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안 브리핑]

▲ 실제 태반의 모습.

[라포르시안]  모든 인간은 태어나기 전 9개월 동안 태반의 신세를 진다. 그 동안 태반은 폐와 신장의 역할을 해 주며 호르몬도 분비한다. 태반이 잘못되면 조산(早産)에서부터 중년의 질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지만,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의료 폐기물로 버려져, 그야말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미 국립보건원 산하 미 소아보건 및 인간발달연구소(NICHD)의 앨런 굿마커 소장은 "태반은 인간의 장기 중에서 연구가 가장 미진한 축에 속한다. 상당수의 과학자들이 태반에 대해 거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뀔 것 같다. NICHD가 연구자들과 후원자들을 모아 태반의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지난주 NICHD가 주최한 워크숍에서는 70명의 연구자들이 모여 '인간태반 프로젝트'(Human Placenta Project)의 아이디어를 논의했다. 프로젝트의 내용에는 임신 중에 태반을 모니터링하는 방법이라든가, 태반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치료하는 약물 등에 관한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태반은 주로 (초기 배아를 둘러싸고 있는) 태아세포의 바깥층(영양막)에서 발달한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영양막(trophoblasts)은 임신 초기에 자궁벽에 침입하여, 나중에 융모(villi)라는 미세한 돌기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여기에는 태아의 혈관도 포함된다. 융모는 나뭇가지 모양의 구조체로, 어머니의 혈관에서 산소와 영양분을 흡수하여 태아에게 전달한다.

태아의 노폐물과 이산화탄소는 융모를 경유하여 어머니의 혈류로 확산된다. 그밖에 다른 전문화된 세포가 발달중인 태반과 탯줄을 연결한다. 어머니의 면역계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태반은 다양한 작전을 구사하는데, 그중에는 특정 단백질을 발현하지 않는 전략도 포함된다. "임신 중에 태반이 수행하는 역할은 놀랍도록 흥미로워, (암에서부터 조직이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 교훈을 준다"고 아이오와 대학교의 의사이자 과학자인 킴벌리 레슬리는 말한다.

기능이 불량하거나, 크기가 너무 작거나, 약하게 결합된 태반은 태아를 굶겨 성장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임신중독증(preeclampsia: 임신과 합병된 고혈압)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임신중독증은 최대 6%의 산모에게 나타나는 질환으로, 조산(premature delivery)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편 태반의 기형은 (심혈관질환에서부터 인슐린저항성에 이르기까지) 성인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그 정확한 발병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주 NICHD가 주최한 워크숍에 참가한 연구자들은 태반의 연구 가치가 충분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굿마커 소장에 의하면 인간 태반프로젝트의 초점은 `태반의 정상적/비정상적 기능을 임신 기간 내내 실시간으로 이해하는 것`에 맞춰질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인간 태반프로젝트는 가능한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도 큰 비중을 두고 있는데, 그중에는 `약물을 이용하여 비정상적으로 작은 태반의 성장을 자극하는 방법`도 포함된다.

워크숍에 참가한 일부 연구자들은 "초음파와 MRI를 이용하여 태반의 혈류와 산소화 상태를 측정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러나 추적물질(tracer)을 태반에 주입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예컨대 해컨색 대학교 메디컬센터의 니콜라스 일슬리 연구원은 "사람들은 임신부에게 모종의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매우 언짢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워크숍에서 나온 또 다른 아이디어로는 `어머니의 혈류를 검사하여 태반에서 떨어져 나온 세포와 핵산 등을 검출하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잘 활용하면 `태반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비침습적 방법`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구자들은 `칩 위의 초소형 태반(placenta on a chip)`이나 `임신기간 내내 태반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분자센서`와 같은 첨단기기를 개발하는 데도 큰 관심을 보였다. 매기-여성연구소의 요엘 사도브스키 박사는 "칩 위의 태반이나 분자센서와 같은 장치들은 마치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당신이 누군가에게 아이폰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워크숍에 참석한 사람들은 몇 가지 당면과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다. 그중 첫 번째는 정상 태반과 비정상 태반의 표준정의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의 브라이언 콕스 교수(시스템 생물학)는 "태반의 형태는 매우 다양해서, 건강한 임신부의 태반도 비정상적인 모양을 가질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질병에 걸린 태아에게서 적출된 태반이라도 외견상으로는 멀쩡해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태반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NICHD의 워크숍이 개최되기 이전부터, 국제 태반 연구자 모임은 웹사이트 개설을 통해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바이오뱅크(biobank)들을 연결하고 연구자들의 협력을 촉진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다만 현재는 NICHD의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인간 태반프로젝트의 주요 제한요인은 자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굿마커 소장은 첫 번째 연구자금이 조달되는 시기를 2016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인간 태반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관은 NICHD만이 아니다.

NIH 산하 8개 기관과 마치오브다임즈(March of Dimes)와 같은 비영리단체들도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며 지원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만큼, 그 동안 `미아 취급을 받던 장기(throwaway organ)`는 조만간 그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원문 바로가기>


[알립니다] 이 기사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운영하는 미래기술정보 포털 미리안(http://mirian.kisti.re.kr)에 게재된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본지는 KISTI와 미리안 홈페이지 내 GTB(Global Trends Briefing 글로벌동향브리핑) 컨텐츠 이용에 관한 계약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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