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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의사들은 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거부감 갖게 됐나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4.10.0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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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 사전에서 정의한 인술(仁術)의 의미다. '의술은 인술이다'는 식으로 인용해서 사용된다. 그만큼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의 의료행위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미있는 일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의사들은 인술이란 용어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인술이 갖는 본질적 의미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건 의사의 희생과 봉사정신이 충만한 '인술의 추억'을 강요받는 게 싫은거다.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에 연루된 의사, 의료과오를 숨기기 위해 진료기록을 조작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행위를 제공하지 않는 의사, 인성이 부족한 의사가 저지른 부도덕한 사건사고에는 어김없이 '인술을 외면한 의사'란 비난의 딱지가 붙는다. 특히나 우리 사회는 의료인에게 성직자 수준의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요구한다. 그래서 '인술을 외면한 의사'란 비난은 사회적 스티그마와 같다. 치욕의 낙인처럼 언제라도 꺼내들 수 있고, 그 때마다 효과는 기대이상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역시 인술과 마찬가지로 의사들에겐 유쾌한 용어로 다가오지 않는다. 인술이란 말처럼 의사집단을 비난할 때 꽤나 유용하게 사용된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난 3월 의료영리화 정책 추진에 반발한 의사들이 집단휴진 투쟁에 나서자 정홍원 국무총리는 '의사협회 집단 휴진 관련 긴급담화문'을 발표했다. 정 총리는 담화문에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인용했다. 집단휴진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어기는 것으로 비윤리적이란 비난 여론을 조성하고 의사들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였다. 총리의 담화문 발표 그 다음날 주요 일간지 한 곳의 사설 제목이 '파업 의사들, 히포크라테스를 잊었나'였다.

 

의사들이 인술과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부조리한 의료제도로 인해 발생한 의료현장의 문제조차 인술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끌어들여 개별의사와 의사집단을 비난하는 데 동원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제도의 틀 안에서 거의 모든 의료행위가 이뤄진다. 그 속에서 의사와 환자는 일종의 사적 계약관계다. 그런데 의사와 환자의 계약관계는 건강보험제도와 보험자를 통해 맺어지고, 또 규제된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건강보험제도와 급여기준은 의사가 환자를 위해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는 행위조차 규제한다. 임의비급여처럼 의사가 보험제도와 급여기준의 틀을 벗어나 최선을 진료를 제공했음에도 불법의 멍에를 씌우기도 한다. 포괄수가제도는 분명 의사 사회가 우려할 만한 사안이었다.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의료행위가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이뤄지는 표준화된 제품 생산 방식과 동일하다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개별 환자마다 몸 상태가 다르고 복합적인 질병을 앓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이유로 사전에 정해진 의료수가 내에서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는 게 의사들의 반발 이유였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 인술이고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실천이라고 강요하면 합리적인 문제제기와 고민이 파고들 틈이 없다.  

65세 이상 노인이 동네의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을 경우 적용되는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정액제 문제도 그렇다.  노인 본인부담금 정액기준 1만5천원은 13년 전 정해진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다. 13년간 의료수가 인상으로 평균 진료비가 올랐음에도 기준금액은 그냥 뒀다. 총진료비가 정액기준을 초과해어 본인부담금이 껑충 뛰면 환자는 '의사가 돈만 밝힌다'고 비난한다. 제도적 문제이지만 환자에게는 당장 눈 앞의 의사가 원망의 대상이다. 환자와의 갈등을 피하고자 기준금액을 넘어도 본인부담금을 깎아주는 의사도 있다. 진료비 할인은 엄연히 불법이다. 그 불법행위가 오히려 의사에게 돈만 밝히는 비윤리적 의사란 비난을 면하게 해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의료현장에서 벌어진다. 사실 의료현장은 이보다 더한 요지경 속이다.   의술은 그 자체로 윤리적이다.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 비윤리적일 수는 없다. 인술과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실천이 일부 의사의 특별한 미담으로 취급되는 건 잘못된 제도 탓이다. 인술과 히포크라테스 선서 실천은 의사의 몫일 뿐만 아니라 의료정책과 건강보험제도의 몫이기도 하다. 환자를 상대로 박리다매식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병원이 생존할 수 있게끔 구축된 건강보험제도, '1시간 대기 5분 진료'를 당연한 듯 여기는 의료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인술과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암묵적으로 강요받는 소명의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의료제도를 통해 이 두 가지 미덕이 의료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만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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