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참여정부 임기를 한달 여 남겨둔 2008년 1월의 관가는 상당히 어수선했다. 바로 전달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둔 시기였다. 부처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 국정홍보처가 인수위에 업무보고를 하면서 추궁을 받던 중 두고두고 회자될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 말은 독일의 정치가이자 정치학자인 막스 베버의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을 차용한 것이다. 어느 정부에서나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관료주의의 특성이자 한계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자신들은 전임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했을 뿐이란 책임회피용으로 베버를 끌어들인 것이다.

다른 부처라고 다를 바 없겠지만 지금 보건복지부에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넘쳐나고 있다. 보건복지 정책에 대한 기본철학은커녕 최소한의 원칙조차 없어 보인다. 제주도 내 '제1호 외국영리병원' 사례 창출로 주목 받았던 싼얼병원 설립 승인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앞서 지난 8월 제6차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하면서 복지부는 9월 중 싼얼병원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달 가까이 싼얼병원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싼얼병원 설립 주체인 중국 모기업의 대표가 사기대출 혐의로 구속수감된 상태이고, 병원 설립을 추진할 여력조차 없다는 의혹이 보도됐다. 게다가 제주도에서 싼얼병원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한국법인 사무소는 이미 작년 말 철수한 상태로 드러났다.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지만 복지부는 이달 초까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해명하기에 급급했다. 외교부 중국 공관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 승인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 했을 뿐이다. 그러다 덜컥 언론에서 제기한 각종 의혹이 모두 사실도 드러난 것이다. 결국 지난 15일  제주도에서 요청한 외국영리병원인 '싼얼병원'의 사업계획서를 불승인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복지부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10월 모기업 대표의 비위행위 등이 중국 현지 인터넷 신문 등에 기사화된 것을 알게 됐으며, 이러한 사실을 투자유치 주체인 제주도에 전달했다. 이후 지난해 11월 제주도 측에서 모기업 대표의 신상문제를 확인한 결과, '문제없다'는 입장을 전달받았다는 게 복지부의 해명이다. 싼얼병원 승인 여부를 둘러싼 논란에서 복지부는 잘못한게 없고, 제주도에서 사실관계 파악을 부실하게 했다는 뉘앙스다. 뻔뻔하다. 싼얼병원 승인을 둘러싼 논란은 복지부가 투자활성화 대책의 성과창출 조급증에 눈이 멀어 외국기업의 투자 가능성과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 문제는 업무처리를 허술하게 한 자신들한테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탓을 한다. 그마저도 부족했던지 "투자의 실행가능성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투자의사와 능력을 갖추고 보건의료 관련법령 등 국내법을 준수할 경우 유치사례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놀라운 '유체이탈 화법'마저 구사한다.   

최근 들어 복지부 장관부터 소속 공무원까지 내뱉는 말이 오락가락한다. 엉터리 논리를 기반으로 한 '형용모순'이 넘친다. '의료의 공공성이 복지부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고 말하면서 또 한편에서 '의료산업화가 시대적 흐름'이란 주장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정부투자 부족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공공의료 비중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다. 그렇기에 의료민영화 논란에 '우리나라는 이미 민간의료기관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의료민영화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왜곡된 의료전달체계와 잘못 설계된 건강보험 수가제도 탓에 병원이 적은 인력으로 박리다매 방식으로 경영을 유지하는 판에 영리자회사를 통해 경영을 개선하면 새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주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병원이 영리자회사로 돈을 벌고 경영이 개선되면 의료서비스 질이 높아지고 결국 의료공공성이 강화된다는 주장에는 그저 기가 막힌다. 영혼도 없고 자존심도 없다. 경제부처가 주장하는 산업화 논리에 정책을 꿰맞추기 바쁘다. 아무리 힘 없는 복지부 장관이라지만 경제부처의 정책 발표 때마다 들러리 서는 모양새는 보기 흉하다. 의사-환자간 원격진료 허용이 의료취약지에 거주하는 서민들을 위한 민생법안이란 주장은 해도해도 너무하다. 정권 코드 맞추기의 도가 지나치다. 보건복지 코드는 버린지 오래다. 당장 눈 앞에선 어떨지 몰라도 권력에 코드를 맞추는 직업관료를 정치권력이 얼마나 우습게 여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라. 또한 공무원이란 자리에 숨어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버리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일이다. '얼'은 정신과 영혼이란 뜻의 순우리말이다. '싼얼병원' 사태를 보면서 자꾸 '싼 얼'로 읽힌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