌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형표 장관과 복지부 관료들은 오로지 부여받은 의무의 이행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듯 하다. 영혼이 없는 관료라지만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이 초래할 악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비판적 사고마저 결여된 건 아닌지 걱정이다. 심지어 행정 절차상의 정당성만 획득하면 그 결과에 대해선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듯한 무책임마저 엿보인다. 결국 국정감사장에서 복지부가 행정독재를 한다거나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시녀 노릇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제는 양심과 비판적 사고다. 양심과 비판적 사고를 결여한 채 맹목적으로 의무에 충실한 개인과 집단으로부터 발현되는 악은 오히려 더욱 난폭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이행할 경우 누구나가 악행을 저지를 수 있음을 아이히만은 입증했다. 집요하게 아이히만을 관찰한 아렌트의 시선을 쫓아가다 보면 유대인 학살에 대한 죄책감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관료적 사고와 만나게 된다. 소름 돋는 '악의 평범성'이여….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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