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공무원 열악한 처우 한 단면…공무 중 다쳐도 본인부담으로 일반병원서 치료

▲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현직 소방관. kbs뉴스 보도화면 캡쳐

[라포르시안]  지난 7일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화재 진압복을 착용한 현직 소방관들이 릴레이 1인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과 현장대응 소방인력 증원, 낡고 부족한 장비 현대화 등을 요구하며 5일째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소방관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유명하다. 특히 지방직 공무원이다보니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근무여건 편차도 크다.

재정 상황이 열악한 지자체의 경우 소방 예산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기본적인 화재진압 물품과 장비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것으로 알려졌다. 

광화문광장 1인 시위에 나섰던 한 소방관은 방송에 나와 "지자체가 예산이 모자라 방염 내열이 필수인 소방관 장갑 대신 농어용 고무장갑을 보급받고 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얼마 전에는 한 현직 소방관이 "화재진압 장갑 6개월 쓰면 너덜너덜해지는데 현재 3년째 지급이 안 돼  아마존)에서 영국 제품으로 1년에 2개씩 사비로 구입해 쓰고 있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재진압 등 공무 중 다쳐도 본인부담으로 일반병원서 치료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는 업무 중 다쳤을 때 치료받을 수 있는 소방병원이 전무한 현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현재 국내에는 군인을 위한 국군병원과 경찰공무원을 위한 경찰병원, 그리고 국가유공자를 위한 보훈병원 등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소방공무원을 위한 소방병원은 없다.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다. 소방 재정을 지자체 예산으로 충당하다보니 소방병원 설립을 위한 예산 확보가 힘들기 때문이다.  

화재진압 중 화상 등의 부상을 당한 소방공무원은 경찰병원이나 소방전문치료센터로 지정된 민간 의료기관을 찾아 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소방전문병원 설립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소방전문병원 설립을 위해 지난 2002년 '소방병원추진위원회'가 정식 출범했으나 결실없이 해산했다.

2011년 7월에는 당시 한나라당 임동규 의원이 소방전문병원을 설치할 수 있는 법적근거 마련을 위한 '소방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지만 결국 폐기됐다.

19대 국회 들어 지난해 6월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김민기 의원이 다시 소방공무원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소방병원의 설치에 관한 법적근거를 담은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개정안을 통해 소방방재청장 소속으로 소방병원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소방공무원 등의 진료 ▲소방공무원의 특수근무환경에 따른 건강유해인자 분석 및 질병연구 ▲소방공무원의 특수건강진단 등을 전담토록 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소관 상임위원회인 안전행정위원회에 회부돼 법안심사소위에 계류된 상태다.

안행위 수석전문위원은 개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소방병원의 설치 필요성에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검토보고서는 "소방공무원은 업무특성 상 유독가스 노출, 충격적인 현장상황 수습 등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각종 정신질환 발생이 타 공무원보다 높게 나타나는 실정"이라며 "최근의 유독물질 유출 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소방공무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소방공무원의 근무환경 및 질환특성이 반영된 전문병원을 설치하려는 개정안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검토보고서는 "다만 소방병원을 설치․운영하기 위해서는 병원 신축 및 운영에 소요되는 재정적인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국립경찰병원의 경우에는 병원운영비로 최근 5년간 1,640억원의 국비가 보조 되었으며 연평균 300억원 이상이 지원되고 있다"고 예산 확보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 자료 출처 : 국회 안전행정위원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

그런데 검토보고서를 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경찰병원을 이용한 소방공무원은 전체 이용자의 2.0%에 불과했다.

이 기간 동안 경찰병원을 이용한 직종은 일반인이 40.8%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전의경 24.2%, 경찰관 22.3%, 퇴직경찰 10.6%, 소방관 2.0% 등이었다.

같은 기간 공무를 수행하다 다친 공상소방공무원 1,723명의 병원별 치료현황을 보면 일반병원 이용률이 93.9%(1,618명)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소방전문 치료센터 3.7%(64명), 경찰병원 1.8%(31명)였다.

소방공무원이 경찰병원 이용률이 낮은 것은 경찰공무원을 위한 병원이다보니 진료를 받기까지 대기시간이 길다보니 큰 부상이 아닐 경우 일반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진료비를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방전문치료센터도 허울뿐이다.

소방방재청이 지난해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전국에 지정된 소방전문치료센터는 모두 35곳으로, 이 중 일부 병원은 진료비 감면 등의 혜택이 전혀 없어 소방관들이 거의 찾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35개 소방전문치료센터 중 3곳은 소방관 방문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도와 경북, 세종시는 아예 소방전문치료센터로 지정된 병원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소방공무원은 업무 중 부상을 입더라도 대부분 진료비 감면 혜택이 전혀 없는 일반병원을 찾아 본인부담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소방방재청, '소방전문병원' 건립 추진…"국가안전처 신설로 해체되면 다시 물거품" 소방방재청은 지난 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체계적인 소방공무원 건강관리를 위해 '소방전문병원'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12월 '소방전문병원 건립 검토를 위한 기초조사 연구'라는 정책연구용역을 발주, 올 5월까지 연구를 완료키로 했다.

소방방재청은 이 연구용역을 통해 ▲소방공무원의 신체·정신 건강문제 해결을 위한 병원의 기능 검토 ▲추가 병원 기능설정, 규모·인력·건립비용, 연간운영비 추산 ▲운영 수익성 분석을 통한 자립운영 가능성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하지만 최근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국가안전처 신설이 추진되면서 소방방재처가 해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소방병원 건립 추진도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한 소방공무원은 "지금까지도 소방전문병원 설립의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소방방재청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며 "소방방재청 해체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 상황에서 소방병원 설립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더 힘들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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