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용진 교수(서울대의대 의료정책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국감시즌을 맞아 약사 편들기에 노골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슈는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문제다. 국민들 대부분이 해열제나 종합감기약 등 일부 일반의약품을 슈퍼에서 판매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음에도 민주당 의원들이 약사회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주승용 의원은 ‘슈퍼에서 의약품을 파는 것은 무자격자가 파는 것, 약화사고의 책임소재 불분명’을 이유로 반대했고 양승조 의원은 ‘일반의약품 부작용이 지난 4년간 10배 증가’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이낙연 의원 또한 심평원 국감에서 ‘슈퍼에서는 DUR을 할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밝혔다. 민주당이 슈퍼 판매를 허용하자는 현 정부의 약사법 개정안을 발목 잡기 위한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명분은 ‘국민들의 편의보다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제목만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들 주장은 핵심문제를 비껴가고 있다. 핵심은 슈퍼 판매의 문제점이 아니라 약국에서만 팔 때와 몇 개 일반의약품을 제한적으로 슈퍼에서 팔 때의 비교다. 슈퍼에서 팔 때는 구입 연령제한, 구매 수량제한, 판매자에 대한 교육 등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약국에만 팔 때 의약품 부작용이 줄어들고 국민의 안전이 보장될까? 그렇지 않다.

 

첫째,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은 약사가 아닌 무자격자들이 팔아온 지 오래다. 국민들이 모두 알고 있다. 약화사고는 지금과 별로 달라질게 없다. 현재 약국에서만 팔지만 일반의약품은 국민이 선택하는 약이기 때문이다. 둘째, 의약품 부작용의 신고건수가 늘어난 이유는 부작용신고의무화 정책 때문이다. 건수는 늘었지만 부작용 자체가 늘어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의약품 부작용은 발생 건수보다 심각성이 중요한데 대부분의 심각한 부작용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에게서도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것들이다. 더군다나 국민들은 부작용이 발생하면 병의원을 찾기 때문에 약사들은 부작용 사례를 접하기 쉽지 않다. 이는 이번 국감 때 식약청이 발표한 부작용 신고 건수 중 약국에서 신고한 것이 전체의 0.01%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약국은 DUR이 가능한데 슈퍼는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슈퍼에서도 DUR을 하게 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약국도 DUR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약국 DUR도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마당에 슈퍼 DUR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DUR 논쟁의 핵심은 안전이 아니라 프라이버시라는 점이다. DUR을 하려면 약을 구입하는 국민들이 약국에서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밝혀야 하는데 국민들이 약국에서 감기약 하나 사면서 주민등록번호를 말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선진국도 이런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또한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은 주장 자체의 문제 뿐 아니라 의료개혁에 배치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의료개혁은 의약분업을 중심으로 한 의료시장에서 투명성 확보가 단연 주요과제였다. 그와 동시에 불법이었지만(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 어쩔 수 없이 허용되어 왔던 약국진료를 폐지하는 것, 리베이트를 양성화하고 약가거품을 제거하는 것이 세부 내용으로 추진되어왔다. 그러나 사실상 이런 정책들은 병의원을 표적으로 해왔지 약국을 표적으로 하진 않았다. 보건의료 정책에서 의사가 가장 핵심적인 인력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약국에도 리베이트 있었고 여전히 약국 진료는 남아 있다. 이는 약국에서만 약을 판매하는 약국의 판매 독점권, 일반의약품을 국민이 선택하지 못하도록 하고 약사가 임의대로 선택해주는 선택권 독점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런 관점에서 민주당의원들은 슈퍼 판매가 약국거래의 투명성을 높여 약국리베이트 척결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과 나아가 약사들의 일반의약품 선택 독점권을 해소시켜 약국진료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그 간 추진해온 의료개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까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최근 보건의료분야 개혁에서 거스를 수 없는 메가트렌드는 ‘소비자 중심’이다. 보건의료분야에서 소비자 중심이란 ‘환자중심’을 의미한다. 환자 중심이란 환자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그것을 위한 설명의 의무를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안락사 논쟁이 커지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안락사 논쟁의 핵심은 인간이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는가에 있다. 여기서 의사와 같은 전문가는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을 뿐 모든 선택은 환자의 몫이다. 죽고 사는 문제까지 환자 스스로 선택할 것이냐를 논쟁하는 현 시점에서 해열제와 종합감기약을 약사만 팔아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임에 분명하다. 물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판매대상 일반의약품의 범위를 보수적이고 엄격하게 정하는 것, 구입 가능 연령을 제한하는 것, 1인당 판매량을 제한하는 것, 판매업자에게 일정시간 교육을 받게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더욱 필요한 것은 국민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정확하고 충분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의약품 부작용과 복용법을 잘 알 수 있도록 광고기준과 포장지 표시방법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런 해결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의원들이 슈퍼 판매를 반대하는 것은 안전을 약사만이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이는 환자중심의 의료개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주당 의원들의 슈퍼 판매 반대는 의료개혁이란 명분이나 구체적인 정책 수단으로서 문제점 어디에서도 반대의 타당한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반대하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기 때문일까? 얼마 전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명동의안에 찬성한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다는 이유로 반대할 리는 없을 것이다. 반면 슈퍼 판매를 둘러 싼 약사회의 국회 로비의혹이 언론에 등장하고 인터넷 포털에는 ‘로비왕 약사협회’라는 글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이 약사회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로비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하는 대목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재선을 목표로 하는 국회의원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이익집단의 요구를 외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이나 박원순의 약진이 보여주는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은 바로 이런 현상들의 연속에서 생겼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민주당은 슈퍼 판매 반대가 아닌 스스로 자임해왔던 의료개혁을 위한 의약품 정책의 개혁을 위해 나서야 한다. 의약품 정책 개혁의 핵심은 약국 특혜를 청산하는 것이다. 첫째, 약국의 판매독점권을 해소하고 유통투명성을 확보해야한다. 모든 약은 약국에서만 팔수 있도록 판매독점권을 보장받아왔다. 그러나 편의점에서도 시행하는 바코드거래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편의점보다도 유통투명성이 확보되어 있지 않다. 이는 11년 전 의약분업 시행당시 탈세와 리베이트의 근거가 되었던 ‘무자료거래’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상비약 슈퍼 판매와 바코드 거래 의무화가 필요하다. 둘째, 환자의 동의 없이 약사가 마음대로 약을 바꿔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행 약사법에는 의사가 처방한 약의 경우 성분과 효능이 같으면 약사가 환자의 동의 없이 약을 바꿔 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환자에게 고지만 하면 된다. 약국 수익이 많은 약으로 약을 바꿔줄 수 있도록 합법화 되어 있는 셈이다.

 

셋째, 비영리법인도 약국의 개설할 수 있어야 한다. 병의원은 비영리법인이 개설할 수 있으나 약국은 약사만이 개설할 수 있다. 사회복지법인도 공익법인도 약국개설은 불가능하다. 현재 공익성이 담보되어 있는 약국은 없다. 모두가 개인사업자일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2002년 위헌판결이 있었음에도 국회에서 논의조차 안하고 있다. 넷째, 약국 진열장을 개방하고 국민들에게 일반의약품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반의약품은 가격표시 자율제를 시행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가격차이가 6배 이상 됨에도 불구하고 약국에 가면 의약품 가격을 알 수 없다. 약사가 골라주는 약을 먹어야 한다. 국민들의 선택권이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복약지도료는 폐지되어야 한다. 의약분업 시행당시 약사들의 진료행위를 없애는 대신 그 행태와 수익을 보전해 주기 위해 만든 것이 복약지도와 복약지도료이다. 그러다보니 사실 약국에서 복약지도라는 서비스는 실체가 없다. 병원에서 들은 설명을 한 번 더 30초쯤 듣는 게 전부다. 약국의 수익보전의 측면에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의약분업 이전에 벌었던 약국의 수입은 당시 허용되었던 진료 때문에 발생했던 것이다. 진료는 약사들의 전문영역이 아니니 그 전에 벌었던 것조차가 특혜였음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나서서 그 수입을 국민들의 보험료로 보전해 준 셈이다. 정책변화를 유도해야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을 인정한다하더라도 그 이후에도 11년을 수익보장을 해 주었으니 이제는 정상화시킬 때도 되었다. 그 돈이 모두 국민들의 보험료이기 때문이다.

지금 보건복지부는 지난 20여년간 약계와의 은밀한 거래(?)를 끊고 약가인하와 슈퍼 판매에 나섰다. 정부도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사만 반대하는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가 민주당 몇몇 국회의원들 때문에 좌초될 상황이다. 약사회로부터 같은 압력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은 정부입법이기 때문에 무조건 반대하기 힘든 부담이 있다. 그런 한나라당에게 민주당이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약사회의 로비 때문이라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민주당의 공당으로서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권용진은?

전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대한의사협회 사회참여이사 겸 대변인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의대 의료정책실 연구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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