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Book소리
[양기화의 Book소리] 곰브리치서 에코까지 세상을 바꾼 미술명저 62권위대한 미술책 / 이진숙 지음 / 민음사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여느 분야처럼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분야도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역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겠는데, 마음만 있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들어 재미를 붙이고 있는 책읽기의 관심분야를 확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술 분야의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발적으로 읽는 책을 통하여 잠시 관심이 쏠리기는 해도 체계적이지 못해 금방 잊어버리게 됩니다. 아내의 추천 덕분에 이런 아쉬움을 풀어줄만한 책을 만났습니다. 미술사를 강의하시는 이진숙님의 <위대한 미술책>입니다. 저자가 머리말에 적은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일은 세상과 만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듣고 더듬고 느낄수록 그만큼 더욱 풍요로워진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공부하는 일 역시 세상과 더 많이 감응해 나가는 과정이다.(5쪽)”라는 말씀에 공감하는 것은 세상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이해하는 법을 깨치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작품을 만든 분의 설명을 듣는 것이 제일 좋을 것입니다만,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폭넓은 시각을 갖춘 평론가의 해설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회를 자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책을 통해 스스로의 이해를 높이는 것이 차선의 길입니다. 이진숙님은 좋은 책을 고르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팁도 알려주셨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책은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영육의 조화를 이룬 책을 사랑한다. 책의 영혼이야 다들 알겠지만, 책의 육체라고 하니 좀 낯설 수도 있겠다. (…) 책은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지식의 깊이만큼 중요한 것이 책의 육체가 되는 언어의 유려함이다.(7쪽)” 책의 영혼에 해당하는 내용과 함께 육체에 해당하는 ‘언어의 유려함’ 즉, ‘독자의 호흡을 배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였는가?’를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위대한 미술책>이 미술에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공부가 많이 부족한 제게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저자가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작가, 미술사가, 비평가, 이론가, 컬렉터와 미술시장 관계자, 창작 행위, 미술이론, 미술관과 미술시장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미술 생태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62권의 미술을 주제로 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과, 저자가 고른 62권의 책은 독자들이 미술을 통해 미감을 발전시키고, 지식을 습득함에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한국미술을 별도의 장으로 독립시키고 있는 것은 우리의 미술 교육과 미술시장 전반이 서양미술에 치우쳐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라고 합니다.

독서가들이 책을 읽은 느낌을 묶어 내놓은 책들이 일반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미술책>은 단순한 서평에 머물지 않습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위대한 미술책>은 구체적인 서적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책 밖의 치열한 미술 현장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저자의 깊은 성찰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그 성찰은 서양미술에 경도되어 있는 우리의 미술이 전통적인 한국미술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가 인정하는 독보적인 모습으로 재탄생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62권의 미술책을 작가 이야기, 서양미술사, 한국미술, 미술이론과 비평 그리고 미술시장과 컬렉터 등 다섯 부로 나누었습니다. ‘곰브리치에서 에코까지 세상을 바꾼 미술명저 62’라는 부제를 달아놓은 것처럼 미술에 관한 숱한 책들 가운데 62권을 뽑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저자 덕분에 읽은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는 그리스시대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문학과 예술에 등장하는 목록과 열거의 예를 발췌하고 그 성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선별한 사례들을 모두 21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원전을 소개하고, 주제에 해당하는 미술작품들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에코는 방대한 자료 가운데 <궁극의 리스트>로 올리기에 적절치 못한 자료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선별했다고 합니다.

<위대한 미술책>에서 인용한 책들은 공저로 된 것도 있고, 한 사람이 쓴 여러 종류의 책이 선정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58명이 쓴 62권의 책들 가운데 이 책 이전에 읽은 책으로는 오직 질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동안 무얼 했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말고 여기에 언급된 책들을 꼭 읽어 보기 바란다.(12쪽)”라는 저자의 권고에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인용한 책을 바탕으로 저자의 생각을 풀어가고 있어 원전의 내용을 읽어 저자의 생각과 비교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감각의 논리>를 읽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들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라고 느낌을 정리한 바 있습니다. 이진숙님 역시 ‘<감각의 논리>는 들뢰즈가 베이컨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론을 설파한 것’이라는 철학자들의 지적에 공감은 하지만 철학적 해석보다는 회화적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즉, ‘모든 화가는 각자의 방식대로 회화의 역사를 요약한다.’라고 한 것처럼 들뢰즈는 “자기 방식으로 새로운 미술사의 계보를 만들어냈다.(98쪽)”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저자가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를 뽑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추상화가 되지 않으면서 구상화를 넘어서기’라는 어려운 과제를 설정한 들뢰즈로부터 ‘닮도록 하여라. 단 우발적이고 닮지 않은 방법을 통해서’라는 멋진 테제를 읽고, “이 말은 시각예술이 처해 있는 본질적 모순을 정확히 보여준다.”라고 짚었습니다. 이어진 구절에서는 앞서 말씀드렸던 책의 육체에 해당하는 언어의 유려함은 여기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야 되는 모순, 돈오돈수(頓悟旽修)처럼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모순 같은 것 말이다.” 저자는 들뢰즈가 내세운 ‘감각’에 대하여 말초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되는 교차점이며, 따라서 보다 본질적으로 세계와 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저자가 고른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을 다시 읽어볼 이유인 것입니다.

이 책의 1부 ‘작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예술가는 반 고흐, 고갱, 세잔, 피카소, 샤갈, 뒤샹, 베이컨, 백남준 그리고 뱅크시 등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작가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고, 별들이 위성을 거느리듯 작가에 대한 전기들이 넘쳐나는데, “이들은 누구나 알만한 19세기 말, 20세기의 작가들이고, 이 시기의 작가들의 작품과 삶은 지금, 21세기의 미술 생태계를 설명하는 데도 여전히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고른 것이라고 합니다. 작가별로 선정한 이유도 요약하고 있는데, 백남준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백남준의 꿈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25~26쪽)” 굳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을 끌어올 이유는 없다고 하겠습니다만, 저자가 고른 62권의 책 가운데 본인이 쓴 책이 26권에 달하고 있는 점도 같이 짚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미술이 한 꼭지로 다루어지고는 있다고 해도 다소 많다 싶은 느낌이 들지만, 한국어로 쓰인 ‘읽을 수 있는 책’만 선별한다는 원칙을 적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용은 훌륭하지만 문체가 조악하여 읽는 이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책들은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특히 번역이 중요한 외국서적에서 문제가 된 경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일반 독자가 번역의 문제를 제기한 책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번역문제 역시 쉽지는 않은 부분인 것 같습니다.

피카소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은 제가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미술관 산책>의 저자 최경화님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찾았을 때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적었습니다. 그것은 “이름이 ‘게르니카’일 뿐, 전쟁으로 고통받는 어떤 도시, 어떤 장소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진숙님은 <게르니카>는 물론 6.25남침을 주제로 한 <한반도에서의 학살>에서도 ‘현대에 일어난 학살’의 구체적인 의미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보다 그림을 먼저 배운 신동 피카소가 ‘10대 시절 아카데미 수준을 뛰어넘는 그림을 그린 천재였다’라고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천재 신화’가 피카소 성공의 핵심이자 실패의 원인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피카소가 열다섯 살에 완성한 작품으로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과학과 자선>을 보면 그의 입체주의 혹은 초현실주의 작품과는 달리 금세 무언가 와 닿는 느낌이 듭니다.

서양미술사를 다룬 2부에서는 미술사를 이미지의 역사로 대체한 레지스 드브레의 <이미지의 삶과 죽음>이 인용했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언급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프루스트가 창조한 문인 베르고트가 얀 페르메이르의 <델프트의 전경>을 감상하다가 “내가 이런 것을 써야 했는데!”라고 하면서 죽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을 인용한 드브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의 말없는 영원성에 압도당한 것으로 표현하고, 소설의 이 대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의 감각적 상태’를 전하는 데 문인보다 화가가 유리하다는 예증으로 인용한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해석이 지나친 점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에서 베르고트가 <델프트의 전경>을 감상하는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푸른 작은 인물이 몇몇 있는 것, 모래가 장미색인 것을 주목하고, 드디어, 황색인 작은 벽면의 값진 마티에르를 발견했다. (…) ‘나도 이처럼 글을 썼어야 옳았지 (…) 내 최근 작품은 모조리 무미건조하단 말야. 이 황색의 작은 벽면처럼 채색감을 거듭 덧칠해서 문장 자체를 값진 것으로 했어야 옳아.’(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갇힌 여인, 245쪽, 국일미디어 펴냄)” 그러면서 그는 하늘의 저울 한쪽 쟁반에 자신의 목숨을 다른 한쪽에는 황색 벽면이 올려진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이 무모하게도 작은 벽면 때문에 목숨을 희생했구나’라고 후회하기에 이릅니다. 유예진 교수는 이 장면을 같은 화가의 <진주를 저울질하는 여자>로 연결하여 해석했습니다.(유예진 지음, 프루스트의 화가들, 256-275쪽, 현암사 펴냄) “고작 페르 메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을 뿐인 한 화가가 학식과 세련된 솜씨를 다해 황색의 작은 벽면을 그려 냈듯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한 가지를 그려야 한다는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고 느낄 아무런 이유도 없다.(246쪽)”라고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프루스트는 베르고트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하여 작품 활동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달리 생각하면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한국미술사를 다루는 제3부일 것 같습니다. 미술을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한국미술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역사적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 과거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한국미술의 뿌리에 대한 공부 없이 현대적 작가들의 작품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공허한 일이라는 생각에서 한국미술의 원형을 그려보고 한국 현대 작가와 비교해 보는 작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저자가 고른 여러 가지 책들 가운데 우선 <오주석의 한국 미 특강>을 읽었는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만방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면 먼저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할 것이라는 오주석님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선인들의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첫째,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둘째,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할 것이라는 ‘옛 그림 감상의 원칙’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하나 더, 이상현님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에서 “한옥에는 음악처럼 높낮이가 있어 끊임없이 리듬을 만들어 낸다. 지붕 선이 리듬을 타고 추녀 끝에 걸리면 벽면을 채운 재료들이 질감의 변화를 이끌며 흥을 돋운다. 한옥에서 시작한 율동감은 자연스럽게 마을로 이어진다.”라고 적은 것처럼 우리나라 건축물에 담긴 심오한 철학과 문화사적 흐름을 깨치려면 <김봉렬의 한국 건축 이야기>를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라는 이진숙님의 권고를 챙기려 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이 책의 부제 ‘곰브리치에서 에코까지 세상을 바꾼 미술 명저 62’를 저자는 ‘위대한 미술책’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만, 바로 저자의 이 책이야말로 ‘위대한 책’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포르시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