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안 브리핑]

▲ 영화 <토탈리콜>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인위적으로 기억을 이식할 수 있는 기술을 모티브로 한다.

[라포르시안]  신경과학자들은 이제 단체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기억의 생성과 저장에 관해 오랫동안 정설로 인정되어 왔던 이론이 맞는 걸로 확인되었으니 말이다. 과학자들은 빛을 이용하여 실험쥐의 뇌에서 공포의 기억을 생성하고 삭제함으로써 "뉴런 간의 연결이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것이 기억의 본질이다"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에서 제시된 증거는 지금껏 얻을 수 있었던 것 중 최고"라고 콜럼비아 대학교의 에릭 캔들 교수(신경과학)는 말했다. 캔들 교수는 2000년 기억의 분자적 메커니즘을 밝힌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했으며, 이번 연구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1960~70년대, 노르웨이의 과학자들은 뇌세포의 특이한 속성을 하나 발견했다. 해마에 존재하는 뉴런을 고주파 전류를 이용하여 반복적으로 자극한 결과, 인근 뉴런과의 대화능력이 증강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커뮤니케(communiqués)가 발생하는 장소는 시냅스라는 미세한 공간인데, 하나의 뉴런은 시냅스를 통해 주변에 있는 수천 개의 뉴런과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장기강화작용(LTP: long-term potentiation)이라고 하는데, 신경과학자들은 LTP가 기억의 물리적 기초라고 생각해 왔다. "해마가 장기기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LTP의 지속적 성격으로 미루어볼 때 정보는 신경회로에 저장되었다가 나중에 인출되는 것 같다"는 것이 신경과학자들의 생각이었다.

신경과학자들은 지난 40년 동안 `LTP가 기억형성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그 결과 그들이 알아낸 것은 "설치류가 새로운 울타리 주변을 날쌔게 움직일 때는 시냅스가 강화된다"거나 "LTP를 약물로 차단하거나 핵심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할 경우 실험쥐의 기억력이 손상된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이상의 실험결과들은 LTP가 기억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할 뿐, "LTP가 실제로 기억을 코딩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인과관계는 확립되지 않았다.

UCSD의 로베르토 말리노 교수(신경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빛을 이용하여 신경을 활성화시키는 기법`을 이용해 LTP의 기능을 밝혀내는 과제에 도전했다. 연구진은 광민감성 단백질(light-sensitive protein)을 코딩하는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삽입한 후 이 바이러스를 실험쥐의 뇌세포에 주입했다. 뇌세포에 주입된 유전자가 단백질로 번역되고 나자, 연구진은 실험쥐의 뇌에 이식된 광섬유를 통해 청색광 펄스를 전달함으로써 단백질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

연구진은 고전적 조건화실험(classic conditioning experiments)을 통해 한 가지 소리를 실험쥐에 들려준 후 재빨리 전기쇼크를 줬다. 그러자 실험쥐는 그 소리를 전기쇼크와 동일시하게 되어 소리만 들어도 -곧 전기쇼크가 가해질 것을 예상하고- 몸을 부르르 떠는 것으로 타나났다.

그런데 연구진은 광유전학(optogenetics)을 통해서도 이와 동일한 공포기억을 생성할 수 있었다. 즉, 뇌의 특정 뉴런(뇌의 `청각처리 영역`과 `공포처리 영역`을 연결하는 뉴런)에 빛을 비춘 다음 전기쇼크를 가함으로써 말이다. 그러자 쥐는 빛 자극만 받아도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공포감을 나타냈다. "우리는 랫트가 전혀 경험하지 않은 것을 기억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라고 연구진은 말했다.

빛 자극을 받은 뉴런의 시냅스를 분석해 본 결과, LTP의 전형적 특징을 나타내는 분자적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것만 갖고서는 LTP가 실제로 기억을 형성하는지를 입증할 수 없었다. 연구진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방금 전 형성된 연결을 지운 다음, LTP를 이용하여 연결을 재강화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이 실험 역시 기억을 저장하는 뉴런을 빛으로 활성화시킴으로써 이루어졌다. 먼저 연구진이 실험쥐를 `장기적 억제(LTD)를 일으키는 광선`에 노출시킨 결과, 쥐는 소리와 관련된 공포감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 이 쥐를 `LTP를 일으키는 광선`에 노출시키자 공포의 기억이 다시 생겨났다.

연구진은 이 같은 방법으로 쥐의 기억을 무한정 생성하고 지울 수 있었다. "우리는 기억을 요요처럼 갖고 놀았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캔들 교수는 "지금껏 `LTP가 기억을 저장하고, LTD가 기억을 지운다`는 사실을 입증했던 연구들은 하나같이 간접적 증거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의 의의는 `그 어떤 연구보다도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했다`는 데 있다"고 캔들 교수는 논평했다.

스크립스 연구소의 마크 메이포드 박사(신경과학)는 "신경과학자들 사이에서 LTP가 기억형성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당연시되어 왔다. 그러나 기억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LTP의 역할을 의심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연구야말로 신경과학계가 필요로 해 왔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메이포드 박사는 "그러나 보다 복잡한 기억의 경우, LTP 말고도 다른 분자 메커니즘이 기억형성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예컨대 당신의 작업장이나 주변환경을 기억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라. 이러한 기억을 관장하는 영역은 공포중추와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이번 연구가 신경과학계의 오랜 숙원을 풀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연구진은 "일단 이번 연구가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다. 이 정도면 나름 축하할 만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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