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안 브리핑]

[라포르시안]  임상시험 데이터의 투명성에 관한 요구가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미국 FDA가 "연구자와 피험자의 비밀을 지켜 줘야 할 때는 언제인가?"라는 의문을 공론화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일단 신약승인을 정당화하는 연구를 밀어붙인 다음, 신약이 출시된 후에 안전성을 모니터링하는 제약사들의 관행을 고려할 때, 초기 데이터를 공개할 경우 최종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 FDA의 논리다.

이에 대해 영국 옥스포드에 위치한 '제임스 린드 이니셔티브'(James Lind Initiative, 임상시험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그룹)의 코디네이터인 이언 찰머스는 "FDA의 문제제기는 임상시험과 관련된 난제를 해결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는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는 8월 11일, FDA는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서 공청회를 열고 "임상시험의 예비결과를 비밀에 부쳐야 하는 상황은 언제인가?"라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의 현행법상 FDA는 신약승인과 관련된 데이터 요약본을 공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FDA는 이 데이터를 안전성위원회(safety committees)에 넘겨 임상시험의 계속 여부를 결정할 뿐 일반 국민들에게 공개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데이터들은 확정적인 것이 아닐 뿐더러, 어느 한편으로 치우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데이터를 공표할 경우 "임상시험 참가자들이 지레 겁을 먹거나 향후 연구자들로 하여금 특정 결과를 예단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FDA의 입장이다.

'임상시험 데이터의 비밀유지' 문제는 오랫동안 과학자들과 윤리학자들 사이에서 쟁점으로 부각되어 왔으며, 중간 데이터(interim data)의 비공개를 선호하는 FDA 정책은 일부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아 왔다.

퍼블릭시티즌(Public Citizen, 의료소비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비영리 연구단체)의 마이클 캐럼 회장은 "FDA는 `임상시험 데이터 공개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참가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위반한 것이 된다"고 말했다.

캐럼 회장은 "FDA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제약사들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임상시험 참가자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을 듣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 신약승인 과정이 바뀌어 승인전 연구와 승인후 연구 간의 연계성이 강화되면서 임상시험 데이터의 비밀유지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과거에는 제약사들이 FDA에 중간데이터를 제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07년 "유명한 당뇨병 치료제가 심근경색, 뇌졸중 등 심혈관질환 위험을 증가시킴으로써 사망률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그 결과, FDA는 일부 당뇨병 치료제에 대해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안전성 연구`를 실시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FDA의 요구사항은 ▲제약사들이 신약의 판매 승인을 받으려면 신약의 심혈관질환 유발위험이 대조약의 80% 미만이어야 한다 ▲그리고 승인후 연구(post-approval study)에서 밝혀진 신약의 위험 증가분이 기존 수치(신약승인 신청서에 기재된 수치)의 30%를 초과하지 말 것 등이었다.

이에 따라 최근 제약사들은 FDA를 향해 "두 가지 연구(승인전 연구와 승인후 연구)를 하나의 대규모 임상시험으로 통합하고, 중간 데이터는 첫 번째 관문통과 수단으로만 이용해 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2011년 FDA의 승인 심사를 받았던 일본 다케다제약의 당뇨병 치료제 '알로그립틴'이다.

다케다제약의 연구진은 81건의 심혈관질환 사례가 발생한 후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를 위한 중간분석을 실시했다. 분석 결과 알로그립틴은 심혈관질환 위험을 크게 증가시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분석을 지휘한 코네티컷 의대의 윌리엄 화이트 박사(예방심장학 전문가)에 의하면 이 분석결과는 `알로그립틴이 실제로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한다.

2013년 1월 알로그립틴을 승인하면서 FDA는 임상시험 결과를 공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임상시험 결과, 알로그립틴은 승인에 충분한 안전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짤막하게 언급했을 뿐이다. 2013년 3월, FDA 산하 약물평가 및 연구센터(CDER)의 내분비약물 담당 팀장인 메리 팍스는 "장기 안전성 데이터를 시의적절하게 수집하기 위해, 중간검사 결과를 공표하지 않은 것은 불가피했다"고 발표했다.

화이트 박사는 한술 더 떠서 "나는 임상시험이 종료될 때까지 중간 데이터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요컨대, 비밀유지는 임상시험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핵심조건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연구진에게 중간결과를 보여줄 경우 편견이 생겨 향후 연구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발표된 최종 연구결과에서, 알로그립틴은 심혈관질환 위험을 유의하게 증가시키지 않는 것으로 판가름났다.

중간결과 공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주장 중 하나는 `중간결과를 알 경우, 환자들이 중도에 임상시험을 포기하여 임상시험이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영국 워윅 대학교의 리처드 릴포드 교수(공중보건학)는 "중간결과를 공표하면 환자들로 하여금 임상시험을 포기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환자들의 선택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릴포드 교수는 "임상시험 설계자들은 너무 비밀을 고집하는 나머지, 환자들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온갖 기술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연구자의 의무다"라고 주장했다.

임상시험 위원회에 30번 이상 참가한 경력이 있는 캐나다 알버타 대학교의 폴 암스트롱 박사(심장학)는 "임상시험 위원회의 기본 원칙은 '중간검사 결과를 비밀에 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간혹 공개의 이익이 위험을 상회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위원회는 공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암스트롱 박사는 "우리는 늘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다음 환자에게 다가가 임상시험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면서, 환자가 알아야 할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고. 문제해결의 핵심은 바로 이런 떳떳한 마음가짐이다"이라고 강조했다.<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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