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과학자·제약업계 "상황 더 악화되기 전 미승인 약물 제공해야"

"안전성 검증 안된 약물 제공은 비윤리적" 우려 만만치 않아

▲ 기니 게체두의 에볼라 격리 병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사진 제공 : 국경없는의사회

[라포르시안]  만일 당신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거나 노출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의 스크립스 연구소(TSRI,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영리 민간 생의학연구소)의 엑스선 결정학 연구자인 에리카 올먼 사파이어는 그 대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강력한 단클론항체 혼합물(mix of monoclonal antibodies)을 개발하고 있는데, 그 중 일부는 이미 동물실험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에볼라출혈열의 엄청난 사망률을 잘 알고 있기에 사파이어 박사는 의료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괜찮아요. 빨리 에볼라 백신을 투여해 주세요, 안전성 따위는 신경쓰지 말고요."

많은 에볼라 연구자들의 마음도 사파이어와 똑같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사상 최대의 에볼라 출혈열 발생으로 사망자가 600명을 넘어서자 그들은 시에라리온, 기니, 라이베리아 국민들이 에볼라 백신을 사용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현재 많은 항에볼라 약물과 백신들이 개발되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동물실험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안전성 테스트가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사태가 악화되자, 과학자를 비롯해 정부 관계자, 제약사 경영진들은 "소위 동정적 사용(compassionate use) 차원에서 미승인 약물을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미 국립 알러지 감염질환연구소(NIAID)의 출혈열 전문가인 리사 헨슬리 박사는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썬 더 낫다. 나는 관련 회의가 개최될 때마다 이렇게 주장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부 아프리카 현장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단체들은 "선진국의 과학자 및 보건단체들을 신뢰하지 않는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효능이 인정되지 않은 미승인 약물 및 백신을 사용할 수 없다"며 손사레를 치고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의 공중보건 전문가인 아르만트 슈프레허는 "일부 아프리카 주민들은 우리에게도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우리가 고의로 에볼라 바이러스를 퍼뜨린 다음 사망자의 내장을 채취해 가는 등 끔찍한 짓을 저지른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승인 약물을 그들에게 제공할 경 되레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WHO의 한 대표자는 "현재 백신을 사용하는 것은 윤리적이지도, 실현가능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서부 아프리카에서는 지난 3월 처음 에볼라출혈열이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총 1,048명이 감염되어 632명이 사망했지만(치사율 60%), 그 위세는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제는 주요 도시로까지 진출할 기세다. 있다.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과거 에볼라 출혈열이 발생했던) 중앙아프리카 주민들보다 이동이 잦은 편이어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한다. 이 경우 환자를 엄격히 격리하고,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을 추적·감시하며, 사망자를 신속히 매장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활습관(높은 이동성) 때문에 이 같은 조치가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에볼라출혈열은 극히 드문 질병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조치를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 알려진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사례는 지난 30여 년 동안 10여 개 아프리카 국가들을 통틀어 총 2,400건 미만이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가난하고 약물 및 백신 시장의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사실도 대응조치 지연에 한 몫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에볼라 바이러스에는 5개 종(種)이 있는데, 5개 종은 제각기 다른 대응책을 필요로 한다.

▲ 사진 제공 : 국경없는의사회

이번에 서부 아프리카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은 그중에서 가장 흔한 에볼라-자이르형(Ebola-Zaire)이다. 지금까지 수행된 에볼라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이는 `세균전과 바이오테러 위험에 대비한다`는 명분 하에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기존의 지원은 제품 하나를 출시하는 데도 부족한 금액이었다. 예컨대 NIAID의 하인츠 펠드먼 박사가 개발한 백신은 가축을 감염시키는 VSV(vesicular stomatitis virus)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이러스의 유전자 하나를 에볼라 바이러스의 표면 당단백질 유전자로 바뀌치기한 것이다. 이 백신은 에볼라-자이르형을 예방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에게 30분 후에 투여해 본 결과, 8마리 원숭이 중 4마리의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펠드먼의 전 직장인 캐나다 공중보건청(PHAC)은 아직 임상 1상을 진행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미국 뉴욕주 소재 프로펙터스 바이오사이언스(Profectus BioSciences)사는 임상시험을 실시하기 이전에 GMP 시설부터 갖춰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비용 200만 달러가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후보약물의 경우 좀 더 많은 자금지원을 받았지만, 그 역시 난관에 봉착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RNAi(RNA 간섭)를 기반으로 한 약품으로, 미 육군의 주관 하에 캐나다 버나비 소재 테크미라 파마슈티컬스(Tekmira Pharmaceuticals)라는 업체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이 회사는 미 국방부로부터 1억 4,000만 달러 상당의 연구비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지난 7월 3일 "미 FDA가 `좀 더 많은 데이터를 보충하며, 환자의 안전을 보호할 프로토콜을 강화하라`며 임상 1상을 중단시켰다"고 발표했다. 테크미라 측에 의하면 올해 말 쯤에나 FDA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한다.

단클론항체의 경우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올먼은 NIAID로부터 2,800만 달러를 지원받아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7개국에 있는 25개 연구실들이 최적의 항체조합을 탄생시키기 위해 항체들을 서로 교환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임상 1상에 진출한 것은 하나도 없다.

미 육군 산하 감염질환 연구소가 개발하고 있는 뉴클레오사이드 유사체(nucleoside analog)는 효과가 강력하고 가격도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개발 실무를 담당한 사렙타 세라퓨틱스(Sarepta Therapeutics: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소재)는 2012년 미 국방부가 자금지원을 중단한 이후 개발활동을 중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임상시험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의 희생자들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항에볼라 약품이 `동정적 사용`의 차원에서 투여됐던 사례가 단 한 건 있다. 2009년 독일의 한 과학자가 에볼라 바이러스를 다루던 중 손가락을 주삿바늘로 찔린 적이 있는데, 사건 발생 직후 48시간 만에 캐나다 위니펙에서 독일 함부르크까지 VSV 백신이 공수되어, 과학자의 목숨을 살려냈다. (그러나 그 백신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독일 과학자의 사례를 아프리카인들에게도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캐나다 공중보건청(PHAC)의 게리 코빈저 박사(바이러스학)는 "독일 과학자의 사례는 응급실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의료진이 지근거리에서 환자를 모니터링하고 필요 시 적당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예외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수백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공지하고 전동의(informed consent)를 받아내는 것도 매우 어려운 과제다. 감염이 위중할 경우 어떠한 약물이나 백신도 효과가 없는데, 이 경우 실망한 환자의 가족들에게 `약물이 형편없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러한 교착상태를 바라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미 국립 알러지 감염질환연구소(NIAID)의 하인츠 펠드먼 박사는 "현 상태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향후 대재앙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대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현명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원문 바로가기>


[알립니다] 이 기사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운영하는 미래기술정보 포털 미리안(http://mirian.kisti.re.kr)에 게재된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본지는 KISTI와 미리안 홈페이지 내 GTB(Global Trends Briefing 글로벌동향브리핑) 컨텐츠 이용에 관한 계약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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