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정책에 고통받는 환자들…뇌전증학회, 항우울제 사용 제한 철폐 ·중증질환 등록 요구

▲ EBS의 '편견이 키우는 병 - 뇌전증' 관련 영상 캡쳐

[라포르시안]  사회적 편견과 그릇된 인식 때문에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결혼과 출산 등에 장애요인이 되기도 하는 '간질'.지난 2010년 용어를 ‘간질’에서 ‘뇌전증’으로 바꿨지만 보건복지부의 거꾸로 가는 정책으로 인해 뇌전증 환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지적이 최근 열린 대한뇌전증학회(회장 손은익) 국제학술대회에서 제기됐다.

우리나라의 뇌전증 발병률과 유병률은 선진국보다 후진국이 2~3배 높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전 인구의 약 0.5~1%가 뇌전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뇌전증은 생후 1년 이내에 가장 높았다가 급격히 낮아지고, 청소년기와 장년기에 걸쳐 낮은 발생률을 유지하다가 65세 이상의 노년층에서 다시 급격히 증가하는 U자형의 형태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뇌전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며 치료도 가능하지만 뇌전증 환자들은 '불치병, 유전병, 정신질환, 전염병' 등으로 오해를 받으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뇌전증 환자들의 치료 향상과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도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한뇌전증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는 뇌전증 환자들의 항우울제 치료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국제학술대회 대표, 사진)는 “뇌전증 환자들의 25~68%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우울증은 뇌전증 환자들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고 치료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뇌전증 환자를 치료하는 신경과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우울증을 진단하고 조기에 치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60일 이상 항우울제 사용을 제한하는 급여기준으로 인해 환자들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뇌전증 환자의 전문치료시설인 ‘국립 뇌전증센터’의 설립 필요성도 강조했다. 홍 교수는 “뇌전증 환자들의 건강보험 적용 및 장애인 등록기준의 현실화, 난치성 뇌전증의 희귀 난치성질환 등록 등 제도적 개선으로 의료비 절감, 뇌전증 치료를 위한 국가의 조기 개입을 위해 국립 뇌전증센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파킨슨병 환자들은 약값의 10%를 부담하고, 암환자들은 5%를 내고 있지만 뇌전증 환자들은 여러 가지 항경련제를 복용해도 30%를 부담하고 있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향운 이대 목동병원 신경과 교수(홍보위원장)는 “약값을 부담하지 못해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뇌전증 환자들이 허다하다”면서 “3가지 이상의 항경련제를 복용해야 하는 고도의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약값 부담을 10%로 낮춰 줄 것”을 주문했다.

난치성 뇌전증에 대한 조기 수술의 효용성이 밝혀지면서 뇌전증 수술의 중증질환 등록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천기 서울의대 신경외과 교수(총무위원장)는 “높은 진료비, 뇌전증 수술센터의 부족으로 1년에 약 500건 정도의 수술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진료비의 20%를 떠안고 있는 뇌전증 수술을 중증질환으로 등록시켜 입원비의 5%만 부담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장애등급표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손은익 뇌전증학회 회장은 “간질의 명칭을 뇌전증으로 바꾸면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간질연맹에도 건의해 그 가치를 평가받았지만 장애등급표에는 아직까지도 간질 장애로 남아 있다”며 “장애등급표의 개칭을 보건복지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상태이며, 이는 환자들도 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15개국에서 500여명의 해외석학과 국내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뇌전증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는 뇌전증 환자의 진단과 치료의 최신지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난치성 뇌전증에서의 새로운 항경련제의 개발 현황(스티브 정 교수) ▲고주파 뇌신호 분석 진단기법과 난치성 뇌전증에 대한 조기수술의 효용성(정천기 교수·서울대병원) ▲뇌전증 환자에서 흔히 동반되는 우울불안증의 치료(안드레스 캐너 교수·마이애미대학병원) 등이 발표됐다.

손은익 회장은 “이번 학술대회는 대한뇌전증학회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 오는 2019년 열리는 세계뇌전증학회 국내 유치에 청신호를 밝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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