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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너도 나도 모두가 헷갈리는 사회이분법 사회를 넘어서 / 송호근 지음 / 다산북스 펴냄, 2012년

[라포르시안]  6월 4일 실시된 지방선거 결과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아홉 곳의 광역단체장을, 집권 새누리당이 여덟 곳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키는 절묘한(?) 결과를 얻어 무승부를 이루었다는 총평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하던 야당의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결과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해운사나 사고 수습은 뒷전에 두고 탈출한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보다 갈팡질팡한 정부나 여당의 책임을 물고 늘어져 선거정국으로 이끌고 간 야당의 전략이 돋보였으며, 뻔히 보이는 야당의 전술에도 속수무책이었던 여당의 답답함 역시 돋보였다고 하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양분화 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 같습니다. 이성이 자리할 여유가 없이 오직 이념적으로 내 편이 아니면 네 편으로 분류하다 보니, 중립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 역시 어느 편이든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편을 굴복시키기 위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념으로 무장한 거대한 두 세력이 좁디좁은 반도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형국인데, 그러다 보면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든 지구촌에서 살아남기 위한 힘을 모으는 일 자체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여 사회적 혼란이 악순환하고 있는 남미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구 선진국을 통하여 건강한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견제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을 보아왔습니다. 물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때로는 피를 흘리면서까지 이루어낸 성과일 것입니다. 20세기 후반 압축성장이라고 표현되는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낸 우리 사회는 이어서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주화과정에서는 압축성장하지 못하고 이념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길어지는 암초를 만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우리사회의 미래가 점점 짙어지는 안개 속으로 매몰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의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는 좌우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미래를 보지 못하는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뜨게 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일할 무렵 만나본 적이 있는 송호근 교수는 정치와 경제, 사회를 넘나드는 넓은 안목과 정교한 분석으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사회학자입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0년대 성장위주의 국가정책이 빚어낸 노동문제와 불평등의 한국적 결합구조를 ‘시장기제적 통제’로 이론화하여 주목 받았으며, 유럽사민주의와 비교한 한국의 민주주의와 복지의 발현메커니즘에 관한 탁월한 업적으로 ‘제도주의적 정책사회학’의 선두주자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이런 학문적 배경을 가진 그는 우파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스스로는 이념적으로 중도우파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수렴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반발한 의료계가 총파업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를 지켜본 그는 2001년에 한국의 의료문제를 분석한 내용을 담은 책 <의사들도 할 말 있었다>를 낸 바도 있어 의료계의 속사정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송 교수도 좌우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헤매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매일 터지는 사건과 쏟아지는 사회적 쟁점들 속에서 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라는 한탄으로 서문을 열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변하고 있는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대응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이분법적 대응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개발을 앞세운 독재가 통하던 1970~80년대에는 독재에 대항한 반독재는 정의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입니다. 당시에는 독재와 민주의 간단한 이분법이 가치관과 행동수칙을 제공했는데, 정의 개념이 명료했고 일말의 회의도 없었다고 저자는 그때의 사회적 분위기를 요약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분법적으로 싸웠고 이분법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독재의 시대가 가고 민주의 시대가 왔습니다. 다양한 학문, 예술, 사상 등의 영역에서 각기 자기의 주장을 펴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이분법의 시대가 가고 다분법의 시대로 진화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중대한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이념이 충돌하는 경계선에서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이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고 절충하여 타협을 이루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훈련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서로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못하니 각자의 주장을 관철하는데 매몰될 수밖에 없고, 때로는 후퇴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단순한 전술도 잊었던 것입니다. 진영논리에 매몰되다 보니, 승패를 가리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승부가 결정되면 패자는 승자를 축하하고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앞서 저자는 스스로를 중도우파로 평가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속내가 배경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40대 초반 이후, 좌파정권 10년, 우파 정권 5년을 겪었습니다. 좌우파 모두 공과(功過)가 있습니다만 모두 ‘선머슴 같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좌파는 우파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았고, 우파는 좌파를 위험한 사람들로 낙인찍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나, 거꾸로 얘기해도 틀리지 않습니다.(10쪽)”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저 역시 깊이 공감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좌파와 우파가 공감하는 시세와 처지에 대한 공통 인식, 즉 좌우파의 공동구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방정식’을 세워 이념에 집착하는 정치인들이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짓을 극복하자고 제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대책을 요구하는 분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모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요즘에는 촛불을 드는 경우가 참 많아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시민들이 소통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소통에 대한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데, 정작 소통에 나서야 하는 쪽은 대응이 시원치 않은 것입니다. 시민들이 충족되지 않는 소통에 대한 욕구를 거리로 나서 풀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라고 합니다. 약자를 대변한다는 대통령이기에 소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증했는데, 정작 자신의 입장이 강한 대통령은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힘을 쏟았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불통정권’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이 미리 말로 쏟아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듣기’에는 너무 미숙했고, ‘말하기’에도 너무나 서툴렀기 때문에 ‘불통정권’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만,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재개와 관련하여 촛불집회가 시작되고 결국에는 가두시위로 번지는 상황에서 ‘폭설이 쏟아질 때는 눈을 치워도 소용없다.’라는 이유로 광화문에 컨테이너를 쌓아 시위대를 차단하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우를 범한 것입니다. 촛불집회가 시작할 무렵 정부합동기자회견을 열어 끝장토론을 했던 것처럼 시민들을 상대로 협상과정과 광우병 위험에 대한 과학적 진실을 낱낱이 밝혀 괴담이 확산되지 않도록 했어야 합니다.

저자는 소통이란 상대적인 점을 들어 불통의 책임을 정부 혹은 권력에만 두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교양시민이 많지 않은 것 또한 불통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교양시민이란 전문지식과 학식, 품위와 윤리를 갖춘데 더하여 공익에 대한 긴장을 내면화한 시민이라고 규정한다면, 교양시민층이 과연 얼마나 두터운가하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우리사회에서 교양시민의 축적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커밍스가 냉소적으로 표현한 ‘이념의 정화(ideological purification)’가 공론장의 자율적 정화작용이 아니라 해방후 좌우세력이 격돌하는 가운데 극악한 폭력과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여 이루어졌던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생적으로 뿌리를 내려가던 시민단체들이 정치권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들을 정치적 호위세력으로 끌어들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시민단체들은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사람들로 넘쳐나면서 보수와 진보의 격돌과 정치투쟁을 조정하고 걸러줄 진정한 의미의 시민운동은 방향을 잃어버리고 정치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독립한 국가들 가운데 선거를 통하여 민주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뀐 정권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자 다시 정권을 바꾸기까지 하였습니다. 즉, 오랜 세월을 거쳐 선거에 의한 민주주의가 정착된 서구와는 달리 경제성장과 마찬가지로 민주화도 압축성장의 가도에 들어선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민주화는 정치민주화, 사회민주화 그리고 경제민주화의 세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저자는 각 단계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치민주화의 핵심은 정치 영역에서 ‘경쟁과 참여’촉진이고, 사회민주화의 핵심은 ‘기회균등’의 촉진과 ‘소득 불평등’축소이며,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거대 자본의 과잉권력통제’ 또는 ‘파행적 시장지배금지’이다.(153쪽)”

첫 번째 정권교체가 가능하게 한 김영삼정부와 김대중정부 시절 정치민주화의 기틀을 다졌다고 하면 두 번째 정권교체가 일어난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사회민주화라는 과제를 맡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주류의 주류화’를 겨냥했던 노무현 정부는 과격한 ‘말의 정치’ 때문에 좌절했고, 이명박 정부는 ‘무(無)정치’ 속에서 증발했다고 진단합니다. 정권연장에 실패한 세력이 선거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새 정부를 끊임없이 흔들었는데, 새 정부의 대응능력이 시원치 않았던 것이 사회민주화의 기간이 길어진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박근혜정부는 사회민주화와 경제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된 것입니다.

사회민주화에 이은 경제민주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지난 대선 때 화두가 되었던 무상복지에 대하여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진실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복지는 사회적 권리로서 누구나 태어나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혜택입니다. 중요한 점은 무상복지를 논하는 과정에서 ‘복지=기업 경쟁력 강화=일자리 지키기’라는 등식을 간과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시절 기업을 노동자에게 돌아갈 이익을 빼돌리는 집단으로 몰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은 기업은 생산활동이 위축되었고, 생산시설을 3국으로 이전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시장은 그만큼 위축되는 결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때 만들어진 반기업 정서는 이명박 정부의 기업프렌들리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기업활동의 위축에 더하여 기득권자의 방어벽이 함께 작동하여 새로이 노동시장에 들어서야 할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일고 있는 복지논쟁의 이면에는 성장과 분배를 각각 강조하는 진영의 이념이 대립하는 구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이분법적 사회가 배태하고 있는 문제점인데, 저자는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독일의 사례를 참고할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 규모의 통일비용, 실업난, 높은 수준의 복지, 기업 경쟁력 하락까지 겹쳐 위기상황에 몰렸던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로 수렴되는 공공철학의 힘을 바탕으로 유럽경제의 사령탑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몫을 줄여서 일자리를 창출해낸 독일인들의 공동체 우선 정신을 우리에 맞게 보완한 새로운 사회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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