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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천천히, 그리고 서로 함께하는 세상모모 / 미하엘 엔데 지음 / 한미희 옮김 / 비룡소 펴냄, 1999년

[라포르시안]  세월호 침몰사고를 보면서 안전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짚어보려는 생각에서 송해룡, 김원제 교수의 <한국사회 위험특성과 한국인의 위험인식 스펙트럼>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사고의 원인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만, 화물과 차량들을 제대로 묶지 않은데다가 갑작스럽게 배의 진로를 바꾸는 바람에 화물들이 쏠리면서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우리사회의 문화어로 자리 잡은 ‘빨리빨리’가 불러온 인재(人災)였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뒷짐을 지고, 한껏 어깨를 뒤로 젖힌 채 느릿느릿 팔자걸음을 걸어야 체통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 우리 사회가 이렇게 숨넘어가듯 바쁘게 돌아가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일입니다. 해방에 이은 6.25동란을 계기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 외래문물을 보면서 우리도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에만 몰두하게 된 것이 이유라면 이유가 될까요?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온 서구의 발전과정을 압축해서 따라잡으려다 보니 그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빠르면서도 정확하다면 문제가 없을 터이지만, 아무래도 빠르다보면 뭔가 빠지는 것도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빠진 것이 있더라도 별 사고 없이 지나가는 일이 쌓이다 보니 결국은 대형 사고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부작용 때문인지 숨넘어갈 듯 빠르게 움직이던 세계적 분위기에 딴죽을 거는 듯 ‘슬로우 시티 운동’이 힘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절차와 과정에 대한 의논이 오가던 중에 모 보건의료신문에 제가 속한 심평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개하는 칼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일방적인 보도자료나 안내에 머물던 것을 고객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답변도 드리는 쌍방향 소통 채널로 활용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획의도를 설명하는 글에서 대학시절 읽었던 독일작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의 내용을 조금 인용하였는데 놀랍게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보다 조금 뒤에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되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한 인기와 교훈을 남겼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북소리]를 통하여 소개해보려 합니다. 빨리 움직이는 사회의 끔찍한 모습을 1973년에 예견하고 슬로우 시티 운동을 제안한 미하엘 엔데의 혜안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미하엘 엔데(Michael Andreas Helmuth Ende; 1929.11.12. ~ 1995.08.28.)은 남부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텐에서 태어났습니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에드가 엔데와 역시 화가인 루이제 바르톨로메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엔데는 부모의 예술가적 기질을 물려받아 글, 그림, 연극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재능을 떨쳤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연극배우, 연극평론가, 연극기획자로 활동하다가 1960년에 발표한 <기관차 대여행>으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작 <모모(1970)>와 <끝없는 이야기(1979)>은 판타지적 요소를 가진 동화이면서도 문명에 의한 자연의 파괴(끝 없는 이야기)와 소비중심의 문명(모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세상에서는, 그가 죽은 다음에 단순한 동화작가에 머물지 않고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비판한 철학가’로 재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 철학자인 데이비드 로이와 린다 굿휴는 <모모, 도건, 시간의 일반화(2002)>라는 책에서, “이 책은 1973년에 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간도둑의) 악몽이 현실이 되고 있다”라며 <모모>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소설 중의 하나로 선정하였다고 합니다.

1973년 발표된 <모모>는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차경아님의 번역으로 1977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청람문화사에서 나온 이 번역본에는 미하엘 엔데의 <한국 어린이에게 부치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보다 앞선 1976에는 1975년에 공쿠르상을 수상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출간되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모모입니다. <모모>의 주인공은 여자아이인데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은 열세살 남자아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1978년 광주 전일방송의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한 김만준의 <모모>가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어 <모모는 철부지>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하는 등, 모모의 열풍이 이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모모>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몇 천 년 전에 화려했던 커다란 옛 도시의 터에 자리 잡은 커다란 도시, 그 도시의 남쪽 끝머리에는 밭이 시작되고 갈수록 누추해져가는 오두막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 이야기의 무대입니다. 마을 뒤 소나무 숲에는 무너진 작은 원형극장이 숨어 있는데, 이 극장은 그 옛날에도 화려하지 않은 그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극장이었기 때문에 이웃마을 사람들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 원형극장 터에 조그만 여자아이가 스며들어왔습니다. 키가 작고 대단한 말라깽이에 다 낡아빠지고 헐렁한 남자 웃옷에 색색가지의 알록달록한 천을 이어 붙여 만든 치마를 입고 있는 아이는 여덟? 아니면 열두 살로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백 살 혹은 백두 살이 되었다고 합니다. 언제나 까만 맨발로 돌아다니는 모모는 놀랄 만큼 예쁘고 커다랗고 까만 눈을 가졌습니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모모가 원형극장의 무대 밑에 무너진 방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돌보아주기로 합니다.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은 모모의 행운이었을까요? 아니면 마을 사람들의 행운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삼대가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만, 삼대까지 갈 것도 없이 마을 사람들은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바로 모모의 놀라운 재능 덕분입니다. 그 놀라운 재능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였습니다.

작가는 모모의 재능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듯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23쪽)” 사람들이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라고 권하는 바람에, 이 말은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는 일상어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사실 어떤 문제든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모모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은 바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원형극장은 모모의 재능이 꽃을 피우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모모는 밤이면 원형극장에 앉아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정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는데, 모모는 별들의 나라를 향해 열려 있는 거대한 귓바퀴 한 가운데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던 것입니다. 독일 하노버에 있다는 조각상이 커다란 귀를 안고 있는 모모의 모습을 새긴 이유일 것입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요? 모모와 함께 살고 있어 영원히 행복할 것 같던 이 마을에도 나쁜 일이 생겼습니다. 원래 나쁜 일은 시나브로 끼어들어 쌓이는 문제들이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발생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처럼 우리사회가 평소 조심해서 지키면 피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을 간과하듯 말입니다. 이 마을에도 회색옷을 입은 신사가 등장한 것입니다. 납회색 서류가방을 들고 작은 회색시가를 뻐끔대는 회색신사는 잿빛 목소리로 자신이 시간은행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사람들마다 세상살이가 의미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회색신사들은 바로 그 순간에 등장해서는 현란한 계산을 통해서 시간을 절약하면 나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지금 절약한 시간을 시간은행에 맡기면 이자를 쳐서 예순두 살이 되는 해에 엄청난 양의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꼬이는 것입니다.

▲ 1986년작 영화 '모모'에 등장하는 회색신사들.

계약이 성립되면 그 다음부터는 회색신사들은 계약자들이 단 1초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도록 엄중하게 감시하면서 미리 짜인 시간표에 따라서 움직이도록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시간을 아껴서 살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 겉으로 보기에는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못마땅한 기색이나 피곤함, 또는 불만이 쌓여가고 상냥한 기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도시의 모습까지 변해갔는데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모두 생략하고 꼭 필요한 부분만 살린 똑같은 집을 짓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 맞추자면 각기 다른 집을 지어야 하겠지만, 똑같은 집을 지으면 돈이 훨씬 적게 들고 무엇보다도 시간을 절약하는 이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시간을 아끼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회색신사들과 시간저축을 계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모모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이번에는 모모가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결국은 회색신사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친구들이 모모를 만나느라 사용하는 시간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모모를 찾아온 회색신사는 얼결에 자신들의 정체와 속셈을 모모에게 털어놓게 됩니다. 역시 모모의 들어주는 재능 덕분입니다. “사람들이 아낀 시간은 그냥 사라져 버려.... 우리는 시간을 끌어모아... 저장하는거야....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 우리는 시간을 갈망하지...” 즉 회색인간들은 사람들의 시간으로 연명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모모는 친구 베포와 기기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과 함께 회색인간들의 음모를 세상에 알리는 모임을 개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회색신사들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회색신사들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모모의 친구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하여 모모를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모를 잡아들이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모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갑작스럽게 나타난 거북이 카시오페아의 안내로 ‘언제나 없는 거리’에 있는 ‘아무데도 없는 집’에 사는 세쿤두스 미누티우스 호라 박사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박사의 이름이 독특하죠? 그렇습니다. 초, 분, 그리고 시간을 나타내는 라틴어 이름입니다. 모모는 시간의 근원지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곳은 거대한 지붕 밑에 있는 둥그런 연못으로 별의 추가 움직이는 대로 커다란 꽃봉오리가 떠오르고 스러지기를 반복하는 곳입니다.

호라박사는 저마다의 사람들에게 지정되어 있는 시간을 나누어 주는 관리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 하는 문제는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합니다. 회색신사들 역시 호라박사의 존재를 잘 알고 있고, 이곳을 봉쇄하여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단숨에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을 속여서 조금씩 갈취한 시간으로 연명하는 것이 구차하고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병들게 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고,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저 산다는 것이 지루하다는 느낌이 점점 커지면서 종국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무관심해지고,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라는 병을 앓게 된다는 것입니다.

회색신사들이 호라박사의 집을 에워싸고 공격을 퍼붓자 모모의 아이디어로 반격을 시작합니다. 1시간동안 시간을 멈추고 그 사이에 회색신사들이 사람들로부터 빼앗아 저장해둔 사람들의 시간을 풀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이윽고 시간이 정지되고 당황한 회색신사들을 뒤쫓아 시간저장창고로 찾아간 모모는 카시오페아의 도움으로 회색신사들과 마지막 대결을 벌이는데... 결국 모모와 카시오페아의 활약 덕분에 회색신사들의 음모는 분쇄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색신사의 꼬임을 받고 있지 않으십니까? 우선은 달콤하게 들릴지 모릅니다만, 결국 당신의 감정을 병들게 하고 사건사고로 얼룩진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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