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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금연’ 정책이 아니라 ‘담배규제’ 정책이다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 그래도 담배는 규제되어야 한다

[라포르시안]  우선 ‘금연’ 정책이라는 말부터 바꾸자.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말은 온갖 문제를 개인의 습관, 의지, 행동으로 좁힌다. 우리는 ‘담배규제정책’이 좀 더 정확한 말이라 생각한다.

담배를 피우는 것에 개인의 선택이나 취향이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는 사회 환경과 조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결정, 예컨대 금연도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의 맥락 안에서 봐야 답이 보인다.

그런 점에서 담배규제정책은 개인보다는 사회적 요인과 환경을 먼저 문제 삼는다. 그 말썽 많은 담뱃세 인상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가격 인상이 개인의 행동(금연이나 흡연을 시작하지 않는 것)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지난 주 <서리풀 논평>을 통해 우리는 정부의 담뱃값 인상(안)이 좋은 건강정책도 좋은 조세정책도 아님을 주장했다(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예상대로 지난 일주일간 꼼수 증세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경제 부총리는 다시 태연하게 건강을 말했지만, 나쁜 조세정책이라는 대세를 되돌리지 못하리라.

건강정책도 형편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건강과 보건을 위해 담뱃세 인상을 말하던 이들의 처지가 아주 곤혹스러워졌다. 앞뒤 사정이야 어떻든 정부가 한꺼번에 내놓은 담배규제정책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건강정책 전체가 대중의 믿음을 잃을 판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제안한다. 담배규제정책을 조세정책에서 분리하라. 다음부터 그렇게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이번부터 논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맞다. 건강정책으로서의 담뱃세 인상을 증세 논란에서 떼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필요하면 담뱃세 인상 시기도 미뤄야 한다.

많은 건강정책 전문가들처럼 담배규제정책을 ‘탈정치화’ 하자는 것이 본뜻이 아니다. 담배규제정책 역시 정치에서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정치와 무관한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조세와 기업, 노동, 의료, 젠더에 이르기까지 담배규제정책과 정치는 결코 분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담뱃세 인상은 건강정책이 잘못된 정치와 결합한 대표적 사례다. 부족한 복지 재원을 충당하려는 것이 주목적이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불가능한 (그리고 허울 좋은) 정치적 목표를 위해 담뱃세 인상이 소비되고 소모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부터 잘못된 결합을 분리하고 담배규제의 새로운 정치를 구성해야 한다. 대중의 믿음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이미 엎지른 물이라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먼저, 다시 확인할 것이 있다. 담배규제정책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무슨 정책 무슨 부처니 하는 영역 다툼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과 경제, 복지,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도전이다. 새삼스럽게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할까.

“처음부터 다시”라고 했지만, 필요한 원칙은 우리 연구소가 3년 전에 내놓은 입장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바로 가기).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꼼꼼하게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 여기서는 좀 더 강조할 것 그리고 보완할 것 몇 가지만 보태려고 한다.

첫째, 건강정책으로서의 담뱃세 인상은 지금보다 폭이 훨씬 더 커야 한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4천 5백 원보다 비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인상폭은 국내와 국외의 경험을 모두 모아 가장 효과가 높은 쪽을 택해야 한다. 제발 담뱃세를 통한 재정 확보는 잊으시라.

가격에 관한 한 이미 안을 내놓은 정부가 그냥 버틸까봐 걱정이다. 국회에서 어정쩡하게 타협하여 천원쯤 올리는 것으로 낙착되는 것이 가장 나쁘다(그런데 가장 가능성이 높다). 흡연율은 꿈쩍도 않고 서민과 빈곤층의 부담만 늘어나는 시나리오.

둘째, 이른바 ‘비가격정책’을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한다. 비가격 정책이 무엇인지는 우리 연구소의 보고서에서 따온 아래 표를 참고할 것. 제목만 있지만 담배 규제가 얼마나 종합적이어야 하는가를 아는 데는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셋째, 담배규제정책의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논평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흔히 다리와 도로를 사회간접자본으로 생각하지만 이것만 인프라가 아니다. 담배규제정책과 같은 건강정책도 좋은 인프라 없이는 다 말장난이다.

인프라는 사람, 시설, 프로그램, 지식과 경험, 그 모두를 아우르는 시스템 같은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담배 중독자에게 무료로 치료를 제공한다고 하자(치료비는 담뱃세로 만든 건강증진기금으로 충당한다고 가정하고). 사람(의사, 간호사, 교육자 등), 시설(진료실), 치료제와 다른 재료, 치료의 전문성과 지식, 재정, 치료 시스템 등이 충분하게 갖추어져야 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인프라다.

담배에서 걷는 건강증진기금 약 2조원 가운데에 금연사업에 쓰이는 돈이 2-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관련 기사).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일반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에도 이 돈을 쓴다.

내년 예산에서 금연사업 예산을 많이 늘렸다고 하나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보기 힘들다. 이 기금이 처음 생길 때부터 있던 문제가 그대로다. 건강증진기금인데 ‘건강증진’은 온데간데없는 셈이다.

왜 그럴까. 예산편성과 기금의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한 인프라가 허약해서다. 돈을 쓰고 싶어도 통상적으로는 그럴 도리가 없다. 따지자면 담배만 그럴까. 건강증진(그리고 담배규제)을 위한 인력과 시설, 프로그램 모두가 턱없이 부족하다.

증세에 대한 여론이 나쁘니, 지금이라도 담배규제를 위한 예산을 늘리려고 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당분간은 돈을 제대로 쓰기가 불가능하다. 담배규제정책의 인프라를 확충하지 않고서는 그나마 혈세를 낭비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담배규제정책의 폭을 크게 넓혀야 한다. 담배를 중심에 놓은 공중보건 정책은 다른 사회정책과 연계되지 않으면 금방 한계에 봉착할 것이 뻔하다. 그 골치 아픈 청소년 흡연이 어디 건강정책만으로 해결될까. 큰 고민거리인 빈곤층 흡연율도 담뱃값을 올린다고 금방 떨어질 리 없다.

근본을 따지면 흡연과 금연의 사회적 역동이 워낙 복잡하다. 노동과의 관련성이 한 가지 예다. 바로 작년에 김관욱이 인류학 논문으로 펴낸 <콜센터 여성의 노동과 흡연, 그리고 주체성>을 보자. 흡연에 개입된 노동의 ‘생활세계’와 ‘체계’의 상호작용을 잘 보여 준다 (바로가기). 

“Z콜센터는 여성흡연자를 위한 쾌적한 야외흡연실을 제공하고 있었으며, 흡연 시간 또한 업무에 지장이 없는 한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었다…(중략)… 여성 상담원들은 물리적∙전자적 감시체계 하에 상시적으로 자리 이석을 감시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콜센터가 여성 상담원들의 흡연 시간 및 장소를 제공해 주는 것은 관리자의 경험상 흡연이 상담업무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콜센터 노동자에게 담배규제정책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담뱃값 인상과 또 다른 금연사업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런 맥락에서 담배규제정책은 건강정책이자 사회정책이어야 한다. 아니 좁은 의미의 ‘정책’을 넘는다. 

담뱃세 인상은 담배규제정책의 중요한 한 요소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건강정책, 나아가 사회정책의 하나로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담뱃세가 꼼수 증세에 포획된 것은 아깝지만, 달리 보면 또 다른 기회다. 담배규제, 다시 시작하자.


[알립니다] 본지에서는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서리풀 논평'을 매주 게재합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최선,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공동체'를 비전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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