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우리나라만의 의료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안타까워해오다가, 다큐멘터리 전문가가 아님에도 용기를 내어 <하얀 정글>을 제작했다. 82분짜리 장편이 나오기까지 의사로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을 경험했고, 한 사람으로서 삶을 더 옹골지게 채워나갈 수 있는 축복과 기회를 얻었다. 물론, 마음고생과 역경들도 그에 속한다. 여기 라포르시안의 신선한 기획으로 대략 1년의 제작 과정 중 몇 가지 경험담을 뽑아 생각들을 정리해보게 되었다. 이 글이 독자 분들에게 흥미로운 간접경험과 함께, 조금 다르게, 다시 한 번 여러 사안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송윤희(영화감독, 산업의학 전문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영화란 무엇인가? 만큼 손발이 오글거리면서 동시에 난해한 이 질문에 꼴랑 독립 다큐 하나 만들어 놓고 답하기 다소 민망하다. 하지만 이 다큐라는 장르를 위해 지난 1년의 젊은(?) 시절을 쏟은 사람의 정리된 생각도 일독할 가치는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정의 내려 보자.

다큐는 모순이다. 다큐는 우리 사는 세상의 모순을, 그것도 가장 극단적이고 격렬한 모순을 단골 소재로 삼고 있다. 모순의 사전적 뜻은 “말이나 행동, 논리 또는 사실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이다. 그 어원은 다들 알다시피, 어떤 방패라도 꿰뚫을 수 있는 창(모)과 어떤 창이나 칼로도 꿰뚫지 못하는 방패(순)의 공존이다. 경제는 발전해야하는데 생태는 보존해야하고, (주로) 남성들의 성욕은 풀어져야 하는데, (주로) 여성들의 인권은 지켜야하고, 육식으로 몸을 키우고 식욕을 해소해야 하는데, 동물들의 권리도 확보해야하는 것 등등. 최상급의 칼도 필요하고 최상급의 방패도 있어야 하지만, 둘이 공존하는 것은 힘들거나 불가능한 것들의 조합, 그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해보았다. 어찌 보면 세상 자체가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그렇다. 삶 역시 모순이다. 그래서 갈등이고 역경이고 희로애락이 엇갈리며 동시에 모든 형태의 이야기(영화, 연속극, 소설)의 소재가 된다. 당연한 말이다. 갈등이 있어야 드라마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나 연속극, 특히 TV 연속극의 소재는 다큐와 사뭇 다른 범위인 것은 확실하다. TV 연속극은 모순이라 부르기에는 미약한 갈등이랄까? 뭐,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제는 지쳐가는 소재, 재벌 2세와 못생긴척하는 가난뱅이 미인의 사랑 쟁탈전은 말도 안 되는 판타지인 걸 알면서도 우리 속내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달콤함이 있지 않나. 대중적인 연속극과 관객 300만 신화 <워낭 소리>를 빼고는 대중성과 거리가 먼 다큐는, 분명 소재 자체의 혐오감이나 극단성의 차이가 존재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다큐는 대부분의 이들이 외면하고픈 것,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문제이지만, 굳이 죄책감과 씁쓸한 뒷맛을 위해 돈까지 내면서 구경하고 싶지는 않은 (남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하나 더 덧붙여 보자. 다큐 작업 자체도 모순이다. 무슨 말이냐고? 애써 소외된 장소에 소외된 사람들을 촬영해간 결과물로, 그 소외와 고통이 줄어들길 바라면서도, 막상 감독은 자신의 카메라에 가장 극한 고통이 담기길 소망한다는 것이다. 괴롭지만 예를 들어 보자. 철거 구역 현장에서 철거민들의 투쟁을 담는다 치자. 용역 깡패가 출동했다, 카메라에 손이 간다. 철거민이 폭행당해 피를 흘렸다, 분노가 일지만, 장면을 포착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클로즈업한다. 철거민이 병원에 실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엄청나게 분노하면서도, 덜덜 떠는 카메라를 잡고, 애써 무의식에서 솟아나오는 대박이라는 생각을 지우려 한다. 필자도 그랬고, 수많은 다큐 제작자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것이 작업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대의를 핑계 삼아 남의 고통을 써먹는다는 자괴감 말이다.다큐는 세상에 산재된 모순들은 다룬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하나의 큰 모순으로 귀결된다. 소유냐, 공존이냐? 서로 관련 없는 물리적 인간 집단의 욕망이냐, 아니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생명체들의 공생이냐? 지나치게 전자로 치우쳐 있는 세상에서 후자로 선회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대부분이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일말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편으로 다큐가 일조할 수 있다면, 그 모순된 근본에도 불구하고, 다큐 작업은 이어져야 한다. 초보자답게 마무리져본다. 다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송윤희는?

2001년 독립영화워크숍 34기 수료

2004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2008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

2009년 산업의학과 전문의

2011년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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