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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절망하는 의사들, 잉여살해를 돕는 비밀조직…우울한 미래 예측다음 인간 / 이나미 지음 / 시공사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지난 주말에는 소천하신 어머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 바람에 3년 가까이 [북소리]를 연재하면서 처음으로 원고마감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매주 [북소리]를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저의 송구한 마음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네 아들과 며느리, 여섯 손자, 손자며느리와 손자사위 한 명 등, 참석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두 손녀를 제외한 어머니의 자손들이 모두 모여 이승에서의 이별을 슬퍼하였습니다. 뇌경색으로 입원해 다섯 달을 투병하다가 뇌경색 재발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미 예고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재활치료로 많이 회복되는 중이라서 어머니의 죽음은 생각하기 싫은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장례를 치르노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절차도 있습니다만, 어머니께서 생전에 마련하신 가족납골묘에 모실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 장례소식을 먼저 적은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저의 죽음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본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파피루스에도 ‘요즈음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방탕하다’라고 적혀있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제 자신이 어머님 장례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나미 박사의 <다음 인간>을 읽다보니 공연한 걱정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저자는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예견하고 있는데, 저자의 예견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미 변화의 조짐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미래를 제시하면서 현재의 모순에 눈을 감게 만드는 태도나 반대로 극단적인 디스토피아를 제시하면서 결국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식의 가짜 예언자적 태도 모두를 지양한다.(15쪽)”라면서 중립적인 입장임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느낌이 남습니다.

저자는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는 욕망도 인간도 관계도 사라진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는 다섯 가지 유형의 인간이 등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갖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무욕인간은, 극단적인 통제와 방임 속에서 결국 무욕인간 혹은 사이코패스 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이에도 끼지 못하는 사이인간은, 기술의 발달로 국경이 ‘완전히’ 허물어진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아 정체성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오감만족을 삶의 최고의 가치이자 목적으로 꼽는 오감만족 지향형 인간은 너무나 많은 자극에 노출된 나머지 감각기관은 훨씬 더 빨리 지치고 권태를 느낄 것이라고 합니다. 지나치게 자아에 집착하던 것에서 벗어나 초월적 자기실현의 세계를 지향하는 탈자아형 인간은 물질주의, 외모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명상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로봇에 의해 양육되고 로봇과 사랑하고 로봇에게 아픈 몸을 맡기는 R세대는 이들의 사고체계에 부족한 감정적인 면을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전작 <슬픔이 멈추는 시간>을 통해 처음 만난 이나미 박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의학을 전공한 전문의입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뉴욕의 융 연구원에서 분석심리학을 공부하고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종교심리학을 공부하여 석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학문적 배경을 토대로 융의 텔레올로지이론과 적극적 상상기법을 합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해보도록 내담자들을 이끌어 치료하는 법을 세운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심리분석은 내담자의 과거에서 원인을 찾고 그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판단하는데, 모든 것을 심리적 외상으로 환원하는 것은 사람들을 무력감에 빠지게 만드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저자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고착되어 자신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미래에 대한 적극적 상상은 일종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아프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다시 기운을 차려 움직이듯이 우리 한국인들 역시 미래에서 희망을 볼 때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14쪽)”

한편 저자가 신화와 오래된 역사를 인용하여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떤 집단의 원형적 심성이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사람들의 내면에 쌓여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마르스는 절름발이 대장장이 헤파이토스의 아내이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와 혼외관계를 가져 하모니아, 즉 조화의 신을 낳았다는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21세기에는 정형화된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지배하던 과거보다 성 정체성에서 훨씬 자유로운 새로운 형태의 가정이 등장할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를 것이라는 저자의 미래예측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래서 해답은 무엇인데요?’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만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해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일까요?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동네어른들이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커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몰려다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저는 퇴근하면 집으로 향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은 집에 들어와도 각자의 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잠이 들곤 합니다. 선친께서는 대화효(對話孝)를 강조하곤 하셨습니다만, 대학에 다니던 어느 해인가 형제들은 집에 없고 부모님 두 분만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 모습을 보고서 시골집에 자주 내려가기로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녁에는 어머님과 소주잔을 나누면서, 다음날 아침에는 아버님과 바둑을 두면서 서울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곤 했습니다. 물론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도 빠트리지 않아서 서울로 올라올 때는 주머니가 두둑해지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저처럼 스스로 느끼고 깨닫기를 기다리면 될까요?

아이들이 성년이 되었습니다만, 아직은 짝을 찾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가정을 꾸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아내를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혼자 사는 남자와 여자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각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저자의 예상을 읽다보니 저의 생각이 단순한 걱정을 넘어 심각한 우려 수준으로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도시 공동체는 기존의 핵가족 중심의 폐쇄적인 주거 형태가 아니라, 혼자 사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노인이 사는 집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젊은이가 동거하되 부엌은 따로 쓰는 등 사생활은 보장되지만 응급한 상황일 때는 언제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태입니다. 사실 가족도 불편해서 관계를 만들지 않은 사람들이 피도 섞이지 않은 타인과 공동체를 만들어 부딪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심지어는 다부다처제도 등장할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미 인류의 역사에서 검증되어 사라진 제도로 회귀할 수 있다는 논리적 타당성이 다소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는 상대방에게 애착을 가지고 헌신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요즘 확산되고 있는 ‘아이스 버킷’ 릴레이를 보듯이 아직도 세상은 살만한 구석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서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낙관주의적이라서 일까요?

의학의 발달에 따른 인간소외를 다루면서 의사인 저자가 한국이 세계의학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 예측을 내놓고 있는 것은 지나치게 팔이 안으로 굽은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의료서비스의 불평등한 분배로 한국의료의 질이 낮아질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커다란 불안요인이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한국의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의료비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는 의료소비자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의료평등주의가 결국은 의료의 질을 하향평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을까요?

제사문화에 대한 저자의 언급은 상중에 있는 필자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기제사에서 가족들 사이에 분란이 있었다거나 큰 재산을 물려주고도 제사 같은 귀찮은 일은 만들지 않은 부모를 세련되고 여유 있다고 표현한 것은 저자가 제사의 의미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부모제사를 잘 모셔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복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제사란 돌아가신 분의 자손들이 모여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고, 그분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공유하면서 가족공동체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양보와 역할분담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관계가 공고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슬픔이 멈추는 시간>에서 종교에 대한 저자의 열린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만, 이 책에서도 저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원불교, 힌두교, 기독교와 뉴에이지운동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종교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유라시아대륙의 동쪽 끝 작은 반도에 있는 지정학적 특성상 우리나라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여 알맞게 조화시키는 용광로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우리사회의 규범적 전통을 지켜온 유교에는 곁자리조차 내주지 않은 이유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 공동체 운동을 제시하면서 가정이라는 전통적 사회단위를 깨트려야 할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무너져가는 가정을 보완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하는 길은 없을까요?

저자가 원시기독교나 불교 공동체 사회와 비슷한 모습의 대안공동체가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비교적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주거비용 및 기타 부대비용을 줄이고 여러 가지 문화생활을 즐기자는 취지로 만들어질 것이다. (…) 대부분의 가정이 해체된 뒤 비슷한 가치관, 종교관,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종의 가정이자 종교 집단을 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214쪽)”라는 저자의 생각에 문제는 없을까요? 저자 역시 이들 집단에서 갈등은 없지 않겠지만 가족과 달리 언제나 탈퇴 가능하다는 점 특별한 공동체 활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족들도 피해갈 수 없는 갈등요소들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탈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을 구성하고 있는 ‘새로운 죽음의 방식’도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고독사가 사회적 화두가 된지 오래입니다만 자살클럽이 늘어나고, 심지어는 잉여살해를 돕는 비밀조직이 등장할 것이라는 저자의 예측이 차라리 틀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존엄하게 늙고 존엄하게 죽는 것이 많은 사람의 화두가 된지 오래이며, 가까운 미래에는 대책 없이 늘어나는 의료비에 대한 압력 때문에 선별적으로 안락사가 합법화 될 것(225쪽)”이라는 저자의 예측 역시 틀릴 것 같습니다. 이유는 ‘선별적’에 있습니다. 자신이 그 선별되는 그룹에 드는 것을 용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어머님 장례식 때 ‘부모나 형제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점점 늘어간다.(232쪽)’라는 저자의 예견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힘든 현재를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 단순히 화를 누르거나 자학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내 안의 잠재적인 힘을 찾아내는 것(234쪽)’이기 때문에 미래를 그려보는 일 역시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과 가치가 미래에는 어떻게 기능할지 상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저자의 마무리 말씀을 통해서 <다음 인간>에 펼쳐놓은 저자가 예견하는 미래의 상황들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역설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자의적 해석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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