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2014년 4월 16일'을 기준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가 마치 두 개로 쪼개진 것 같다. 세월호 사고 이전과 이후의 세계로. 두 세계의 경계선에는 좁고 깊은 크레바스가 세월호를 삼킨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다. 그 속은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어둡고 혼탁하다. 트라우마가 생긴거다.  이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한다고 부산스럽다.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해 정부가 나서 심리치유 상담을 지원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딱히 이를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 서두른다. 산업화 시대의 압축성장 조급증처럼 심리적 외상도 서둘러 치유하고 '이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어 안달 난 것 같다. 누구를 위한 치유인지. 피해자와 유족을 위한 것인지, 혹은 그걸 지켜보는게 불안하고 갑갑한 다수의 주변인과 침몰사고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불안감을 덮어주기 위한 건 아닌지 의심마저 들었다.

어느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일상을 챙겨주고 함께 울어주는게 필요하다. 아직도 정신적 외상을 반복적으로 가하는 이들에게 함께 따지고 분노해 줄 사람이 더 절실하다. 어쩌면 그들 곁에는 의사보다 종교인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고.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의 무능한 구조활동과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로 피해자와 유족들은 끊임없이 외상을 입었다. '외상 후'가 아니라 여전히 외상이 가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적 채우기 식의 심리상담은 또 다른 상처다. 슬픔과 충격이 여전히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얼 어쩌란 걸까. 왜 슬퍼할 겨를조차 주지 않나. 왜 분노할 시간마저 주지 않으려 하나. 그걸 지켜보는 게 그렇게 불안했나. 그 슬픔과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몰라 불안했던 게 아닐까. 이런 대형 참사를 겪고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는다면 그게 더 비정상이다. 자연스러운 애도반응이고 감정의 표출이다.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진 피해자와 유족의 상태는 정신과적 치료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해야 할 공감의 대상이다.

우려스러운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트라우마 치유 타령하더니 대놓고 관료와 정치본색을 드러낸다. 보건복지부는 일찌감치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 관련 피해자들의 심리적 지원을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가칭)'중앙심리외상지원센터' 설립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한술 더 떠 국회에서는 대형 참사와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정신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국립트라우마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여당의 어느 의원이 제출한 이 법안의 명칭은 '국립트라우마센터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체계적인 프로그램 개발과 연구·치료지원 등을 명문화하고, 정신적 충격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특수법인 형태의 '국립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화가 난다. 대형참사나 재난으로부터 정신적 충격을 치유하는 국립트라우마센터라고? 세월호 사고는 인재다. 지난 2월 발생한 경주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도, 그보다 앞서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까지 다 인재다. 인재에 의한 대형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사실상 우리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트라우마의 원인 제공자다. 그 속에서 무슨 정신적 충격의 치유니 심리적 지원이란 말인가.

국립트라우마센터니 중앙심리외상지원센터니 '사후 약방문' 같은 허튼소리 집어치우자. 또다시 인재에 의한 대형 재난사고를 겪고 눈 앞에서 죽어가는 국민을 속수무책으로 내버려 둘 셈인가. 지금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껴야 할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허둥지둥 대책을 꺼내지 말고 엄중한 책임감부터 느껴야 한다. 피해자와 유족, 국민들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는지 직시해야 한다. 통계수치를 들먹이며 대형 참사와 재난을 겪고 난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살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트라우마에 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은 무책임의 극치다. 이 지경이 되게끔 일조한 게 누군데.      

혹여라도 국립트라우마센터나 중앙심리외상지원센터를 무슨 번듯한 치적인 양 내세우고 싶다거나, 혹은 그걸 핑계로 예산을 확보하고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당장 그만둬야 한다. 그걸 만들어 놓고 제대로 기능을 하니 못하니 뒷말 나오고, 예산 타령하고, 퇴직공무원을 위한 새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꼴은 절대 보고싶지 않다. 그거야말로 또 다른 정신적 충격이다.

대형 참사나 재난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위험을 줄이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분리하고, 위험이 생기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 국립트라우마센터니 중앙심리외상지원센터의 설치를 논하는 건 그 다음이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대형참사를 초래한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으로 '세월호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있다. 이 거대한 분노를 억지로 틀어막으면 세월호 트라우마는 더욱 난폭해져 우리 모두를 두고두고 괴롭힐지 모른다. 우리가 다 함께 느끼는 지금의 분노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이고 슬픔의 힘'이다. 누구라도 다가와 같이 울자. 트라우마센터가 아니라 공감과 뼈아픈 반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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