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위험특성과 한국인의 위험인식 스펙트럼 / 송해룡과 김원제 지음 / 한국학술정보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말이 있습니다. ‘재앙은 혼자 오는 법이 없이 항상 겹쳐서 온다.’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한 것 같습니다. 안전할 것으로 믿은 여객선이 속절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것은 그렇다고 쳐도,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승무원들이 구명(求命)의 기회가 사라질까봐 승객들을 객실에 방치한 채 몰래 먼저 탈출하는 비윤리적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 바람에 수학여행길에 들떠 있던 꽃 같은 젊은이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져있는 상황에 이번에는 많은 시민들 태우고 달리는 지하철이 추돌한 사고가 발생했고, 이어서 달리는 지하철에서 불을 질러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살상하려는 방화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방에 있는 요양병원에서는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수십 명의 입원환자가 졸지에 죽음을 당하는 불행한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993년 군산 위도의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1994년 성수대교의 붕괴사고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그리고 얼마 전만 해도 경주 마우나 리조트 강당붕괴사고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습니다. 이런 대형사고의 공통점은 원칙을 지키고 사전대비를 철저하게 했더라면 많은 생명이 희생되지 않았을 사고라는 것입니다. 즉 인재(人災)라는 것입니다.

자연의 재해가 겹치는 것은 지독한 불운이라고 변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람의 잘못으로 인한 인재(人災)가 겹쳐 일어나고 있다면 그 사회가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송해룡 교수와 김원제 교수의 <한국사회 위험특성과 한국인의 위험인식 스펙트럼>을 골랐습니다. 전문서적의 냄새가 진한 느낌을 받습니다만,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위험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과, 위험관리에 대한 마땅한 읽을거리가 없다는 점을 고려한 책읽기였습니다. 이 책은 한국학술정보가 우리 사회의 위험관리체계 수립을 위한 자료를 축적하려는 기획으로 시작한 위험커뮤니케이션 총서의 세 번째 책이기도 합니다.

위험사회론을 주창한 울리히 벡은 “한국은 아주 특별하게 위험한 사회(risky society)다”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북한의 전쟁 위협을 차치하고라도, 사건․사고 없이 지나가는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은 정도로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고의 당사자가 아닌 한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대단히 평화롭게 보인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만 아니면 돼”라고 소리치는 예능프로그램이 있는 것처럼 그 위험이 내 일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이 어쩌면 한국사회를 위험한 사회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들은 “한국사회의 위험특성과 한국인의 위험인식 스펙트럼을 조망하기 위하여 기획하고,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라고 머리말에서 밝혔습니다. 첫째, 한국사회의 대표적 위험 현상 및 사례분석을 통한 ‘위험한국’의 특성 규명, 둘째, 전국 서베이 결과 분석을 통한 한국인의 위험인식 스펙트럼 분석, 셋째, ‘안전-안심 한국’을 위한 전략적 시사점(위험커뮤니케이션 활성화 기반 신뢰시스템 구축)을 핵심내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물론 정책당국자들 역시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 책이 한국사회에서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이론적 논의를 촉발하고 그 실체적 적용을 통하여 ‘안전-안심 한국’의 조건 및 전략적 방향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들이 대상으로 삼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5대 재난 및 재해”는 2012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국민의 우려를 고려해 중점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이미 정한 것들입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재난과 재해를 ‘광범위한 인명이나 재산적 피해를 야기하는 자연재해와 인적․사회적 재난’으로 개념화하고, 그 파급효과나 피해규모, 그리고 발생가능성을 고려하여 ‘자연재해(태풍, 호우, 홍수 등)’, ‘원전 안전(원자력 발전 및 기술)’, ‘신․변종 전염병’, ‘환경오염 사고’, ‘사이버 테러’ 등 다섯 가지고 분류하여 제시했던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이나 장성 요양병원 화재 사건을 어느 범주에 포함해야 할까요?

사실 요양병원의 화재사건이 보건의료인들에게 준 충격은 어쩌면 세월호 침몰보다도 더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침 제가 요양병원 적정성평가를 자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2013년 7월부터 9월까지를 대상으로 요양병원 적정성평가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5차 평가에서는 시설부문에 대한 평가업무를 의료기관인증평가원으로 이관하고 진로부문만 평가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0년에 모 요양원에서 화재가 일어나 인명피해를 낸 것이 계기가 되어 화재에 대한 안전점검을 평가지표로 포함시킨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생한 요양병원의 화재사건을 통하여 화재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시설은 물론 환자 안전관리 지침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이번 화재사건이 평시에도 병원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안전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ytn의 요양병원 화재 사고 보도화면 캡쳐

“제1부 위험한 한국사회”에서는 우리 국민들의 안녕을 위협하는 자연재해와 인적․사회적 재난의 유형을 들고, 국가적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다섯 가지 재난재해의 위험특성을 규명하였습니다. 이어서 위험 이슈가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맥락을 짚고 있는데, 대표적 사례로 2008년 광우병 위험과 촛불집회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제2차 광우병파동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실체적 위험의 크기를 지나치게 부풀려 정치쟁점화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사례라고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설치와 관련하여 갈등을 빚었던 충남 태안군 안면도, 전북 부안군 위도, 경북 경주 등의 사례는 정책당국과 지역주민들의 위험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과 함께 지역주민이 아닌 외지인들이 개입하여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일조를 하였다고 인식하는 측면도 있어 보다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2부 한구인의 위험인식 스펙트럼”에서는 다섯 가지 위험에 대하여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조사한 내용으로 위험환경과 관련하여 자연, 과학, 미디어 등에 대한 인식을 분석하였습니다. 이어서 위험 일반에 대한 인식 및 태도로서, 위험별 심각서 인식수준, 위험 관여도, 위험문제에 대한 태고, 위험문제 예방 및 해결에 대한 태도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제3부 ‘안전-안심 한국’을 위하여”에서는 1부와 2부에서 진단한 ‘위험한 한국’의 모습에서 ‘안전-안심 한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 시사점을 도출하고 있는데,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조망하고 있습니다.

간혹 논지가 분명치 않은 대목도 눈에 띕니다. 예를 들면, “2008년 광우병 파동에서 언론의 보도자세를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요컨대 쇠고기-촛불정국 관련 보도는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다루기보다는 대립 지향적인 보도 경향이 강했다고 하겠다. 갈등의 배경과 원인 등에 대해 공정하고 적절하게 다루지 못했으며, 대부분 갈등의 전개 양상과 파급효과에 대한 부정적 성향의 보도가 압도적이었다.(71쪽)”라고 진단하여 중립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실천과제를 논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적극적 참여와 집단지성의 발휘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촛불집회 기간 동안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전화, 컴퓨터를 일상적으로 지니고 다니는 디지털 시민이 보수언론의 거짓을 찾아내 바로잡고 있다. 그 역겨운 왜곡을 견디지 못한 시민들이 ‘조중동 퇴출’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민들이 새 시대를 열고 있음이다.(282쪽)”라고 적었습니다. 혹여 저자들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위험커뮤니케이션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작은 의문이 생기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2008년 당시 언론의 보도 방향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관하여 보수언론은 가치중립적이었던데 반하여 진보언론은 위험을 지나치게 부풀리는 내용 일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광우병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 모두가 전문가로 나서 잘못된 정보를 만들고, 이를 인터넷에 유포시키는 바람에 국민적 혼란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광우병이 창궐하던 유럽이 광우병이 소멸을 선언하게 된 작금의 현황을 본다면 당시 광우병 관련 과학적 자료를 왜곡 해석하여 위험을 부풀렸던 소위 전문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통절하게 반성하고 양심선언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안전-안심 한국’을 위하여 저자들은 우선적으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전제하였습니다. 서구사회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발전해온 과정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짧은 기간을 통하여 압축성장하는 세계에서 유래 없는 변화를 밟았던 부작용으로 대형사고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되었다고 한다면, 한국사회는 서구사회와는 다른 개념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겠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공감하게 됩니다. 한국사회의 위험적 특징을 진단한 선행연구들은 높은 위험추구경향, 사회적 조정과 협력의 실패, 긴급주조체계의 미비, 그리고 관료의 부패와 법집행의 공정성 결여가 핵심요소로 지적하였습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다는 우리네 옛말이 있습니다. 위험요소들을 사전에 점검하여 차단하고, 사고 발생 초기에 빠르게 대처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의 대응방안에 관한 지침을 수립하고 지침에 따라 훈련하여 상황이 발생하면 지체 없이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위험관리를 생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신뢰구축의 토대가 되는 위험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저자들의 주장에도 공감합니다. 2008년 제2차 광우병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사회적 혼란에 빠진 책임은 전적으로 당국에 있습니다. 사태 초반 정부당국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토론회를 몇 차례 개최하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광우병위험에 관한 괴담의 확산을 차단하고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렸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백만분의 일보다 작은 확률이라는 등, 실감나지 않는 수사적 표현으로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는 동안 광우병위험을 부풀리려는 소위 전문가들의 감성적인 비유가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광우병 공포는 이미 희미한 추억의 그림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광우병 파동에서 우리는 “사회적 합리성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며,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다.(267쪽)”라고 한 울리히 벡의 주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저자들이 “과학을 모르는 관료들만의 과학정책은 무모하고, 철학이나 윤리의식 없는 과학기술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의 자발적 대응을 통해 위험에 대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면 과도한 이기주의와 기능주의의 폐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사회차원의 위험문제해결을 위한 진정한 공론장 형성에도 기여할 것이다”라는 김영욱의 엉뚱한 해석을 인용하는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과학에 대한 이해수준은 시민사회보다는 관료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다만 시민사회와의 공론의 장을 통하여 단박에 공감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성급함을 버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시민사회가 과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둔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하겠는데, 이는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완성이 위험관리의 핵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늦었다고 한탄하며 자책하는 동안에, 어떻게 하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나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위험가능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사회의 위험인식의 수준을 높이고, 위기상황에서 대응방안이 자동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위험관리의식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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