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시대 / CCTV 다큐제작진 지음 / 허유영 옮김 / 다산북스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기업이라고 한다면, 1919년에 우리 손으로 우리 옷감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설립된 경성방직이 최초라고 합니다. 이토록 기업의 역사가 짧은 만큼, 우리나라의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기업의 부침 또한 심했다고 하겠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55년 우리나라의 100대 기업 중 2005년까지 남아 있는 기업은 7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이홍표, ‘경제성장의 선봉…각본없는 드라마’, 한국경제매거진 663호, 2008년 8월호 기사)

기업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기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효율성이 높은 경제 조직으로 ‘인류가 얻어낸 최고의 성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연관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업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일 수 있습니다. 중국의 CCTV가 기업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기업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기 시작했으며 또 어떻게 시대를 변화시켜왔는가? 하는 기업에 관한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하여 각국 기업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뒤쫓아보는 기획 프로그램을 제작하였고, 그 기록을 <기업의 시대>로 엮었습니다.

중국의 무역총액이 2012년 기준으로 미국을 앞서 세계 1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세계은행이 구매력평가(PPP) 기준을 적용한 국내총생산(GDP)을 재산정한 결과 중국의 경제규모가 올해 안에 미국을 앞질러 세계 1위에 등극할 전망이라는 소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성장세는 덩샤오핑의 개혁정책에 힘입은바 크다고 하겠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났다가도 오뚝이처럼 일어선 덩샤오핑이 1978년 권좌에 오르면서 주도한 ‘개혁과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 정책’이 꽃을 피운 결과라고 해야 하겠습니다(에즈라 보걸 지음, 덩샤오핑 평전, 민음사 펴냄, 2014년) 19세기 말부터 외세에 시달려온 중국이 이제 일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경제전문가 김태일님은 경제분야 이외에도, 문화, 금융, 소비, 산업, 자원, 군사, 해양 그리고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오르려 하고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김태일 지음, 굴기의 시대, 이담북스 펴냄, 2013년)

중국의 CCTV가 <기업의 시대>를 기획한 배경에는 그동안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있는 자신감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모두 5개의 제작팀이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3대륙, 8개국을 돌았고, 각국의 유수한 대학과 경영대학원, 연구기관을 찾아 취재했는데, 5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100명이 넘는 역사․경제․정치․사회 등 각 분야의 석학들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제작진은 기업의 탄생과 발전의 역사, 기업의 운명과 미래, 기업의 성장과 생존환경 등을 전반적으로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현실과 역사의 접목을 통해 단순한 즉답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세한 자료와 스토리를 통해 차근차근 결론을 도출해내고자 했고, 현대적인 감각을 통해 풍부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자 했다.(7쪽)”라고 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EBS를 통해 방영된 바 있다고 합니다. 책자로 만든 <기업의 시대>에는 취재과정에서 찍은 다양한 사진자료를 곁들이고 있고, 용어 등에 대하여도 주석을 두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다큐제작팀의 도서편집기법이기도 합니다. 서너 개의 절로 구성된 각장의 말미에는 해당분야의 전문가를 인터뷰한 자료를 요약한 ‘인터뷰 인사이드’와 해당 주제에 대한 ‘인사이트 리뷰’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제작진은 “기업이란 주주가 자본을 투자해 영리를 목적으로 법률에 따라 설립한 일종의 조직 형태다. 기업은 민사권을 행사하고 민사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주주는 출자한 액수나 소유 지분의 한도 내에서 기업에 대해 책임을 지고, 기업은 전체 자산의 한도 내에서 기업의 채무를 책임진다.(16쪽)”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최근 의료계의 이슈가 되고 있는 영리법인 형태의 요양기관 설립이 가능하게 된다면 앞으로는 병원들도 기업적 마인드를 새롭게 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의 전반부는 기업이 발전해온 역사적 발자취를 뒤쫓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하여 기업이 선택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신흥시장국가, 중국의 기업들이 고민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미래의 기업은 어떻게 발전해나갈 것인가 하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신흥시장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발 앞서가고 있는 한국이 겪은 성공과 실패담이 아주 궁금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별도의 장으로 다루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에 관하여는 전혀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한국은 이미 중국의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거래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며 언어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21쪽)”라고 했습니다. 부록에 정리한 연표로 보는 기업의 역사를 보면 기원전 3000년 메소포타미아인과 수메르인이 계약을 처음 만든데 까지 기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기원전 2000년 무렵에는 아시리아인이 펀드계약조항을 처음 만든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기업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형태는 1세기 로마시대 등장한 상업사단인데, 모종의 형식으로 유한책임을 지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토대로 발전한 현대적 의미의 기업은 16세기 후반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등장했다고 합니다.

제국주의가 확대될 무렵에는 신대륙과 아시아대륙을 상대로 하여 기업활동을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권력과 결탁하여 특권을 행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기업들이 부패하고 윤리적으로도 타락하였으며 종국에는 무너지고 말아 투자자들이 커다란 손해를 입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18세기 중반 일어난 산업혁명과정에서 기업들은 중대한 역사적 변환기를 맞게 됩니다.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향상되고 식민지에서 수탈해온 풍부한 자원을 토대로 만든 공산품들을 역시 식민지 시장에 내다 파는 이중적 수익모델을 구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19세기 들어서는 신대륙이 급부상하면서 자유경쟁에 의한 시장경제가 열리면서 카네기, 록펠러와 같은 기업을 경영하는 새로운 형태의 영웅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가들은 동맹이나 기업 합병을 통하여 규모를 확장하고 독점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유경쟁체제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면서 미국 연방의회는 1890년 7월 2일‘불법적인 제한 및 독점으로부터 거래와 상업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 즉 셔먼법이라고도 부르는 반독점법을 통과시켜 제동을 걸게 됩니다.

▲ 중국 CCTV에서 방영한 '기업의 시대' 속 한 장면.

언제까지 이어질 것만 같던 기업의 번영은 1929년 10월 24일 뉴욕증권거래소 개장과 함께 쏟아져 들어온 매도주문으로 시작된 대공황으로 중대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누구도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기업이 당시의 경제위기에 기여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고 합니다. 사실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일정한 주기로 부침이 반복되는 것은 필연적 현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장이 자원의 배치에 관여하고 자본이 이익을 광적으로 추구하는 한, 또는 부에 대한 인류의 끝없는 갈망이 존재하는 한, 경제 위기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228쪽)

제작진은 일본 기업의 성장 비밀로 ‘기업문화’를 들었습니다.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아시아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선두를 달렸던 일본은 “기업의 주인은 주주도, 경영자도 아닌, 그 회사 직원들(289쪽)”라는 특유의 기업문화를 창조해냈던 것입니다. 서구로부터 들여온 기업에 동양적 사고를 입힌 것입니다. 즉, 도덕과 정, 인간관계, 신뢰감, 친밀감 등 수천 년 동안 인류사회를 유지시켜왔던 기본요소들이 모두 기업의 생산력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일본의 성공은 1980년대 전성기에 이르렀는데, 일본 기업들이 미국기업과 미국의 건물들을 사들여 미국인들을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1990년부터 일본은 오랜 기간 불황에 빠지게 됩니다. 사실 일본이 잘 나갈 때 해외학회에 가보면 일본에서 온 참석자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불황기에는 오히려 한국에서 온 참석자들보다 적은 경우도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점을 우려하는 일본의 식자들이 있습니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좀처럼 해외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 세계는 넓고 내가 모르는 일은 더 많다. 나이가 몇이든 상관없이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만이 새로운 가능성을 낳는다.”(안도 다다오 지음, 안도 다다오 일을 만들다, 115쪽, 재능교육, 2014년)

일본의 침체기에는 특유의 기업문화가 오히려 기업발전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기업들은 선두주자를 따라가다가 추월하는데 성공했지만 막상 선두에 서는 순간에는 후발주자들을 이끌어본 경험이 없어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선두에 서기 위해서는 창조와 혁신이 필요하고, 창조와 혁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자유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한때 일본에 밀리던 미국이 다시 정상에 서게 된 것은 인문학에 기반하여 창조와 혁신에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도 과거 혁신을 국정의 화두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니 혁신을 강제하던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보니 혁신이 오히려 생각을 옥죄는 틀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고 혁신을 밀어붙이는 권력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혁신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장려하여 자연스럽게 혁신적 사고를 가진 인재들이 제 역할을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 록펠러와 그의 동업자들. 이미지 출처 : '기업의 시대' 116p

거센 변혁의 물결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중국은 국유경제와 시장경제가 개혁을 통하여 결합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라는 독특한 제도를 탄생시켰습니다. 지난 몇 년간 국유기업은 빠르게 발전하여 경쟁력을 갖춘 시장경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덩샤오핑 평전>에서도 보는 것처럼 중국의 지도자들이 선택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경제 발전과 중국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기업이 막중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389쪽).”라는 쿵둥 중국국제항공공사 전 회장이 인터뷰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국정을 운영하면서 가지고 있는 책임의식의 현주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경제의 향방은 오랜 세월 쌓여온 권력의 부패를 도려내는데 달려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결론부분입니다.  제작진은 “기업은 모든 시장을 동경하고 모든 시장으로 달려가며 모든 시장을 연결한다.”라고 운을 떼고 있습니다. 글로벌화하고 있는 기업의 생존전략의 핵심을 제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국가라는 틀을 뛰어넘는 거대한 조직으로 변신하고 있는 기업은 한편으로는 도덕과 제약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취약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의 글로벌화는 미래의 발전된 모습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를 배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최근 세계시장에서 선두 위치에 오르고 있는 국내기업들의 사업전략을 보면 ‘현지화’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 성공요인이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개척하는데 있어 ‘표준화’를 무기로 다량생산체제를 통하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었지만, 요즈음에는 현지의 문화를 이해하고 현지인의 감성을 최대한 수용하는 ‘현지화’ 전략이 강력한 대체무기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중국정부가 주도하는 국유기업이 국내 시장을 뛰어넘어 글로벌화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문제는 한국경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 했는데, 공룡이 되어가고 있는 중국경제에 예속되지 않고 중요한 사업파트너로 남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생존전략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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