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 규제의 사회화, 민주화>

[라포르시안]  벌써 좀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몇 번이나 비슷한 이야기가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없었던 일인 듯 되돌아갈 수 없기에 지루함을 이겨야 한다. 다름 아니라 규제완화를 둘러싼 싸움.

 잠시 두 달 전으로 되돌아가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 전이기도 하다. 3월 20일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개혁회의가 열렸다. 벌써 까마득한 듯도 하지만 잊으면 곤란하다.

당시 학교 가까이에 호텔을 짓지 못하도록 한 학교보건법이 규제로 지목되었다. 호텔사업자는 직접 나서서 학교보건법 때문에 호텔을 지을 수 없으니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주무 장관은 그 규제 때문에 ‘미치겠다’고 호응했다 (관련 기사). 대통령은 한 술 더 떴다. 당시 언론 보도가 맞다면, “청년들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막고 있다는 것은 거의 죄악”이라고 했다.

생방송으로 ‘쇼’를 중계하는 그 시간에 이미 세월호 사고는 예비된 것이었다. 완화된 규제 덕분에 늘어난 일자리 또한 죽음의 ‘알바’ 자리였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대통령까지 나서 규제완화를 압박한 것은 이 뿐 아니다. 그 전인 2월 19일 국토·해양·환경 분야 정부 부처 업무보고에서 이미 한 차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문한 참이었다. 프레시안 기사를 참고하자 (바로가기)

“무엇보다 경제혁신 필수 과제인 규제개혁에 각별히 노력해 달라” “현재 국토부와 해양 분야의 입지 관련 규제가 정부 전체 규제의 31%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세 부처(국토부, 해수부, 환경부)가 정부 규제개혁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대통령의 심기까지 살피는 관료들이 이런 분위기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모든 부실함을 알았던들 규제를 강화하자고 어찌 입 밖에 낼 수 있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참사 바로 하루 전인 4월 15일 ‘선원법 시행령’이 개정되었다. 이건 차라리 아이러니다. 대통령이 이렇게 나선 덕분이라 믿는다. 법이 아니라, 시행령(국회를 갈 필요가 없다)이라는 것이 또 하나 포인트다.

시행령을 개정해서 선박검사원, 선박수리를 위해 승선하는 기술자 등을 선원에서 제외했다. 본래 선원 업무에는 파견근로자를 쓰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들을 아예 선원에서 빼버렸다. 또 있다. 내년 1월부터는 선장의 휴식 시간에는 1등 항해사, 운항장 등이 선장의 조종 지휘를 대행할 수 있도록 했단다.

낡은 세월호가 수입될 수 있었던 규제 완화의 역사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수명 제한을 30년으로 연장한 덕분이었다는 것. 바다를 맡은 공무원들도 다른 것은 몰라도 규제완화만큼은 이미 충분히 실력을 보였다. 그 ‘찬란한’ 역사는 5월 16일의 경향신문 보도가 잘 정리해 놓았으니 참고할 것 (바로가기).

 이 정도면 교훈을 얻었을 성 싶지만 천만의 말씀인 모양이다. 배움이 없는 분야 가운데는 의료도 있다. 규제 완화의 실패,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의료분야 규제 완화는 불퇴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게 아니면 관심과 주목이 비어 있는 틈에 실력을 발휘해 제대로 눈에 들 기회를 노리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로 온 사회가 정신이 나간 지난 달 24일, 복지부는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을 위한 회의를 소집했다(실제 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지난 5월 15일에는 ‘투자활성화를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위한 회의도 열었다 (여기서도 법이 아니라 시행규칙이라는 점!) 

복지부 말고도 또 있다. 국무총리가 주재한 ‘정보통신전략위원회’는 군부대 장병을 대상으로 하는 원격진료서비스를 시행하기로 했다(라포르시안 관련 기사 바로가기). 진작부터 의료의 사각지대였던 군인이 이젠 규제완화의 제물로까지 쓰일 판이다. 

결국 규제완화의 망령은 세월호 사고를 거뜬히 비켜가고 있다. 복지부나 무슨 위원회, 또는 그 안의 관료들만 탓할 수는 없다. 5월 9일 긴급민생대책회의에서 대통령이 발언한 내용을 충실하게 따른 결과라고 하는 편이 옳다.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경제혁신과 규제개혁 노력은 흔들림 없이 지속돼야 한다.“

 “규제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합리적이고 꼭 필요한 규제와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규제는 잘 구분돼야 한다. 안전이라든가 소비자보호, 공정경쟁을 위해 꼭 필요한 좋은 규제는 반드시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 더욱 강화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아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나쁜 규제는 과감히 고치고 없애야 한다.“ 

적어도 규제에 관한 한, 참사에서 대통령이 배운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 둘로 나누는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다. 이 정도라도 나아진 것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사실 어느 정부, 어느 대통령이 “꼭 필요한 좋은 규제”까지 없애겠다고 한 적이 있었던가.

 이분법은 더 심각하다. 대통령이 거듭 ‘깨알’ 같은 예로 들었던 규제들만 해도 그렇다. 액티브 엑스, 푸드 트럭, 학교 부근의 관광호텔, 스마트폰의 의료기기. 언론도 ‘선동’의 소재로 삼았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 규제는 하나같이 안전, 건강, 위생과 아슬아슬하게 맞닿아 있다.

워낙 규제란 사람들의 ‘사회적’ 삶에 개입하려 하는 것이다. 규제를 하는 목적과 대상이 좁고 흐린 경계 위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문제는 규제를 그냥 둘 것인가 없앨 것인가가 아니다. 그보다는 “규제를 규제답게”가 핵심이다.

규제가 규제답지 않은 이유가 따지면 어디 한두 가지일까. 그 가운데서도 한국의 규제는 흔히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관료 구조와 한 몸처럼 취급된다는 것이다. 현실도 상징도 이 차원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 현실만큼이나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규제완화를 맹목으로 만드는 실제의 힘, 정치적 동력이기 때문이다. 선박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 원격의료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잘 감독하겠다, 모두 소용없다. 관료와 그 구조, 그리고 관료주의란, 어떤 약속도 믿기 어렵게 만든다.

관료의 무능과 부도덕만 말하지만, 규제의 또 다른 어두움도 무시할 수 없다. 불평등한 권력 구조가 작동한다는 점이다. 어떤 규제는, 그것이 아무리 문제라도, 그리고 관료주의의 틀을 벗어난 경우도, 사회적인 관심사로 아예 떠오르지도 않는다. 규제의 이익과 손해를 두고 발휘되는 불평등한 힘이다. 

좋고 나쁜 것으로 규제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강화-완화가 아니라 규제를 규제답게 만드는 새로운 틀로 전환해야 한다. 누가 권한과 권력을 가질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

 앞서 말한 저간의 사정들을 바탕으로,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게 된다. “관료적 규제에서 사회적 규제로”, 그리고 “독과점적 규제에서 민주적 규제로”.

지금의 규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의 구성만 보더라도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참고). 규개위는 모두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부 위원은 뭐 그렇다 치자.

나머지 13명의 민간 위원이 이 위원회의 정치사회적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누가 이들을 선정하고, 이들은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대변하는가. 각 지자체마다 구성하게 되어 있는 규제개혁위원도 대표되지 않은 권력이긴 마찬가지다. 또 다른 독점이고 권력 강화다.

그러나 이런 규개위조차 가지와 피상에 지나지 않는다. 규제의 구조와 뿌리, 과정과 실천, 나아가 철학과 이념까지 모두가 사회화, 민주화의 과녁이다. 

제2, 제3의 참사를 막아야 한다는 데에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위험은 교통에도 건강에도 병원과 같은 시설에도 잠복해 있다. 강화-완화의 이분법의 틀을 벗어나, 규제를 사회화, 민주화하는 것이 한 가지, 그러나 중요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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