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지난 6월 27일 열린 건강보험공단의 임시이사회에는 올해부터 오는 2018년까지 건강보험 재정의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안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의결안건으로 상정된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안은 향후 5년간 건강보험의 수입과 지출 추계를 바탕으로 재정수지를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다. 임시이사회에서 의결될 재정운용계획의 골자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출은 더욱 늘어나지만 있는 돈으로 최대한 돌려막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올해를 기점으로 건강보험 재정운용계획에서 가장 큰 골치거리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 따라 발생하는 재정의 추가 지출 부담이다. 건보공단이 에 따르면 올해 건강보험 재정 수입은 2조2,224억원 당기수지 흑자가 예상되지만 내년부터 선택진료 등의 보장성 강화로 지출 부담이 늘어 당기 흑자 규모가 2015년 1,321억원으로 급감하고, 이듬해부터 당기 적자로 돌아선다. 2016년에는 1조4,697억원, 2017년 1조5,684억원, 2018년 1조9,506억원으로 당기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계됐다. 건강보험 재정의 누적수지는 올해 약 11조원에서 내년부터 급감하기 시작해 오는 2018년에는 5조원대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이미 올 하반기부터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에 대한 보장성 강화가 실시된다. 오는 8월부터 선택진료 산정비율이 축소되고, 9월부터는 4~5인실에도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된다. 그만큼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주요 비급여 수입이 줄어드는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제도개편에 따른 의료계 손실이 상급병실료 축소로 2,030억, 선택진료 축소로 5,430억 등 모두 7,46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보전해 주기 위해서 기본입원료 수가 인상, 특수병상 수가 현실화, 고도의 수술과 처치에 대한 수가 인상, 중증환자 대상 의료서비스 수가 조정 등이 이뤄진다.

수가 개편에 따른 건강보험 추가 소요재정은 약 6,55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복지부는 계산했다. 여기에 환자 본인부담 증가가 연간 약 1,39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선택진료와 상급병실료 수가개편에 따른 병실의 손실 규모와 이를 보전해주는 차원에서 실시되는 수가인상 및 조정에 따른 규모가 얼추 비슷하다.

공단은 '2014~2018 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하면서 가장 중요한 변수인 의료수가와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각각 연평균 2.20%와 1.35%로 정했다. 수가 인상률보다 건보료 인상률이 더 낮다. 결국 건강보험공단 곳간에 쌓인 돈을 사용하겠다는 거다.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에 따라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보장 성 확대나 비급여 항목의 건강보험 급여 전환 등에 올해에만 1조4,450억원을 추가로 든다. 2015년에는 2조510억원, 2016년 1조8,740억원, 2017년 6,320억원, 2018년 6,320억원 추가 지출이 필요할 것으로 잠정 추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동안 건보료 인상률을 연평균 1.35%로 잡았다. 같은 기간 의료수가 평균 인상률은 2.20%다. 이렇게 되면 향후 5년간 건강보험 수입은 평균 7.4% 늘고, 지출은 평균 9.7% 증가한다. 당연히 적자 운영이다. 

이런 식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운용되면 박근혜정부 임기가 끝나는 2018년 이후에는 건보공단의 곳간이 어떤 상태에 놓일지 불을 보듯 뻔하다. 건보공단은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하면서 오는 2019년 적립률이 5%까지 떨어진 이후의 대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차기 정부에 시한폭탄을 떠넘기는 꼴이다. 이렇게 낮은 누적적립금을 확보한 상태에서 재난적 상황이나 신종플루 대유행 같은 유행성 질환이 발생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이 바닥날 수도 있다.

이 와중에 복지부는 공공병원의 경영개선에도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복지부는 최근 수립한 지방의료원 경영개선 추진계획을 통해 전국 33개 지방의료원에서 시범사업으로 실시되고 있는 신포괄수가에 대한 인센티브를 현행 최대 15%에서 이르면 내년부터 35%로 상향조정할 계획이다. 지방의료원의 경영개선을 위한 지원은 별도 예산을 확보해 추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건강보험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8년 4월부터 차상위계층을 의료급여에서 건강보험으로 전환하면서 추가로 늘어난 재정 부담액이 2013년까지 6년간 총 3조5,481억원에 달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필요하고, 병원들이 적정 의료수가를 통해 안정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건강보험료 수입에만 철저하게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제시된 정책은 대부분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식이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안에서 병원을 쥐어짜 급여비 지출을 절감하고, 다시 그 돈을 다른 명목으로 돌려주는 식이다. 경기악화로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이용이 위축되면서 급여비 지출이 줄고, 그렇고 해서 쌓인 적립금을 보장성 확대에 사용하면서 갖은 생색을 낸다.     

결국은 건강보험 재정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지금까지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지만 가장 확실하고 시급한 것은 건강보험료를 적정부담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료율은 보수월액의 5.99%로 OECD 회원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충분히 인상 여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공약잔치만 벌이고 재정 확보를 위한 건강보험료 적정 인상에는 입을 받았다. 표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정치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건강보험재정 확충 방안으로 보험료 인상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여기에 보험료 부과의 공정성을 높이고,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사후정산제 도입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간 정부가 건강보험에 지원해야 하는 법정지원금 중 미지급액만 8조가 넘는다. 지금처럼 웃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으로는 언제 또 건강보험 재정파탄 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 윗돌도 아랫돌도 아닌 새 돌을 더해서 건강보험 재정 구조를 더 탄탄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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