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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문화는 정체성의 문제…“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 오주석 지음 / 솔 펴냄, 2006년

[라포르시안 ] 연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초상화의 비밀’전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태조 어진」과「윤두서 자화상」을 비롯하여 이명기, 김홍도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국보급 초상화는 물론 중국과 일본, 멀리는 유럽에서 온 루벤스의「안또니오 꼬레아」로 불리는 한복 입은 조선 남자의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200여점에 달하는 초상화 작품을 볼 수 있었던 대규모 전시회였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작품에 담긴 깊은 의미를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 역시 아는 만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아쉬움을 채워줄 기회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북소리]에서 소개했던 이진숙님의 <위대한 미술책>에서 독립된 장으로 구분한 ‘한국미술사’편에서 오주석의 옛 그림 감상법을 담은 책들을 소개받게 된 것입니다. ‘선인의 눈과 마음으로 느끼는 옛 그림의 깊은 맛’이라는 제목으로 옛 그림 감상법을 요약한 이진숙님은 오주석님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과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를 읽어볼 것을 권하였습니다. 저자 오주석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더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고, 간송미술관 연구 위원 및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조선시대의 그림, 특히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한 21세기의 미술사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생전에 그는 우리 옛 그림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법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토록 원대한 꿈을 품었던 그가 백혈병을 얻어 불과 49살의 나이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생을 마감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백혈병 치료는 세계가 알아주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지 싶습니다.

‘전통 미술 전반에 대한 좋은 입문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오주석의 한국미 특강>은 저자가 공무원교육원에서 가졌던 강연녹취를 책으로 꾸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옛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총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반면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은 대표적인 옛 그림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각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강을 시작하면서 저자는  “옛 그림을 보여드리기 전에 우선 옛 그림 감상의 원칙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선인들의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첫째,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둘째,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오주석의 한국미 특강 17쪽, 솔, 2003년)”라고 옛 그림을 감상하는 원칙을 요약합니다. 이어서 옛 그림 감상법 설명에 들어가는데, 우선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기 좋은 거리는 그림의 대각선 길이를 기준으로 1~1.5배 정도가 좋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우리의 옛 그림은 옛 글씨를 쓰는 원칙대로 우상좌하(右上左下)의 법칙에 따라 읽어야 하는데, 과거에는 서화일률(書畵一律)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글쓰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가로쓰기로 하고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는 세로쓰기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옛 그림을 읽을 때는 옛 사람들 방식대로 오른쪽 위로부터 왼쪽 아랫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림은 가능한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주마간산 식으로 휙 하니 지나가면서 중요한 점을 제대로 붙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본 원칙을 설명한 다음에는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실려 있는 '씨름'이라는 소품을 놓고 옛 그림 감상법을 꼼꼼하게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전체를 개괄하고 이어서 그림의 세부적 요소를 따로 들어내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물두명의 등장인물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분석하여 그의 출신성분과 성격까지도 유추하는데, 필요에 따라 세부를 확대한 여덟 장의 도판을 별도로 실어 읽는 사람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이진숙님은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이렇게 작품을 뜯어보고, 이리저리 굴려보고, 엮어 보는 재미가 꿀맛이다(이진숙, 위대한 미술책 270쪽, 민음사, 2014년)”. 이처럼 오주석님은 그림의 미학적 요소 뿐 아니라 그림을 통하여 그 시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까지도 유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등장인물의 모습에서 씨름의 승패까지고 예견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그림을 꼼꼼하게 읽었으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옛 그림 읽기의 각론에 해당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자가 생전에 출간한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에서는 김명국의 「달마상」,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김정희의 「세한도」, 김시의 「동자견려도」,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이인상의 「설송도」, 정선의 「인왕제색도」등 열두 점의 그림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그림과 관련된 수많은 일화 그리고 저자가 그림을 해석하기 위하여 다양한 고사와 시문을 언급하고, 나아가 이 그림들이 화가의 삶이나 당대의 정치와 사회상황, 그리고 선, 불교, 주역, 유학 등 조선시대의 철학사상과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에 곁들여, ‘옛 그림의 색체’, ‘옛 그림의 원근법’, ‘옛 그림의 여백’, ‘옛 그림 읽기’, ‘옛 그림 보는 법’, ‘옛 그림에 깃든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글들은 옛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익히는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 안견의 ''몽유도원도'

주옥같은 작품 설명을 하나라도 건너뛰면 안 될 것 같지만 지면관계상 한 작품만을 고른다면 서양화와 우리의 산수화의 중요한 차이점을 깨우칠 수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어느 여름날 밤의 꿈속에서 노닐었던 도원을 그린 그림입니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비롯된 무릉도원은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라고 묘사한 것처럼 선비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안평대군은 당대의 화가 안견에게 꿈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고, 작품을 제작하게 된 연유를 손수 적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일본 천리대학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몽유도원도」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순간 우리는 대뜸 펼쳐진 황홀한 무릉도원의 전경(全景)에 압도된다.(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62쪽, 솔, 2005년)’라고 했습니다. 한편의 장대한 교향시와 같은 그림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오른편 위쪽에서 왼편 아래쪽으로 가로지르는 대각선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특히 「몽유도원도」에는 우리 옛 그림의 원근법이 갖는 장점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옛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원근법으로는 “첫째 깍아지른 높은 산을 아래서 위로 치켜다본 시각[고원법(高原法)], 둘째 엇비슷한 높이에서 뒷산을 깊게 비껴본 시각[심원법(深遠法)], 셋째 높은 곳에서 아래쪽을 폭 넓게 조망한 시각[(평원법(平遠法)]이 있어, 이를 통틀어 옛 그림의 삼원법(三遠法)이라 하는데(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77쪽, 솔, 2005년)”,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풍경화는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면서 풍경 밖의 한 곳에서 전체를 조감하는 원근법을 적용하고 있어, 풍경을 보고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산수화는 풍경 자체를 주인공으로 하고, 주인공을 치켜보고, 내려다보고, 비껴보고, 휘둘러봄으로써 산수의 다양한 실제 모습을 담아내려고 한 것(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79~81쪽, 솔, 2005년)이라고 합니다. 이진숙님에 따르면 오랫동안 원근법에 익숙해온 서구인들은 세잔에 이르러 비로소 원근법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는데, 특히 데이비드 호크니는 ‘원근법을 절대시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서구의 특정 관념을 맹신하는 폭력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호크니의 설명에 따르면 “오랫동안 서양미술을 지배해온 ‘선원근법은 인간의 눈의 법칙이 아니라 렌즈 사용에 근거한 광학의 법칙일 뿐’이라는 것입니다(이진숙 지음, 위대한 미술책 405쪽, 민음사, 2014년).” 그리하여 사람은 사물을 카메라처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본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바로 동양회화가 표현하는 원근법이기도 합니다.

윤두서의 <자화상>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인용한 편지에 “대개 서울에 있을 적부터 이 일을 포기한 지 벌써 오래되었는데 남쪽으로 돌아온 후로는 더더욱 적막하게 지내면서 눈의 시력 또한 흐리고 뿌예졌습니다.(101쪽)”라는 대목을 보면 윤두서가 백내장을 앓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눈 둘레에서 안경에 눌린 자국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윤두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긴 노안으로 안경을 사용했음을 의미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흐리고 뿌옇게 변했다고 한다면 렌즈에 혼탁이 생기는 노인성 백내장으로 인한 증세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같으면 렌즈를 교체하는 수술을 받아 밝은 시야를 되찾을 수 있었겠지만 당시의 의술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는 저자 생전에 마무리를 하지 못한 유고를 정리하여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1권과 같은 형식으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김홍도의「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그리고 작가 미상의 「이채 초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옛 그림의 표구’, ‘문인화, 옛 선비의 그림의 아정한 세계’ 그리고 ‘조선과 이조’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글은 옛 그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너도 나도 금강산 관광을 나서는 것이 왜 못마땅했던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금강산을 구경해보지 못하고 여전히 <그리운 금강산>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어서 정선의 「금강전도」가 반갑기도 합니다만,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에서는 역시 김홍도의 「마상청앵도」의 해설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옛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의 의미를 깨닫게 되어서 일 것입니다. 봄날 나들이에 나선 선비가 문득 들려오는 꾀꼬리 우는 소리에 말을 멈추고 꾀꼬리를 뒤쫓는 모습을 넉넉한 여백을 곁들여 담백하게 그려낸 「마상청앵도」는 문인화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는 저자는 선비의 뒤쪽에 아무 것도 그려 넣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둔 것은 ‘꾀꼬리 소리에 정신을 빼앗겨서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아득한 심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어서 문인화의 정신과 본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1. 문인화는 선비의 그림이다. 2. 문인화에서는 작가를, 그리고 한 인간을 본다. 3. 문인화에서는 미태가 떠도는 점을 꺼린다. 4. 문인화에서는 형상을 극소화하고 상상은 극대화함으로써 감상 행위가 살아 숨 쉬게 한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서문에 “문화,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보람, 특히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우리인 까닭, 바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는 빼어난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문화인·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습니다.”라고 적을 만큼 저자는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모양입니다. 우리 문화의 우수함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려면 먼저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인데, 그 꿈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그가 남긴 책들은 분명 ‘조상들이 이룩해낸 문화와 예술이 참으로 훌륭하고 격조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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