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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역사기록물은 인류 공동의 재산남유럽의 전통기록물 관리 / 김정하 지음 / 이담북스 펴냄, 2013년

[라포르시안]  몇 달 전에 캄보디아의 씨엠립에 있는 앙코르왕국의 유적을 돌아보았습니다. 앙코르유적이 열대의 아름드리나무들 사이에 숨어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앙코르왕국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대 앙코르왕국은 유적에 새긴 부조 이외에 별도 문서 등의 형태로 남은 역사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남문을 통하여 앙코르와트로 들어가다 보면 큰 길 중간에 서 있는 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 건물은 옛날 중국에서 온 사신이 묵으면서 역사를 기록하던 장소라고 합니다. 즉 앙코르왕국의 역사기록은 중국 등 인근 국가의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 전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적의 침입을 받아 왕궁이 함락위기에 빠지자 왕은 모든 백성들을 이끌고 왕궁을 떠나면서 신이 더 이상 이 성지에 머물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철저하게 잊어버리도록 한 것도 앙코르 유적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라고 합니다.

크메르 문자가 어려운 것도 이유 중 하나하고 합니다. 캄보디아에서는 공식적으로 크메르어와 크메르 문자를 사용합니다. 지구상에서 자국 언어를 사용하는 몇 안되는 국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5년 당시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문자 해독률은 약 68퍼센트입니다.(1997년에 발표된 캄보디아 경제사회조사) 문맹률이 이토록 높은 이유는 우선 의무교육으로 되어 있는 중학교까지 졸업하는 비율이 낮은데다가, 크메르어가 어려워서 고등학교는 졸업을 해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구전으로 역사를 전했습니다. 서구 문화의 근간이 되고 있는 그리스신화 역시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기원전 8세기 초 무렵에 문자로 채록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호메로스가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김헌 지음,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살림출판사, 2004년)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역사를 전하는 역할을 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요? 드물게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뿐 아니라 기억력이 훈련을 통하여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습니다.(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야 지음,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갈라파고스, 2007년) 루리야가 관찰한 기억술사는 기억용량은 물론이고 획득한 기억의 지속성도 무한해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한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루리야의 관찰에 따르면 연구대상이 된 기억술사는 단어와 숫자를 기억하는 능력이 뛰어났는데 그는 이를 회화적 개념과 공감각적 반응을 이용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의 얼굴처럼 기분에 따라서 변화하는 대상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은유나 비유가 많은 시나 문학작품은 쉽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역사를 전하는 역할과 관련이 있는 연구조사도 있습니다. 피터 매캘리스터가 쓴 <남성퇴화보고서>에서는 언어학자 로드와 페리가 세르비아의 몬테네그로의 구슬라르(세르비아의 서사시를 구비전승하는 사람들)의 전통을 조사한 연구결과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브도 메데도빅이라고 하는 문맹의 도축업자는 놀랍게도 58개의 서사시를 암송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그는 35만 476행의 시를 외우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가 모두 2만 7803행인 것과 비교해보면 놀라운 재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로드와 페리의 연구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는 그저 암기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 때마다 새롭게 각색한 흔적이 있다고 하는데, 메데도빅 역시 단지 한  번 들은 2294행의 곡을 자유자재로 바꿔서 부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옛날 구술사들은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다양한 청중에 맞게 들려주곤 했다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공연은 기억을 강화하는 효과도 나타냈을 것입니다.

문자의 발명은 기억에만 의존하던 인간의 정보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기억력을 퇴보시키는 역기능을 불러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Phaedrus)>에는 소크라테스가 친구 파이드로스에게 들려준, 이집트의 타무스왕과 발명의 신 테우스가 주고받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수, 계산, 기하학, 천문학, 문자 등 많은 것들을 고안해 낸 발명의 신 테우스는 자신이 발명한 문자의 용도에 대하여 왕에게 이렇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왕이여, 여기에 내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 있소. 이것은 이집트인들의 지혜와 기억력을 늘려 줄 것이오. 기억과 지혜의 완벽한 보증수표를 발견해 낸 것이지요.” 테우스의 설명에 대하여 타무스왕은 이렇게 경계하였습니다. “모든 발명가의 모범이 되시는 테우스여, 기술의 발명자는 그 기술이 장차 이익이 될지 해가 될지 판정할 수 있는 최선의 재판관은 될 수 없습니다. 문자의 아버지인 당신은 자손들을 사랑하여 발명해 낸 그 문자에 본래의 기능에 정 반대되는 성질을 부여한 셈입니다. 문자를 습득한 사람들은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 오히려 더 많이 잊게 될 것입니다. 기억을 위해 내적 자원에 의존하기보다는 외적 기호에 의존하게 되는 탓이지요. 당신이 발견한 것은 회상의 보증수표이지 기억의 보증수표가 아닙니다. 그리고 지혜에 대해서라면, 당신의 제자들은 사실과는 상관없이 지혜에 대한 명성을 계속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적절한 가르침 없이도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고, 따라서 실제로는 거의 무지하다 할지라도 지식을 가진 것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지혜대신 지혜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장차 사회에 짐만 될 것입니다.”(제2회 한국철학올림피아드 고등부 논술문제를 인용하였습니다) 인간의 간교함을 제대로 짚어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정보의 바다라고 부르는 인터넷시대를 맞아 사람들은 문서를 읽어 지식을 자신의 자원으로 만들던 노력마저도 포기하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을 그렇습니다만 그저 인터넷에서 정보를 모으는 얄팍한 재주만 늘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거리는 사건입니다만, 1985년 8월 18일, 534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싣고 동경 나리타공항을 떠나 오사카로 향하던 일본 항공소속 보잉 747 123번 여객기가 군마현의 산기슭에 추락했는데 오직 4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비행기가 추락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타나구치라는 승객은 아내에게 남기는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 여보 이렇게 될 줄은 유감이오. 잘 있어요. 아이들 잘 부탁해. 지금 6시 반이다. 비행기는 돌면서 갑자기 내려가고 있다. 정말 지금까지 행복한 인생이었소. 고마워요!” 이 편지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일본인의 기록습관을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로 인용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기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식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심이 없다보니 책을 읽는 것도, 더우기 글을 쓰는 것에도 관심이 엷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왕실은 물론 사가에서도 많은 기록물들이 전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해인사에 보관되고 있는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비롯하여 조선왕조실록까지 그야말로 놀라운 기록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소개합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의 김정하교수님께서 남유럽,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수많은 국립 및 시립 기록물보존소와 도서관들에 소장되어 있는 역사기록물의 보관 및 활용방식을 검토하고, 역사기록물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환원될 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저자는 역사 기록물은 양날의 칼처럼 관리의 수많은 변수들에 따라 문화유산의 혜택과 인권탄압의 이중성, 즉 부메랑 효과를 연출할 수 있음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책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에서는 역사기록물의 개념과 용어를 정의하고, 제2장에서는 역사기록물의 관리와 (중세의) 법적 공신력을 논하고, 제3장에서는 역사기록물의 활용사례를 들었습니다. 제4장 민주주의와 역사기록물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시민의 권리와 권력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는지를 논하였습니다. 그리고 제5장에서는 공공부문의 역사기록물관리에서 한발 나아가 기업의 역사기록물관리 사례를 인용하고 있는데, 기업이나 단체의 역사기록은 출발할 때부터 제대로 체계를 갖추어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 하다고 보았습니다.

기원후 3세기 초 로마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아르키비움은 외교문서들이 소장되어 있는 공적인 장소이다.”라고 당시 기록물의 보편적 개념을 정의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원후 4~5세기에는 “아르키비움은 공공기록물이 보존되어 있는 장소이다.”라고 개념이 바뀌게 되는데, 공공기록물의 개념이 ‘장소’에서 ‘유기적 관계의 문서들 전체’로 변함에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장소는 여전히 공공기록물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와 같은 장소의 개념은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통해 중세로 계승되었다고 합니다. 19세기 계몽주의시대를 맞아 기록물의 개념을 보다 폭넓게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대두되면서, 기록물을 국가, 지방, 도시, 공공기관 또는 사기관, 회사나 협회, 개인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원본문서들로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기록물이 공․사영역의 구분 없이 생산되어 영구보존의 가치를 위해 선별되었고 정리된 상태의 문서들 내부에 유기적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어 궁극적으로는 생산주체의 제도와 행정업무의 구조를 반영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기록물의 분량이 방대해지면서 기록물의 분류, 수집, 기록의 용어 등을 체계적으로 운용하지 않으면 기록물을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기록물을 사용함에 있어 이관과 수집을, 정리와 분류를, 그리고 기록, 문서 기록물을 학문영역에 따른 고유환 개념의 확립 및 적용에 근거하여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역사기록물은 우선 학문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있고, 학문연구를 제외한 실질적인 목적으로 문서를 열람하는 유형이 있으며, 단순한 호기심으로 비전문가들이 열람하는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록의 보관과 활용방안으로 헌팅턴병이 의학분야의 대표적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미국 뉴욕주에서 진료하던 의사 조지 헌팅턴(1850~1916)은 그의 조부와 부친이 기록하여 온, 미국 뉴욕주의 헌팅턴 군에 거주하는 가족에서 발생하였던 심한 정신장애를 동반한 무도병의 사례들을 1872에 정리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이처럼 3대에 걸쳐 작성된 의무기록이 최종적으로 손자대에 이르러 빛을 보아 새로운 질환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기록물에 대한 학술적 접근방식은 다양한데, 먼저 법적 사실이 다양한 서식을 통해 기록된 증언을 연구하는 고문서학은 주로 중세와 인문주의 시대의 다양한 문서서식을 대상으로, 문서에 대한 연구에서는 법적인 상황을 발생시키거나 수정시키거나 소멸시키는 법적행위와 법적효력을 발생시키는 행위에 대한 기억을 유지할 목적으로 작성된 기록문을 개념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기록물관리학은 고문서학의 영역보다 더 방대한 개념으로 이해되는데, 기록물관리전문가는 정부기관의 기록물, 즉 (업무)진행절차의 최종순간을 대변하며, 외적인 형태의 중요성이 고려된 문서들의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작성된 모든 중간단계의 문서들을 모두 관리합니다. 그밖에 정보학에서는 기록물이 개별적으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나, 다른 기록물과 유기적으로 연계될 경우에 방대한 영역의 정보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1975~1979년 사이에 170만 캄보디아인을 학살한 폴포트 정권의 만행은 비밀경찰이 작성한 문서들이 발견됨으로서 학살을 주도한 책임자에 대한 재판이 가능해졌습니다. 폴포트의 사례는 역사기록물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한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기록물을 보존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진실을 밝히는데 주력할 것인가 화해를 유도할 것인가 하는 선택은 사례별로 처한 상황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IT의 발전으로 기록에 대한 중요성이 희박해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래도 보고 들은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습관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공분야이건 개인적 필요에 의해서 생산된 기록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야 정보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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