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지난해 9월 3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는 진주의료원 재개원 방안 마련을 주문한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결과보고서'가 채택됐다. 여야 국회의원 240명이 참석해 찬성 219명, 반대 2명, 기권 19명 등 압도적 찬성이었다. 이 때만 해도 국회의 국정조사 결과보고서가 진주의료원 재개원의 물꼬를 틔울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진주의료원은 여전히 폐업한 상태이고, 오히려 그 흔적마저 지워질 위기에 처했다. 국회의 국정조사 결과보고서는 휴짓조각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다. 국회에서 여야 의원 18명으로 '공공의료 정상화 국정조사 특위'를 꾸리고 무려 32일간 활동을 했다. 이를 통해 채택한 국조 보고서에는 ▲경남도는 진주의료원 매각중단 조치 및 구체적인 정상화 방안 마련 ▲1개월 이내 진주의료원의 조속한 재개원 방안 마련 ▲박권범 진주의료원장 직무대행 등을 검찰에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발조치할 것 등이 담겼다. 그러나 이런 국조 보고서의 결의 내용은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경남도와 홍준표 도지사는 여봐란 듯이 국조 보고서의 권고사항과 정면으로 반하는 조치를 취했다.

우선 경남도는 지난해 2월 말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한 이후 같은 해 5월 29일 폐업신고를 한데 이어 9월 25일 '청산 종결 등기'까지 일사천리로 완료했다. 국회 국조특위가 작년 7월 13일 활동을 종료하고 결과보고서를 채택한 이후 본회의 의결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끄는 사이 진주의료원 매각 절차를 완료한 것이다. 당연히 정상화 방안 마련은 안중에도 없었다. 진주의료원 재개원 방안을 마련하는 국회의 결의도 철저히 무시했다. 오히려 경남도는 폐업한 진주의료원을 도청 서부청사로 활용하기 위해 종합의료시설에서 공공청사로 용도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진주의료원 폐업을 확실하게 종결짓겠다는 의도다.

진주의료원 폐업 관련한 책임을 지고 검찰에 고발조치할 것을 요구한 경남도청 공무원들은 어찌 됐을까. 홍준표 도지사는 오히려 관련 공무원에 대해 '보은인사'를 했다. 진주의료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박권범 당시 경남도청 식품의약과장은 통영부시장으로, 윤성혜 복지보건국장은 경남도의회 사무처장으로 발령을 냈다.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국조 보고서의 권고사항이 무색할 지경이다. 

국회의 권위가 이 정도로 무시당했으면 뭔가 조치를 취할 법도 하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되레 홍준표 도지사는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의 당대표을 지냈던 프리미엄을 앞세워 재선에 성공했다. 더욱이 경남도는 내년도 예산을 사상 최대 규모로 확보했다고 벌써부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회가 무시당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힘을 실어줄 판이다.

국회는 '국정조사 및 감사에 관한 법률' 관련 조항(제16조 4항)에 근거해 해당 기관을 상대로 징계조치, 제도개선, 예산조정 등의 시정을 요구하고, 처리결과보고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진주의료원 국조 보고서 결의 사항을 철저히 농락한 경남도 앞에서 국회는 한없이 무기력했다. 지난 1년간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진주의료원 노조에서 백방으로 뛰었지만 국회와 정치권은 뒷짐만 지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 그러는 사이 진주의료원에서 강제 퇴원한 입원환자 중 수십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환자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파악조차 안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마찬가지였다. 진주의료원에 200억원이 넘는 국고를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경남도의 일방적인 폐업 조치를 그저 지켜봤다. 이렇게 많은 국고보조금이 투입된 진주의료원이 폐업하고 아예 공공의료시설이 아닌 경남도 서부청사 등 다른 용도로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저 "상황을 검토해 대응하겠다"는 하나 마나 한 말 뿐이다. 그래놓고 내년도 복지부 예산안에서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를 위해 33개 지방의료원 및 5개 적십자병원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능보강 예산이 올해 575억원에서 596억원으로 확대했다고 강조한다. 맙소사! 진주의료원 폐업을 방관해 놓고서 지방의료원의 기능보강 예산 확대라니. 

최근 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공보건의료 병상 비율은 2008년 11.1%에서 지난해 9.5%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민간병원 병상은 12% 가까이 늘어난 반면 공공병원 병상은 1.5% 증가에 그쳐 전체 병상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축소된 거다. 여기에는 325병상(노인요양 120병상 포함) 규모의 진주의료원이 폐업한 것도 한몫했다. 경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은 지방의료원을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각 지자체에 의미심장한 선례를 남겼다. 지자체가 맘 먹고 공공병원 폐업을 밀어붙이면 국회도, 복지부도 어쩔 수 없음을 인식시켰다.

문형표 장관은 최근 복지부 출입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의료공공성은 보건복지부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에서 보여준 복지부의 대응은 배임이자 직무유기다. 복지부 장관으로서 양심을 걸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국회와 정치권도 일말의 자존심이 남아 있다면 공공의료 국조 보고서를 농락한 경남도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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