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안 브리핑]

▲ WHO가 제작한 에볼라 확산 사태 관련 동영상 화면 캡쳐

[라포르시안]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창궐하자 필사적으로 감염자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있던 세계보건기구(WHO)가 새로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것은 1976년 에볼라가 처음 보고된 후 시도됐던 방법으로, 에볼라출혈열에서 회복한 사람들의 혈청(회복기혈청)을 채취해 환자들에게 투여함으로써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방법이다.

WHO는 Science에 보낸 서한에서 "회복기혈청(convalescent serum)은 우리의 선택목록에서 매우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전(중국에서 SARS가 창궐하던 때)에도 사용된 바 있다. 회복기혈청 사용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어 그와 관련된 기준·규범·요구사항 등에 관한 자료들이 많이 누적되어 있다"고 밝혔다.

현재 회복기혈청을 환자들에게 투여한다는 계획이 공식적으로 잡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WHO는 "조만간 회복기혈청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할 예정이며, 현재 에볼라 창궐지역의 보건당국자들과 함께 혈액은행의 강화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WHO의 이 같은 움직임은 과학자들이 `과거에 사용됐던 회복기혈청의 효과`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툴레인 대학교의 대니얼 바우시 교수(에볼라 전문가)는 "회복기혈청의 효과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우리는 에볼라의 전파를 저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느낀다"고 말했다.

8월 14일 현재 에볼라 감염자 수는 2,127명, 사망자는 1,145명으로 집계됐지만 이러한 수치는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WHO의 생각이다. 작금의 에볼라 사태는 사상 최대 규모이며, WHO는 유례없는 사망자 수를 감안하여 미승인 실험약의 사용을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8월 13일 WHO 윤리위원회는 "특정 상황에서 지맵과 같은 미승인약을 사용하는 것은 윤리적"이라고 결정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적응증 목록에 에볼라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 기존의 승인약물을 에볼라 환자들에게 전용(轉用)하는 방법도 제안하고 있다. 또한 나이지리아 정부는 논란 많은 나노은 치료법의 사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우시 교수가 생각하는 회복기혈청의 장점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수혈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므로 FDA나 EMA(유럽 식약청)와 같은 보건당국의 승인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둘째, 서아프리카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에볼라에서 회복됐으므로, 회복기혈청을 구하기가 쉬울 것이다.

사실 회복기혈청은 이번 에볼라 창궐사태의 와중에서 이미 사용된 바 있다. 예컨대 미국으로 이송되어 지맵을 투여받았던 켄트 브랜틀리의 경우, 그가 치료를 맡았던 14세 소년의 혈청을 수혈받은 적이 있는데, 그 소년은 에볼라에 감염됐다가 회복한 경력이 있다.

회복기혈청의 사용을 주장하는 논거는 "질병에서 회복한 환자들은 항체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므로, 그들의 피를 수혈받으면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그러나 (현재 검토되고 있는)다른 치료법들과 마찬가지로 회복기혈청의 효능은 검증되지 않았다.

회복기혈청은 과거에 SARS나 라사열(Lassa fever: 에볼라와 유사한 바이러스성 출혈열)이 창궐할 때 사용됐던 적이 있다.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의 교수로 WHO의 감염질환 팀장을 역임했던 데이비드 헤이먼 박사(역학)에 의하면 1976년에 회복기혈청을 사용했던 경험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한다. 그는 당시 콩고에 2개월 반 동안 머물며 생존자들로부터 매주 1단위의 혈청을 수집했는데 혈청을 사용하기도 전에 에볼라 창궐사태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얼마 후 기니어피그를 옮기다 실수로 에볼라에 감염된 영국의 연구자가 회복기혈청을 투여받고 완쾌됐다고 한다. 헤이먼 박사는 그때 사용하지 않은 회복기혈청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미 CDC에 보관했지만, 그 후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회복기혈청은 1995년 콩고 키크위트에서 에볼라가 발생했을 때도 사용된 적이 있다. 당시 키크위트 종합병원의 의사들은 5명의 생존자에게서 기증받은 혈청을 8명의 환자에게 투여했는데, 그 중 7명의 환자가 완쾌됐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분석해 본 결과, 환자들은 혈청을 투여받기 전에 이미 완쾌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2007년 발표된 히말라야털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회복기혈청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만일 회복기혈청을 사용할 경우 사전에 동물(비인간 영장류)실험이나 배양된 인간세포를 이용한 실험실연구를 통해 회복기혈청의 효능을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지만 WHO나 FDA는 아직 공식적인 언급이 없는 상태다.

회복기혈청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첫째, 에볼라 환자들이 HIV나 C형간염 등 다른 질병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아프리카인들은 혈액을 매우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에 헌혈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WHO는 8월 15일 발표한 성명에서 "미승인 약물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고 경고하며 "회복기혈청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아 보건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미승인 치료법에 초점을 맞출 경우, `정말로 필요한 것`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스티븐 라일리 교수(역학)는 "우리가 서아프리카에 보내야 할 것은 약물이 아니라 표준 공중보건절차(gold-standard public health processes)이며, 그 핵심은 감염자를 격리하고,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것"이라고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스티븐 라일리 교수(역학)는 말했다.<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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