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단체연합 "3분진료·의사성과급제 등이 부른 사고…원격진료 도입해선 안되는 이유 보여줘"

▲ 노르웨이 호바르 부스트니스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컨베이어벨트 위의 건강(Health Factory)'.

[라포르시안]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4개월간 좌우가 뒤바뀐 엑스레이 필름으로 500명이 훨씬 넘는 환자들을 진단하고, 이 중 100명이 넘는 환자에게 약물처방을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이렇게 황당한 사고가 발생한 원인으로 대형병원의 의료인력 부족과 수익만을 좇기에 급급한 진료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30일 "이대목동병원이 작년 12월 말부터 4월 말까지 578명의 코 엑스레이 필름 영상이 좌우가 바뀐 줄도 모른 채 4개월간 환자 578여명을 진단·처방해온 것은 대형 사고"라며 "게다가 병원은 이런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환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는 의료윤리 측면으로도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병원은 환자안전을 위해 3중, 4중의 안전점검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좌우가 바뀐 엑스레이 필름을 4개월간이나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병원의 안전점검체계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환자를 컨베이어 벨트위에서 돌아가는 물건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이대목동병원의 황당한 사고가 국내 대형병원의 영리화된 진료 형태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봤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번 사고는 한국 대형병원들의 영리화된 진료 형태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무엇보다 환자 치료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행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가 엑스레이 검사 처방을 내리고 방사선과에서는 기계를 돌리듯 엑스레이를 찍고,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엑스레이 필름 판독시 임상적 정보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방사선 필름을 보고 판독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엑스레이필름을 찍고 나서 환자를 재진한 의사들이 4개월이나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엑스레이를 실제 보기나 하면서 후속진료를 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며 "3분진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의사성과급제 로 인한 무리한 환자늘리기 행태가 이번 사건의 원인 중에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고가 정부에서 추진하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가 도입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역설하는 사례라고 지목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번 일은 엑스레이 필름의 전산 전송 과정에서 좌우를 거꾸로 전송한 것이 시발점"이라며 "특히 환자의 증상과 필름을 대조하는 대면진료 시간이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첫번째 조건임을 이번 사고는 역으로 반증하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 문제가 난무하는데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환자 상태를 전송하고 그에 따른 처방을 하는 원격의료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따라서 "복지부는 효과성이 인정되지도 않고 고가의 비용이 드는 원격의료가 아니라 현재 병원 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전자동화시스템의 문제들을 점검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병원 측이 문제를 확인하고도 환자들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의료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대목동병원은 환자의 대부분이 단순 부비동염이었고, 수술이나 시술이 없었기에 문제가 없다며 환자들에 대한 공식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병원의 태도는 매우 부도덕하고 부적절하다. 병원은 이번 사고에 대해 환자들에게 사과하고, 병원 경영 방침을 영리추구가 아니라 환자의 안전과 진료를 위한 것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욱이 이화의료원이 국내 의료기관평가인증보다 훨씬 까다롭다는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의 'JCI 재인증'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황당한 실수가 발생했다는 것에 대해 비난을 제기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대목동병원이 큰 비용을 들여 JCI 병원인증 평가를 자랑하는 홈페이지 홍보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실제 578장의 엑스레이의 좌우도 구별부터 제대로 하는 병원이 되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의료인력을 충원해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점검체계를 완비하고 충분한 진료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수십억원을 사립의료기관 평가인증기관에 뿌리는 돈 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영리화 정책이 어떤 식으로 병원과 의료서비스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증적 사례로 지목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해외환자 유치를 가장 큰 목표로 두고 ‘첨단 국제병원’을 제 2병원으로 짓고 있는 이대목동병원의 이같은 사고는 의료를 돈벌이로 두는 순간 환자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지 보여주고 있다"며 "이번 사고는 의료민영화가 보여줄 직접적인 대형 사고의 작은 표본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의료민영화가 아니라 지금도 횡횡하는 대형병원들의 영리화된 진료행태를 규제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