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케어의 복지정치 / 김성수 지음 / 한국학술정보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크림반도 점령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간섭이 도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국가들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전임 부시대통령이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벌인 전쟁이 실패한 전쟁으로 규정되고 대통령선거에 즈음하여 본격화된 금융위기가 반사이익을 가져다주었다는 냉정한 평가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개혁안들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 그가 초선 상원의원이라는 초짜 정치인에다가 흑인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감상해보지 못했습니다만, 2008년 발표됨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감독은 의료기관들이 수익논리에 따라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민간 의료보험제도의 불합리성을 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혹은 영화라는 매체가 감독의 기획의도에 따라서 특정한 부분을 강조하는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시청자 혹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무어 감독이 <식코>를 제작할 정도로 많은 미국 국민들이나 전문가 역시 미국의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제도를 뜯어고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바마 이전의 민주당 대통령이었던 클린턴 역시 취임과 동시에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에 착수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보다 많은 미국 국민들이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변화를 실행에 옮기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정치외교학과 복지학을 전공하신 김성수교수님이 쓴 <오바마케어의 복지정치>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강보험개혁 과정과 제약요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체계의 핵심을 민간에 맡기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우리나라와 흡사하지만,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민간보험에 주로 의존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당수 국민들은 건강보험제도권 밖에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개혁의 필요성이 절실한 이유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되기는 했습니다만,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연수를 받던 시절 미국의 건강보험제도를 조금 맛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지도교수께서는 연간 7,600달러 정도의 연수비용을 지원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셔서 걱정을 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액으로는 건강보험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시게 된 지도교수께서 연봉을 12,500달러로 올려주신 덕분에 안심하고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두 아이들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도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험가입이 안된 이웃 가운데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는 사고를 당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메디케이드의 지원을 받아 입원비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 유학생들이 출산을 하는 경우 역시 메디케이드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 2010년 3월23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상하원을 통과한 '건강보험법개혁안'에 서명하고 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은 건강보험 정책결정의 이론적 배경과 분석틀, 미국 건강보장체계의 구조와 문제점, 오바마 행정부의 건보개혁 과정과 제약요인, 오바마 행정부의 건보개혁 이후 과제와 전망, 그리고 결론 및 제언의 순서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OECD 주요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국가주도의 전 국민 건강보험체제가 보편적일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미국만이 그런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복지정치사적 배경과 미국이라서 가능한 건보개혁의 방향과 한계를 연구하는데 있어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보려 한다.”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차이란 선행연구들이 대체적으로 ‘이익집단’을 건보개혁의 주된 변수로 주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의 ‘지배적 문화’가 ‘이익집단의 반발’ 못지않은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사회과학 연구방법 가운데 ‘질적 연구(해석적 연구)’를 채택하였고, 다양한 자료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이 연구의 이론적 배경으로 설정한 문화이론을 적용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고 합니다.

먼저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을 요약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먼저 이익집단이론입니다. 이익집단이란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어떤 주장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하는데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이익집단이 정책결정자와 국민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익집단이론은 “정책결정을 이익집단들 간 경쟁의 결과로 이해하고 한 시점에서 선택된 정책결정을 경쟁에서 이긴 이익집단의 전리품으로 이해한다.(34쪽)”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례로 보면, 2000년 시행된 의약분업제도를 시발로 하여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보건의료정책의 상당부분을 이익집단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90년대 말 급부상한 약계의 파워가 의사들이 주도하던 약품선택권을 가져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엘리트이론은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소수의 엘리트들이 정책결정을 주도한다는 이론인데, 최근 보건의료정책이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정부주도로 진행되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 하겠습니다. 수렴이론은 산업화이론이라고도 하는데,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들 간에는 의료서비스 조직과 재원조달 등 사회보장이나 정책의 내용까지도 점차 유사한 유형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뒤로는 OECD국가에서 시행되어 성과를 올린 정책을 도입하게 되는 경우를 설명하는 이론이라 하겠습니다. 최근 심평원이 확대하고 있는 ‘평가연계 수가제도(pay for performance; P4P)’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역사적 제도주의 이론은 행위를 형성하고 제약하는 맥락으로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맥락이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중시하는 이론입니다. 정책연구에서 역사적 시각과 거시 구조적 분석을 통합함으로써 국가들 간 정책의 상이점과 한 국가 내 정책패턴의 지속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합니다.

그 밖에도 보건의료정책을 설명하는데 있어 권력자원이론, 생산레짐이론, 권력중심적 행동이론, 세력균형이론 등이 나름대로의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하지만, 한 나라의 건보개혁에 대한 정치과정과 결정요인을 설명하는데 있어 핵심요인들을 단편적으로 설명하는데 그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화이론은 복지제도 자체가 해당 국가의 고유한 문화나 가치에 의하여 시기가 결정될 수 있으며, 한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왔던 신념이나 가치, 태도 등이 자원분배의 과정을 제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건강보장체계는 의사와 환자만의 관계로 국한하여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의학적 지식만으로 구성될 수 없으며, 의료에 간여하는 다양한 영역이 참여하는 복합적 건강보장체계의 구축이 필수적이며, 관련된 정책은 국가차원에서 수립되고 시행된다는 점에서 해당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영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문화이론에 따르면 미국이 유럽사회와는 달리 복지정책의 발달이 지체된 것은 미국 특유의 강한 자유방임주의 가치, 개인주의, 그리고 자조정신이라고 하는 문화적 요인이 배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건강보험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15년이었으니, 100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지 않고 있는 것은 국가주도의 건강보험 정책은 개인주의적이며 독립적인 정신을 강조하는 미국인의 문화적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은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와 작은 정부의 선호, 개인의 선택 등 미국인을 지배하는 가치관이 건강보장 부문에서도 민간주도로 발전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유럽사회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계층에 대한 인식이 그 맥을 이어져왔지만, 이러한 유럽사회를 등지고 떠난 사람들이 정착해서 만든 미국은 계층에 대한 인식이 엷을 수밖에 없고 특히 서부개척시대를 지나면서 스스로의 노력에 의하여 미래가 결정된다는 인식이 굳어져왔다고 합니다.

▲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의 한 장면. 손가락 절단사고를 당한 사람이 응급실에 실려가자 보험가입 유무부터 확인한 의사가 "보험이 없다"는 환자의 말에 셋째 손가락 접합에는 6만달러, 넷째 손가락 접합에는 1만2천달러가 소요된다고 설명하는 장면.

저자는 미국의 건강보장체계의 구조와 문제점을 다루면서 미국의 GDP 대비 의료비가 16.0%, 1인당 의료비가 7,538달러에 달하면서도, 공공부분의 의료비부담이 46.5%에 불과한 상태로(2010년 기준) 여타 OECD국가들과 비교해서 고비용임에도 평균수명, 영아사망률, 비만율 등은 여타 국가들과 열세로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 자료를 인용하지 않은 점은 물론,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나은 국가들의 자료만 골라 인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또한 미국의 건강보장체제는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메디케어, 저소득층 및 장애인을 위한 메디케이드, 군인관련 건강보험, 아동건강보험프로그램, 주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 등이 30.6%의 미국인을 커버하고 민간보험이 63.7%를 커버하고 있어 전체 인구의 16.7%의 미국인은 무보험자로 건강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문제는 최근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직장을 통한 건강보장기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0년 63.6%에 이르던 직장보험 가입자는 2004년에는 59.8%로 그리고 2009년에는 55.8%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의학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그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비용은 매우 높은 반면, 의료서비스의 경쟁력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미국의학이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건강보장체제를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능성만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고, 정부도 마찬가지로 의학의 발전을 위하여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과감한 투자의 성과로 얻어진 연구결과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산학연계체제 또한 미국의 의학수준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한 것입니다. 반면 국가의 통제 아래 모든 것이 결정되는 유럽의 경우 지난 세기까지 주도해오던 신약개발을 비롯한 보건의료 분야가 기술성과면에서 미국에 밀리게 된 것을 보면, 미국의 건강보건체계를 유럽 국가들의 그것과 단순하게 비교하는 작업이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외교정책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핵심과제로 추진해오던 100년 숙원의 건보개혁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의회를 통과하여 2010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발효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약 1조 달러를 투입하여 전체 미국인의 약 95%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미국의 정신과는 배치되는 점이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결단의 소산이었던 탓에 향후 전망을 불투명하다고들 합니다. 실제로 공화당이 미국 하원을 장악한 2011년 1월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개혁조치 중 하나인 건보개혁법을 폐지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되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실효적이지 못한 결정이지만, 건보개혁법의 험난한 앞날이 예견되는 대목입니다. 처음 기획되었던 것보다는 아주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건보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하여 실행에 옮겨진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들은 문화이론으로 미국의 건보체제를 검토한다고 하였지만, 미국적 시각이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배경이 다른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의 발전방향을 구하면서 외국의 제도를 그저 베끼는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장성강화에는 부담이 뒤따른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정부 주도로 오랜 기간에 걸쳐 시행되어 온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 역시 한계에 이른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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