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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미완의 의료전문주의와 ‘노환규이즘’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4.05.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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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전문주의라는 용어 속에는 특정 분야에 있어서 고도의 지식과 기술, 직업윤리가 내포돼 있다. 물론 직업수행의 자율성을 사회적으로 보장받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전문주의에 방점을 찍는 것은 바로 '사회성'이다. 끊임없이 사회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을 때 비로소 하나의 전문주의가 완성된다.

전문주의가 빛을 발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의료다. 의료전문주의는 의학적 성취를 넘어 의사사회가 대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결정한다. 의료전문주의가 공고하게 구축된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서양의 의사사회는 근대적 의학교육 체계가 정립되고 지금처럼 국가로부터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의사면허를 부여받기까지의 과정에서 안팎으로 지난한 투쟁을 벌여왔다. 이를 의사들이 의료서비스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싸워온 투쟁의 과정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들은 내부적으로 단결해 자율적인 면허 부여권을 획득하는 동시에 의학교육에 있어서 그 자격과 내용을 엄격하게 규제함으로써 스스로 의사라는 직업의 권위를 높였다. 외부로는 비과학적, 반의학적 이론이나 환경과 싸워가며 굳건한 의학적 스페트럼을 구축하고 각고의 노력과 희생으로 견고한 의료전문주의를 완성했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누리는 권위와 신뢰의 원천은 다름아닌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의학교육의 성과로 전문직업인으로서 의사상이 완성됐다. 고도의 지식과 기술, 직업윤리에 있어서는 의료전문주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사회와 교류하며 상호 작용하는 과정을 통해 시민과 대중으로부터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는 단계까지 도달했다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서양의 의학기술과 제도를 수용하는데는 큰 성과를 냈지만 직업적 가치로써 의료전문주의를 끌어들이진 못했다. 애시당초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직은 미완의 의료전문주의다.

국가로부터 주어진 의사면허제도의 틀 속에서 부여된 독점적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낮은 경제적 보상과 자율성 침해에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권 보장이나 노동자의 건강권 침해 문제에는 침묵을 지켰다. 애써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켰다. 의사 전체가 의학적 가치 실현을 위해 의료체제를 조직적으로 통제하는데 관심이 없었다. 고도의 의학적 전문성을 지닌 '자영업자'에 불과했다.    

   이런 의사사회에 하나의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했다. 수익만을 추구하는 의사들의 파행적 진료행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의료기관의 편법적 수익 추구에 대해 비판하고, 의료민영화 반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주장했다. 의사사회와 의료제도의 케케묵은 온갖 적폐를 한꺼번에 들고 나왔다. 의사사회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지위에서 그의 발언과 행동은 돌발적이었다. 그는 '잘못된 의료제도 때문에 의사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기존의 전략을 무시했다. 그 대신 '잘못된 의료제도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입고있다'는 새로운 구호를 앞세워 정부를 상대로 투쟁에 나섰다. 

"의사들의 투쟁은 잘못된 의료정책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의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며, 비정상적인 건강보험제도를 정상화시킴으로써 의료제도를 바로 세우려는 투쟁"이라고 그가 말했다.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와 공조해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의료공급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언급하고, 수십 년에 걸쳐 공공하게 굳어버린 기형적 건강보험제도 등 한국 의료제도 곳곳에 산적한 문제를 들쑤시고 헤집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의료행위의 본질적인 가치 회복을 주창했다.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이 병원과 의사에게 환자를 상대로 편법과 일탈을 동원해 생존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문제인식을 확산시켰다. 

의사사회 내부에서 그를 바로보는 시선은 극명하게 갈라졌다. 30~40대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노환규이즘'에 열광하는가 하면 내부의 분열을 야기하는 '독특한 캐릭터' 또는 '소영웅주의'에 빠진 기이한 인물이란 식으로 냉소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의 대정부 투쟁 구호와 방식을 놓고 의사사회 내부는 '친노'와 '반노' 진영으로 대립구도가 짜였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투쟁에 반대하는 세력을 의료계 내부의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고,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붙였다. 결국 그는 의사협회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 당해 물러난 최초의 회장으로 기록됐다.

그가 추구한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투쟁은 미완이다. 의협회장으로서 그의 언행에 대한 평가는 한국 의사사회에서 의료전문주의를 완성해 가는 틀에 대입시켜 이뤄져야 한다. 시민사회의 담론을 수용해 의료개혁을 추구'했다는 일각의 평가처럼 그는 의료전문주의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방점을 찍는 사회성을 일구는데 크게 기여했다. 의사사회가 시민사회와 의료제도에 관한 인식의 교류를 터고, 의료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요구를 의사사회에 주입시켰다. 그는 배타적 전문주의에 빠진 의사사회를 시민사회와 교류하고 반응하는 진짜 프로페셔널리즘으로의 변화를 촉발했다. 

이를 통해 의료서비스 공급구조의 개혁과 의료전문가에 의한 합리적 의료정책 결정구조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 편법과 일탈이 아니라 의학적 가치의 실현을 통해 의사가 직업전문성을 발휘할 때 환자에게 득이 된다는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지금의 왜곡된 의료현실의 책임이 의사들 자신에게 있다는 점과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사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현재 '의협 전 회장' 신분이다. 그가 추진한 의료제도 개혁 투쟁은 전면 중단됐다. 이대로 상황이 마무리된다면 의료계의 돈키호테쯤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그가 법적대응을 통해 의협으로 복귀하든 못하든, 한국 의사사회가 의료전문주의로 가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낡은 '투쟁의 추억' 한 자락을 붙잡고 의사사회가 또 얼마나 오래 헤맬까 싶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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