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가 낸 건강증진기금 중 금연사업 지출 1~2% 불과…건강보험 재정지원에 1조 이상 쓰면서 금연치료는 보험혜택 제외

[라포르시안]   정부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담뱃값 인상을 추진한다.

정부는 오늘(11일) 오전 열리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담뱃값 인상안을 포함한 '종합 금연대책'을 논의하고 낮 12시경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일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가격정책이 최선"이라고 강조하며 담배가격을 최소한 갑당 2,000원 가량 인상하기 위한 관련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복지부가 담뱃값 인상을 추진하는 명분은 국민건강을 위한 흡연율 감소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담뱃값 인상 추진이 세수 확보를 위한 꼼수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현재 담배 한 갑에는 상당히 많은 세금과 부담금이 붙는다. 담배 제조 원가보다 세금과 부담금이 더 많다. 

흡연자가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샀다. 이 흡연자는 과연 얼마의 세금을 낸 걸까.

담배 한 갑에는 모두 3종류의 세금과 2종류의 부담금이 부과된다. 3종류의 세금은 담배소비세(641원), 지방교육세(321원), 부가세(227원) 등이다.

2종류의 부담금은 폐기물 부담금(7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354원) 등이다. 지난 2008년 폐지되기 전까지는 엽연초생산안정화기금이란 명목으로 담배 한 갑당 15원이 부과됐다.

2500짜리 담배 한 갑에 붙는 세금과 부담금을 모두 합하면 1,550원이다. 나머지 1,000원이 조금 안되는 비용이 바로 담배 한 갑의 출고가와 유통마진이다.

흡연자들이 사실상 '세금을 태우는' 꼴이다.

건강증진기금 중 1~2%만 금연사업에 지원건강증진기금은 담배에 붙는 각종 세금과 부담금 중에서 한 갑당 354원씩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기반으로 조성된다.

그 규모가 연간 약 2조원에 이르는 건강증진기금은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금연교육 및 광고 등 흡연자를 위한 건강관리사업 ▲건강생활의 지원사업 ▲보건교육 및 그 자료의 개발 ▲보건통계의 작성·보급과 보건의료관련 조사·연구 및 개발에 관한 사업 ▲질병의 예방·검진·관리 및 암의 치료를 위한 사업 ▲국민영양관리사업 ▲구강건강관리사업 ▲시·도지사 및 시장·군수·구청장이 행하는 건강증진사업 ▲공공보건의료 및 건강증진을 위한 시설·장비의 확충 등에 사용된다. 

그러나 건강증진기금 중 금연교육 및 광고 등 흡연자를 위한 건강관리사업에 지출되는 규모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기금 중 약 60%는 건강보험재정을 지원하는데 쓰인다.

지난 2002년 건강보험 재정파탄 사태가 빚어지면서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건강증진기금을 건보재정에 지원토록 했기 때문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국가가 예상 건강보험료 수입의 20%(일반회계지원 14%, 건강증진기금 6%)를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규정돼 있다.

한 해 조성되는 건강증진기금 약 2조원 중에서 1조원 이상이 건보재정에 지원되고, 나머지 9,000여억원이 기금의 고유 용도 등에 사용되고 있다.

건강증진기금의 사용처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건강생활실천사업이다. 여기에는 금연을 비롯해 절주, 영양개선, 보건소건강증진사업, 건강관리사업 등이 포함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작성한 '국민건강증진기금사업의 운영현황과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건강증진기금이 조성된 첫 해인 1998년에는 전체 사업비 81억원 중 건강생활실천사업에 41.6%인 34억원을 지출했다.

2001년까지 전체 사업비 대비 건강생활실천사업 비중은 40~50%였지만 2002년 담뱃값 인상으로 건강증진기금 규모가 확대되면서 건강생활실천 사업 이외에 보건의료전반에 대한 기금의 활용이 증가했다.

건강증진기금 전체 사업비에서 금연 등 건강생활실천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2006년 사이에 2.1%~3.7%까지 감소했다.

이 기금 중 금연사업에 지출된 규모는 2007년 312억원에서 2008년 311억원, 2009년 281억원, 2010년 281억원, 2011년 245억원, 2012년 228억원, 20313년 89억원 등으로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반면 건강증진기금 중 국민의 건강증진과 무관한 곳에 사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복지부가 일반회계예산으로 지출해야 할 고유 사업에 건강증진기금을 전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해 12월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14년 국민건강증진기금 운용계획(안)’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 및 질병관리본부 예산 항목 중 건강증진기금으로 편성된 3,036억원이 국민건강증진법이 정한 기금 용도와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이 분석한 결과, 2014년 국민건강증진기금 예산 1조9,217억원 중 건보재정 부담금(1조191억원)을 제외한 실제 사업비 9,026억원 중에서 기금 사용의 근거가 없거나 미약한 16개 사업에 편성된 예산이 3,036억원(33.6%)에 달했다.

복지부가 추진하는 보건산업 육성과 제품개발 예산, 질병관리본부 전산장비 운영비용과 시험연구인력 인건비 등을 건강증진기금으로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항목은 당연히 복지부의 일반회계예산으로 편성해야 하는 사업이다. 

사실상 흡연자들이 담배를 소비하면서 지출한 세금이 복지부의 쌈짓돈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건강증진기금 중 연구개발사업에 지원되는 예산은 2012년 한 해 2,285억원에 달했으며, 이 중에서 기금의 본래 용도에 가장 부합하는 건강증진 연구사업에 지출된 비용은 24억원에 불과했다.

전체 2,285억원의 연구개발사업 지원 예산 중 무려 2,186억원이 보건의료기술개발 R&D사업에 지원됐다.

문제는 건강증진기금에서 예산이 지원된 당초 기금 설치 목적과 전혀 다른 보건의료산업 육성과 제품개발 등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보사연은 관련 보고서를 통해 "건강증진 연구사업은 주로 건강증진 본연의 분야의 사업을 평가하고 신규사업을 발굴하고, 근거중심의 건강증진정책과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데 기반이 되는 중요한 분야"라며 "대부분의 건강증진 관련 연구사업이 건강증진기금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실정을 고려할 때 건강증진기금에서 연구와 평가에 대한 비중과 재원배분은 매우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지난 2004년 담배에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2004년 354원으로 인상되자 복지부가 기다렸다는 듯 일반회계 예산으로 편성해야 할 사업 중 상당수를 건강증진기금으로 이관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남윤인순 의원에 따르면 담배부담금이 354원으로 인상된 다음연도인 2005년 34개 사업 2,335억원 규모의 사업이 복지부 일반회계에서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이관됐으며, 이후 2012년까지 모두 56개 사업이 건강증진기금사업으로 이관됐다.

흡연자 금연치료에는 건강보험 혜택 적용 안돼 흡연자한테서 거둬들인 건강증진기금 중 상당액이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고 있지만 정작 금연치료에는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흡연자들은 담뱃값 중 절반 이상을 세금과 부담금으로 지출하고, 특히 여기에서 상당한 금액이 건강보험 재정 지원에 쓰이고 있지만 정작 금연을 위한 치료를 받고자 할 때는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꼴이다.

그나마 뒤늦게 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피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금연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열린 '담배부담금의 올바른 사용방안 토론회'에서 남윤인순 의원은 "보건의료기술 연구개발 R&D, 한의약 선도기술 개발, 의료비지원사업 등 건강증진기금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들도 많다"며 "더욱이 건강증진기금은 담배부담금 수입액의 65%를 국민건강보험 재정지원에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금연치료는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흡연자들이 낸 세금으로 마련된 기금을 금연사업이나 흡연으로 인한 질병 치료보다 건강보험 재정지원이나 복지부 예산으로 전용하는 데 훨씬 더 큰 비중을 뒀으면서 이제와 국민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힘든 이유다.

국민건강을 위한 흡연률 감소를 위해 담뱃값 인상을 주장하기 전에 건강증진기금의 사용처 중에서 기금의 조성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일반회계 성격의 사업을 축소하고, 금연과 흡연자 치료 지원 등의 기금 조성 목적에 맞는 사업에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보사연은 '국민건강증진기금사업의 운영현황과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건강증진기금의 편성과 운영에서 일반회계 예산과 차별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며, 기금의 상당부분은 건강보험 지원과 일반회계 사업 예산 확보에 대체수단이 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건강증진을 위한 핵심사업에 집중 배분되지 못하고 있다. 기금의 본연의 목적에 맞는 사업에 투입이 확대되고 기금조성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사업이 축소 조정될 필요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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